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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영상산업 노동 환경

by KOCCA 2022. 12. 29.

2021년도는 방송영상산업 종사자들에게 극한 체험의 장으로 비교되었습니다. 최전선에서 제작인력들을 압박했던 요인은 코로나19의 장기화였는데요. 해외 제작 중단과 야외 촬영지 변경, 제작 현장의 확진자 발생과 이에 따른 제작 지체는 방송영상 제작 인력의 피로도를 증가시켰습니다.

 

오늘은 방송영상산업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 문제점, 개선할 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OECD의 보고에 의하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2020년 전 세계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60%가 연기되었으며, 드라마와 코미디물 중 10%가 제작 취소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영국의 분석 결과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영국 창조산업연합(Creative Industries Federation)의 연구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창조산업 부가가치 중 25%가 증발하였고, 특히 TV 및 영화 등 영역에서는 인력의 42%가 감소되는 파고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국내 방송영상 시장은 코로나19의 타격을 비교적 신속하게 극복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 촬영을 대신할 국내 분량을 확대하거나, 무관객 녹화, 큐레이션 프로그램, 새로운 포맷 도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미디어 이용 증가는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19가 혹독한 시간을 선사했던 것과 달리, 동시대 동안 펼쳐진 OTT의 성장은 코로나19의 역풍을 훈풍으로 뒤바꾸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2019년 <킹덤>에 이어, 2020년에도 <보건교사 안은영>, <인간수업>, <스위트홈> 등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대한 글로벌 OTT의 관심이 증가하였고, 토종 OTT가 이러한 분위기에 합류하였습니다.

 

국내 제작 시장이 실로 오랜만에 활기를 찾게 된 것입니다. 글로벌 OTT의 국내 시장 잠식 이슈와는 별개로, 국내 제작 인력들의 입장에서 OTT의 확대는 제작 참여의 기회 확장과 창작자로서의 보람도 되새기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단 양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원에서도 OTT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추동하였습니다. 넉넉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제작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등 노동 환경 전반의 변화가 포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훨씬 자유로운 OTT 콘텐츠는 국내 제작 인력들이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실험함으로써 창작의 자유를 실현하는 동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주 52시간 근로 제도의 확대 시행도 2020년의 노동시장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19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KBS, MBC, SBS, EBS를 포함, 총 23개 방송 사업장에서 이미 단축 근로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OTT나 단축근로제의 파생 효과가 긍정적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드라마와 예능 장르가 한류와 OTT의 수혜를 받은 것과는 달리, 정보, 교양 장르는 위축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나아가 장르 간 격차는 제작 현장의 인력 변화에도 순차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비정상적 고용이 용인되고, 구두계약 관행이 존속되는 분야도 적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방송영상 제작 시장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인력의 노동 여건의 심각성도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면에서 볼 때, 2020년은 방송영상산업 노동시장이 양적 풍요 속에서 질적 도약을 위한 성장통을 겪은 기간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격변의 시간이 한 해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얼마간은 성장을 위한 고통이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임금과 고된 노동이라는 험한 언표로 상징되는 국내 방송영상산업 노동 환경이 슬기롭게 체질 개선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방송영상산업 노동 환경에 정책적 관심과 개선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노동 환경 개선의 징후들

방송영상 제작 인력의 물리적인 노동 환경은 꾸준히 개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고용연구원이 지상파, 유선방송, 위성방송, IPTV, 프로그램 공급업에 종사하는 정규직 및 비정규직, 프리랜서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방송직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2018년 평균 42.6시간에서, 2019년 전반기 42.4시간, 2019년 후반기 41.7시간, 2020년 전반기 38.7시간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 역시 2018년 약 23%에서 2020년 전반기 9.7%로 급감하였습니다. 또한 주당 평균 연장 근로시간도 꾸준히 감소세를 보여, 2018년 평균 4.9시간 연장근로에서 2020년 전반기 3.2시간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출처: 이경희&middot;김근주&middot;노성철 (2020), <방송산업 종사자의 노동시간 실태와 삶의 질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그러나 방송영상산업 종사자들의 노동시간이 얼마간 단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근로 환경 정상화를 선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인의 평균 노동시간과 비교해 볼 때, 방송영상산업 시장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의 특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OECD가 집계한 2020년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908시간으로, 일주일 평균 36.59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방송영상 제작 인력은 연장 근로시간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인 평균치보다 일주일에 약 2.08시간 더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두계약의 존속과 비정상적 고용 형태

공정하고 합리적 계약서의 채택은 노동 인권 보호의 토대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영상산업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2019년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마련하였고, 실효성 확대를 위해 다양한 후속 조치를 도입해 왔습니다. 2019년 6월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체결을 제작 환경 가이드라인의 기본사항으로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도 성과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2020년에도 서면계약 체결 문화 정착을 위한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6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서면계약 미체결에 대한 조사권을 부여하고 계약 미체결 또는 명시 사항 위반 시 시정조치를 명령할 수 있도록 「예술인 복지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서면계약 위반 신고 및 상담창구가 개설됨으로써 신고, 상담부터 서면계약서 작성에 이르는 종합 지원체계도 마련되었습니다. 2020년 6월부터 약 6개월간 신고 건수는 서면계약 미작성 20건, 미교부 1건에 이르고, 상담 204건, 시정조치 및 과태료 건수가 5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공정한 계약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은 서면계약서 및 표준계약서의 채택 확산으로 나타나는 분위기입니다. 「2020년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 : 제작사 중심」에 의하면, 제작사의 외주 거래 시 표준계약서 채택률이 2019년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드라마 계약의 경우 표준계약서 채택률이 100%에 이르러, 2019년의 93.9%보다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양・예능 부문의 표준계약서 채택도 80.8%에서 91%로 개선되었습니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제작 스태프의 구두계약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정규직 (프리랜서) 방송계 종사자 노동 환경 실태조사」에 의하면, 서면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을 맺는다는 응답자가 40.1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9.2%가 ‘방송 제작 현장의 관행’을 꼽았습니다. ‘방송사 또는 외주제작사가 프리랜서 계약 체결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25.9%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2020년 국내 공공부문 방송사 50개를 대상으로 인력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의하면 ‘질병’과 같은 사유를 계약 해지 조항에 포함한 방송사도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 조사에 의하면, 절반 정도의 방송사가 표준계약서를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구두계약 관행이 특정 직종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됩니다. 작가 집단의 경우, 그간 방송작가협회와 방송작가유니온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집필 표준계약서 채택률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메인 프로덕션 현장 제작 스태프의 경우, 구두 계약이 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스태프 조사 결과는 미술팀의 턴키 계약이 50%에 육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메인 프로덕션 단계의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구두계약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방송영상물의 독특한 제작 구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송영상물은 다수의 인력이 참여하여 만드는 공동창작물의 특징을 지닙니다. 특히 메인 프로덕션 단계에 투입되는 촬영, 조명, 녹음, 무대, 세트 등의 역할은 1인의 힘으로 모두 망라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에 따라 팀장급 스태프가 자신과 함께 일할 퍼스트, 보조 등의 인력을 모아 하나의 팀을 꾸리고, 팀 단위로 제작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팀장의 역량에 따라 일거리가 결정되며, 보조 스태프들에 대한 기술 전수도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와 더불어 촉박한 제작 일정은 하위직 스태프들이 서면계약을 요구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지적됩니다.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일반적으로 고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구분되는데, 방송영상 분야에서는 기간제, 시간제, 간접 고용, 프리랜서, 자회사 등 모든 고용 형태가 각 직무별로 활용된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는 다른 산업이나 업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이며, 법적지위가 모호한 노동 인력의 증가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업무 내용을 정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휘・감독을 행하며, 사용자가 근무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는 환경에서, 작업량에 관계없이 고정된 월 급여를 받지만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력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충족함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인력이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러한 편법 채용 문제는 방송영상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에 대한 보호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법적 지위에 대한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우려됩니다. 스태프 및 감독급 스태프의 근로자성 인정 소송이 증가하는 현상은 이를 방증합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고용은 개인적 혼란의 차원을 넘어서, 전반적인 노동 환경의 악화로 연결될 위험을 지닙니다. 무엇보다 정규직과 유사한 노동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프리랜서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치솟고 있는 제작 시장의 인건비 부담을 프리랜서에게 전가시킴으로써 프리랜서의 물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됩니다.

 

방송영상산업 노동시장의 양극화

방송영상산업 시장에서 노동 인력의 양극화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한류 확산, 종편 및 MPP의 드라마 제작 증가, OTT의 공격적 드라마 투자에 따라 양극화 현상은 서서히 가시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020년 초의 코로나19 위기는 국내 방송영상산업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7월에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방송산업 임금 근로자의 78.6%가 코로나19로 인한 임금 변화가 없다고 응답한 반면, 프리랜서의 67.9%는 임금이 감소하였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4월, 방송작가유니온이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코로나19로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전체 응답자 152명 중 70%가 강제 무급휴가 및 대기 상태에 처하게 되었고, 6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 중단으로 ‘강제 무급휴가’(28%), ‘해고 또는 계약 해지’(16%), ‘임금 삭감’(4%)을 당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금전적 보상 없는 계약 기간 연장과 대기’에 처했다는 응답도 42%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는 특히 취약 계층인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공부문 방송사의 정규직과 비교할 때, 비정규직과 프리랜서의 보수는 정규직 보수의 ⅓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 프리랜서 인력의 어려움은 더욱 큰 것으로 보입니다.

장르에서도 양극화 문제는 드러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인기, 드라마와 예능이 주로 서비스되는 OTT 확대는 국내 드라마의 제작비 상승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장르 간 양극화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마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장르 간 제작비 분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시장 규모, 제한된 재원으로 인해 여타 장르에 대한 투자를 축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장르별 제작비 격차는 이러한 추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tvN의 <지리산>과 <빈센조>의 제작비는 각각 300억 원, 200억 원대로 추정되고, 넷플릭스는 9부작 <오징어 게임>에 254억 원, 10부작 <스위트홈>에 300억 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입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출처 : 좌 <Tving> / 우 <Netflix>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예능 장르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예능의 회당 제작비는 이미 억대에 이르렀고, 간판급 예능 PD들의 OTT 협업에 따라 예능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김태호 PD의 넷플릭스 <먹보와 털보>에는 약 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보이며, 쿠팡플레이에서 선보인 <SNL 코리아>의 제작비는 120억 원 규모로 파악됩니다. 반면, 교양 프로그램의 회당 제작비는 2,000만 원 안팎에 머물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예능에 대한 집중이 교양 장르에 대한 상대적 박탈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정 장르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수준에 처해 있다는 점, 노동 환경의 격차가 심화되는 조짐은 올 한 해 방송영상산업 노동시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프리랜서 중심의 현 방송영상산업 구조에서 노동 인력 간 양극화 심화는 국내 방송산업의 전반적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2019년 말 기준, 3년간 방송용 영상물 매출 실적이 있는 독립제작사 658개사 중 제작 건수 비율이 가장 높은 장르는 교양/시사(43.4%)입니다. 교양 장르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 문제는 신규 제작 인력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야기할 수 있으며, 장르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직종의 처우 문제는 비정상적 고용의 문제와 더불어 국내 방송영상산업 노동 환경의 전반적인 체질 약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점검과 보완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방송 영상 산업백서’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