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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문학]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

by KOCCA 2013. 8. 8.

 

▲사진1 헬렌 포스터 스노우(Helen Foster Snow, 1907년 ~ 1997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작가

 

 

현재 우리나라 국사책을 보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 오직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가들에 의해서만 전개된 것처럼 보여지는데요.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독립을 맞이하기까지는 민족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답니다. 실제로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은 가히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남한은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을 자신이 추구하려는 이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또는 빨갱이로 치부해 역사에서 그들의 흔적을 은폐하기 시작했죠. 그 결과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사회주의자들의 모습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젊은 여류작가 웨일즈는 중국 공산혁명 현장을 목격하여 25명에 이르는 중국혁명가들의 자서전을 쓴 작가입니다. 그녀는 1920~1930년대의 격변하는 동아시아의 식민치하 시절,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김산을 만나 그의 성품과 행동에 매력을 느끼고 그의 인생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김산의 인생이 담겨있는 책이 바로 『아리랑(Song of Ariran)』이랍니다. 이 책은 마치 김산이 직접 자신이 자서전을 쓴 것처럼 김산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과 그의 행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저자는 『아리랑(Song of Ariran』을 통해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주고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왜곡되었던 사회주의자들의 모습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사진2 책 <아리랑>

 

 

 

 

▲사진3 웨일즈 작가

 

 

김산은 1905년 3월 10일 평양 교외의 차산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가난했고, 11명의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았죠.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형수와 어머님의 기독교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만주 국경에서 일어나는 독립군의 전투소식을 들으며 독립 운동을 꿈을 꾸게 됩니다. 3·1 운동은 그가 독립 운동의 꿈을 더욱 확고히 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는데요. 그는 기독교적 순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희망을 기대하며 3·1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일본의 잔인한 폭력에 앞에 그의 희망은 처참히 뭉개어집니다. 그 결과 그가 기독교적 순교 정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서 독립에 대한 그의 사상도 변하게 되죠.

 

 

김산의 인생에 강한 영향력을 준 사람은 금강산 승려 출신의 공산주의자인 김충창과 안창호 그리고 소비에트의 지도자 팽배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그는 김충창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배우고 안창호로부터 정치 세계를, 팽배로부터는 혁명전술을 배웠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1920년에 김산은 약간의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가진 민족주의자였는데요. 상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안창호의 영향을 받아 흥사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민족주의자의 강령이 부질없다는 판단에 무정부주의 단체인 의열단의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결국 김산은 1922년에  김충창으로부터 마르크스 이론을 배우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읽으며 그는 과학적 대중 투쟁의 중요성을 깨닫고 쿠데타 및 테러행위가 모두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중국의 민족주의 운동에는 많은 조선청년들이 가담했는데요, 김산도 1925년 초겨울에 중국의 민족 운동에 가담하죠. 중국 공산당이 소규모 세력이었던 초기에 그는 공산당원이 되었는데요. 1927년 장개석이 공산당을 배반하면서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결국 1930년 11월, 그는 북경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 영사관에 넘겨지게 됩니다. 영사관 관리들은 그를 조선으로 송환하고 그를 심문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그를 다시 풀어줍니다.

 

▲사진4 김산

 

1933년 4월에 김산은 일본 스파이로 오인되어 중국 당국에게 체포됩니다. 그의 강력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지죠. 그는 조선으로 이송되었지만 비교적 빨리 풀려나 1934년 1월에 북경으로 돌아왔고, 그 직후 김산은 자신과 함께 체포되었던 조아평이라는 중국 처녀와 결혼해 잠시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살게 됩니다. 이 와중에도 김산은 조선의 독립을 향한 염원과 조선을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시키기 위한 목표를 꿈꾸고 있었어요. 그는 1935년 후반부터 1936년 초 사이에 상해로 가 이곳에서 공산주의자들을 골격으로 하고 무정부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참여시킨 조선 민족해방동맹을 창설했습니다. 김산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그 조직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조직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죠. 조선해방동맹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은 1936년 8월에 김산을 조선혁명가 대표로 선출했고 그는 중국 공산당 북부 지구당의 권유에 따라 영안으로 옮겨집니다. 1937년 초에, 김산은 백색지구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아내 조아평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이시기에 님 웨일즈와 김산의 만남이 이루어지죠. 이 만남을 통해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자신의 불꽃같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됩니다.

 

식민치하 격동기에 사상가로서, 혁명가로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던 김산은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 북한에서는 연안파,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리랑』을 통해 그의 삶은 새롭게 재평가 되고 있는데요. 3개월 동안 웨일즈에게 22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그의 혁명적인 생애가 밝혀지고,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산 김산은 오늘 날 우리에게 조국과 민족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책은 김산의 행적에 특별한 해석과 견해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대화에서 기록한 김산의 행적을 그대로 정리하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관성이 배제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김산의 행적에 대한 사실여부는 웨일즈와 김산 사이의 의사소통문제, 계속된 개정에서 나온 편집의 문제, 김산의 기억력과 자기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죠.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당자의 말에 의존하여 집필했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또한 번역이 미국과 일본, 한국을 거쳤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김산이라는 인물에 대해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가 조선의 독립을 중국을 통해서만 이루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우리 민족이 주체가 되어 독립적으로 독립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존하려는 점은 작은 오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점들이 존재하더라도 김산에 대한 평가와 『아리랑』에 대한 평가가 저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김산뿐만 아니라 1920~1930년대의 조선인 독립 운동가들이 겪은 좌절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의 정열과 희망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은폐된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독립 활동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자체로 가치 있어요.

 

 

▲사진5 서안사변 이후 팔로군 서안 판사처 였던 곳에 님웨일즈 기념실

 

 

아울러 당시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었던 3.1운동, 중국혁명 및 항일투쟁과 파국에 치닫는 시대 속에 살았던 개인의 삶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독립지사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절박한 심정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감추어진 공산주의 독립 운동가들의 독립운동 양상과 행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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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을 통해 앞으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목표를 이루기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 사진출처

- 사진1-5 네이버 블로그 pan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