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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록밴드와 원-테이크 녹음

by KOCCA 2012. 5. 14.

록밴드와 원-테이크 녹음

 

 

천 학 주 (레코딩엔지니어, 밴드 스테레오베이 멤버)

 

 

2009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피쉬 스토리>에는 70년대 중반 일본의 펑크록 밴드가 음반에 수록할 곡을 녹음하는 장면이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가 각자의 공간을 가림막으로 분리한 녹음 부스에 함께 들어가고, 컨트롤 룸의 대형 콘솔 앞에는 프로듀서와 엔지니어가 함께 앉아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을 2채널의 릴-테잎에 스테레오로 녹음한다. 이 장면은 멀티트랙 레코딩이 대중화 되기 이전의 ‘원-테이크 녹음’ 과정을 꽤 자세하게 보여준다.


<피쉬 스토리>의 주인공인 무명에 가까운 밴드 ‘게키린'은 해산을 앞두고 마지막 노래 ’피쉬 스토리'를 녹음하기로 한다. 녹음 당일, 밴드의 보컬리스트 ‘고로’는 기타 솔로부분이 연주되던 중 밴드의 해산과 자신들의 음악활동에 관한 복잡한 심경을 프로듀서에게 전하는데, 그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음악 위에 얹혀 녹음된다. 이미 완성된 음원으로 녹음 된 상태에서는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만 삭제 한다거나 재녹음할 수 없기 때문에 곡을 처음부터 다시 녹음하지 않는 이상 음원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프로듀서는 고로의 독백이 담긴 기타 솔로 부분을 통채로 삭제한 채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피쉬 스토리 (2009)>

 

1887년, 독일의 베를리너(Emiler Berliner)에 의해 원반형 저장장치에 녹음하고 재생하는 ‘그라모폰(Gramophone)’이 발명된 이후, 대중음악의 녹음 기술은 더욱 편리하게, 더 좋은 음질의 결과물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 왔다. 하나의 마이크로 모든 연주를 통째로 녹음해 모노로 녹음하던 초창기를 지나, 여러 개의 마이크로 수음된 소리를 하나로 섞어주는 ‘믹싱 콘솔(Mixing Console)’이 등장했고, 하나의 테잎에 동시에 저장할 수 있는 트랙의 개수는 하나에서 둘, 넷 이상으로 점점 늘어났다. 이로 인해 녹음 과정에서 생긴 실수를 보완하거나 녹음 이후에 다양한 효과를 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더욱 늘어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통한 디지털 레코딩이 대세가 되면서 저장 장치의 용량의 증가에 힘입어 동시에 녹음하고 재생할 수 있는 트랙의 개수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워졌다. 게다가 펀치 레코딩(Punch Recording, 긴 연주의 녹음 가운데 수정을 요하는 부분만 순간적으로 재녹음 하는 기술), 비-파괴 편집(Non-Destructive Editing, 잘라 붙이기 등의 편집을 원본 소스를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하는 기술) 등의 등장은 녹음 과정은 물론 그 결과물에서도 수 십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편리함과 완벽함을 가져다 주었다.

만약 오늘날의 대중음악 프로듀서가 ‘게키린'의 마지막 앨범을 제작한다면 먼저 드럼을 완벽하게 녹음해 놓은 상태에서 실수한 부분들을 컴퓨터로 수정하고 이어서 베이스, 기타, 보컬의 순서로 녹음을 진행할 수도 있다. 고로가 마음대로 독백한 부분은 마우스로 드래그 한 뒤에 Delete 키를 누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삭제해 버릴 수도 있고, 아예 쓸데없는 독백을 시작할 때 녹음을 중단하고 다그친 후에 다시 녹음을 이어갈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영화의 스토리는 진행되지 못한 채 끝을 맺게 되겠지만 게키린의 마지막 곡 ‘피쉬 스토리'는 더욱 완벽한 형태의 음원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의 대중음악에서는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실수나 오류를 제거해낸 완벽한 음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며 대부분의 음반을 이러한 방법을 통해 만들어 내고 있다.

 

 

<Otari MX80 Tape Recorder, 2인치 두께의 아날로그 테잎에 동시에 24채널의 녹음과 재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요즘의 녹음 스튜디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편한 원-테이크 녹음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최근 국내 사례로, 4인조 록밴드 얄개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2011년 가을 발매한 첫 정규앨범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를 원-테이크 방식으로 녹음했다. 그것도 정식 스튜디오가 아닌 펜션을 빌려 그 곳에 장비를 설치하고 4박5일간 작업했는데, 이는 녹음 후 편집과 보정이 일반화 된 오늘날 밴드 스스로가 자신들의 연주에 관한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시도할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 말고도 수 많은 록밴드들은 커다란 스튜디오나 창고에서 모든 멤버들이 함께 연주해서 녹음한 음반을 발매하고자 하는 로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의 유명 밴드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라는 식의 단순한 동경 때문 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디지털 시대에 맞서 아날로그 방식을 재현하려는 성향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기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원-테이크 녹음은 방식의 문제임과 동시에 ‘태도'의 문제이다. ‘좋은 연주를 앨범에 담고 싶다' 라는 생각은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이겠지만 좋은 연주에 관한 기준과 좋은 연주를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음악가들마다 일반적으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 와중에 보통 록밴드들은 연주 중에 발생하는 멤버들 간의 교감과 이를 통해 형성되는 에너지가 앨범에 담기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중반 부터 이어져 온 록음악의 역사 속에서 록밴드가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들 중 하나로 굳어져 왔다.

 

멀티트랙 녹음을 통해 발매된 깔끔한 사운드의 앨범들에 익숙해진 대중들의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마음 놓고 연주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장비, 그 공간에서 수음되는 수 많은 음향 소스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엔지니어와 프로듀서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비주류, 배고픔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록밴드들이 그렇게 큰 규모의 작업을 실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들에게 원-테이크 녹음은 ‘시도 해볼만 한 여러 방법들 중 하나' 라기 보다는 ‘언젠 가는 꼭 한번 쯤 해봐야 할 목표' 에 가깝다.

 

누군가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할 생각 보다는 오래된 것들을 다시 끄집어 낼 방법을 고심하는 그들의 취향과 태도를 고루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태도를 실현하는 것에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사랑을 고백하는 여러가지 방법들 가운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손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들과 다름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