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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이야기가 지닌 힘은 여전히 세다, 다만

by KOCCA 2012. 12. 21.


이야기가 지닌 힘은 여전히 세다, 다만

 


이상민 (소설가, 칼럼리스트, 컨텐츠 기획자)

 


피터 잭슨이 10년 만에 <호빗>으로 귀환한다. 이미 <반지의 제왕>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만큼, 이번에는 또 어떤 ‘마법’같은 이야기를 들려줄지 자못 기대가 크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는 블록버스터를 제작하는 슈퍼스타급 감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컬트적인,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재능 있는 젊은 감독이었다. 아마 비교적 최근 관객들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의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그가 B급 호러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어쩌면 그가 <반지의 제왕>의 연출을 맡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재능 있는 B급 영화의 대표감독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성공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 절대적으로 영화화가 힘든 작품이라고 손꼽히던 <반지의 제왕>을 훌륭하게 스크린으로 재현시킨 것은 분명 피터 잭슨의 천재적 재능이라는 덴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단언하자면, 원작 소설이 지닌 ‘후광’ 또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톨킨의 저작들은 판타지라는 장르의 초석을 다진 기념비적인 작품이었을 뿐 아니라 슈퍼 베스트셀러이자 많은 영화 제작들이 탐을 냈던 훌륭한 ‘원천 소스’였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그것이 가치 평가를 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겠지만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객관적 기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원작의 힘, 이야기의 힘은 그만큼 세다.


최근에는 <레미제라블>이 개봉하기도 했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발표한 대하소설이다. 무식하고 가난한 시골 일꾼이었던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치려던 자신을 용서하고 신뢰해준 마리엘 주교에게 보은하고 속죄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숭고한 자기희생을 통해 성인으로 거듭나는 일대기를 그린 <레미제라블>은 영화와 뮤지컬, 만화영화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렇듯 뛰어난 ‘이야기(스토리텔링)’는 그것만으로도 아주 큰 가치를 지닌다. 세대를 아우르고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원천이다. 비단 고전(클래식)에 국한된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러한 예는 현대문학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전무후무한 판매기록을 가지고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10대 소녀와 뱀파이어의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 시리즈 역시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겨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비교적 최근에는 디스피토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십대 소년소녀들의 성장기를 그린 <헝거 게임> 또한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년도 박스오피스를 어렵지 않게 점령했다.


이것은 영화가 주는 파급력을 차치하더라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훌륭한 원작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 영화계나 드라마 관계자들 사이에서 차츰 ‘좋은 원작(이야기)’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공지영의 <도가니>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정유정의 <7년의 밤>, 권은궐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해를 품은 달>이 그 좋은 예다. 이미 이 작가들의 차기작은 벌써부터 판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불붙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만큼 ‘옥석’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찾고 싶어도 ‘작품(이야기)’이 별로 없다.

 


몇 해 전부터 ‘이야기’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유행처럼 부각되고 있다. 더불어 스토리텔링을 타이틀로 내세운 공모전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상금 규모가 1억을 넘는 대형 공모전도 적지 않다. 그중에는 몇 해만에 폐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공모전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2차 저작을 염두에 둔 조항이 필수로 따라온다. 그만큼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갈구가 크다는 반증이다.

 

이제는 ‘이야기’가 가진 가치, 이야기의 힘이 세다는 걸 누구나 안다. 관심도 전에 없이 높아지고, 정부 지원도 늘었다. 이렇게 뭔가 벌일 수 있는 ‘판’은 갖추어졌다. 앞으로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과제가 남았다. 그리고 채우기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하는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원작을 쓰는 작가들, 그들이 창작을 하는 데 필요한 문화적 토양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단지 대규모 상금만을 내걸고 몸집만 불리는 이벤트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미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진 공모전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물론 그럼에도 뛰어난 작품, 작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단지 만족하기엔 그 질량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그 신성의 출현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도 분명히 있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이야기의 힘’이 세다는 것.


다음은 해법이고, 풀이과정이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을 이끌어내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하는 물음을 해결한다면 우리는 훌륭한 자산들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원작에 대한 관심, 원작을 생산하는 창작자에 대한 배려. 


우리도 언젠가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트와일랏잇>처럼 뛰어난 원작들이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나와 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면 너무 낙관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