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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애니메이션에 희망을 겁니다!

by KOCCA 2012. 8. 16.

이 름 : 김 영 호

주요 경력
현재 (주)프로덕션 그림필 대표 및 감독
2010년 ‘천의 얼굴의 티모(광주기업창업투자 지원프로젝트)’ 연출
2009년 ‘유후와 친구들(KBS TV시리즈)’ 연출
2007~2008년 ‘로켓보이와 토로(영국 BBC 방송)’ 디지털 감독
1998년 ‘짱이와 깨모’ 연출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을 너무너무 좋아했다는 김영호 감독.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애니메이션만 보고 달려 왔다. 애니메이션 작화부터 시작해 애니메이션에 관한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배워 왔다는 그의 인생에서 애니메이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인생의 절반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1990년 초반부터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작화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운이 좋아서 프로듀싱과 연출을 꽤 빨리 맡게 됐습니다.” 그는 서울무비 시절에 디지털팀을 맡으면서 기획 단계부터 같이 기술적인 부분들을 개발하는데 참여했고, 작품 제작에서는 작화 이외의 파트를 총괄하며 ‘누들누드’를 비롯해 ‘레스톨 특수구조대’, ‘보리와 짜구’, ‘요랑아 요랑아’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그렇듯이 저희도 95% 이상은 만화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지만, 뮤직비디오 작업이나 게임영상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만화영화는 주로 OEM을 통한 외주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체 제작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호 감독은 프로덕션 그림필은 일반 애니메이션 회사들과는 좀 다른 별난 구조라고 말한다.

 

▲ 작화부터 시작해 애니메이션에 관한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배워 왔다는 김영호 감독

 

“2D 만화영화 업체에서 가장 인원이 많은 파트는 작화 쪽입니다. 하지만 그림필에는 작화 파트가 없고 협력회사에 의뢰해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주로 애니메이션 기획과 디지털 파트의 실무를 담당하는 소수의 인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2D도 요즘에는 디지털로 제작하고 있지만 손으로 그리는 드로잉 부분을 제외한 촬영을 비롯해 편집, FX 작업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그동안 협력 관계사들의 OEM 작업을 처리해 주는 한편, 때로는 자사 프로젝트 작업물을 협력회사에 넘겨서 작업을 진행하는 구조를 병행해 왔다. OEM 수주에 적극적이지 않은 회사 구조상 많은 인력이 상주해야 하는 작화 파트를 상시 유지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서울무비에서 2004년에 나와 호호스튜디오라는 개인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그 후 2007년에 법인으로 전환한 것이 지금의 프로덕션 그림필입니다. 호호스튜디오 시절에는 그룹 지오디(GOD)의 마지막 뮤직비디오인 ‘2Love’도 했었고, 다른 회사들의 OEM 작업도 많이 맡았습니다. 또, ‘요구르팅’이라는 게임영상도 제작했구요.” 김 감독은 이때 다양한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었는데, ‘로켓보이와 토로’가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특히 애니메이션 개발 때부터 참여했고, 그림필에서 본격적으로 매달려서 진행했던 ‘로켓보이와 토로’는 그에게 많은 애착을 준 작품이라고 했다.

 

▲ 2008년에 총 52편의 2D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로켓보이와 토로’

 

“이 작품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개발할 때부터 참여했고 저희가 직접 제작했고 저희 회사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저희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BBC에서 방송된 TV 시리즈 만화영화인 ‘로켓보이와 토로’는 유럽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유럽발 금융위기로 위기를 맞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2007년에는 한자(漢字) 학습의 새 바람을 몰고 왔던 애니메이션 ‘태극천자문’ 작업을 JM애니메이션에서 수주하여 진행했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KBS와 일본에서 합작으로 만들었는데, 그림필에서는 디지털 후반과 편집, KBS에 납품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JM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많은 인기를 모았던 ‘아바타 앙의 전설’, ‘쥬로링 동물탐정’ 등 여러 가지 작업들도 OEM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아직도 쉽지 않다!
그는 2010년 후반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자체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개발이 난항을 겪으면서 회사 운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말한다. 현재 ‘R119(가제)’라는 작품을 자체적으로 기획 중인데, 투자 문제 등이 생겨서 처음에 기획했던 것과는 달라진 부분들도 있지만 최근에 중국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 중이다.


“오로라월드가 지난 2009년에 TV 시리즈로 선보였던 <유휴와 친구들>이라는 작품에서 총괄 디렉팅을 맡아서 작품을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현재 시나리오를 새롭게 쓴 극장판 ‘유휴와 친구들’을 준비 중입니다. 70분 분량의 유아용으로 2013년 5월 5일에 개봉할 예정으로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마친 상태입니다. 기존 TV판과는 캐릭터와 세계관만 동일하고 시나리오나 배경, 에피소드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예정인데, 메인 프로덕션 작업을 위한 투자처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또,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여 와서 협의 중입니다.” 김 감독은 중국에서 투자를 받게 된다면 프리와 포스트 프로덕션은 한국에서 맡고 중국에서 메인 프로덕션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현재 그림필에서 기획 제작 중인 ‘유후와 친구들 극장판’ 이미지

 

김 감독은 지난 2010년에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라는 극장판 작업에서는 기획사인 DNA프로덕션에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직원을 파견해 참여했고, 마무리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애니메이션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는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극장용과 TV용 시장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존에 애니메이션을 걸었던 극장주들의 입장에서는 5만에서 10만, 혹은 많아야 20만~30만 정도의 관객을 유치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그나마 스크린쿼터가 있어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가족이 같이 관람하기 힘든 시간대에 상영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물론 작년에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던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에 220만명, <한반도의 공룡>은 100만 명을 넘겼을 정도입니다. 매년 100만 명을 넘기는 흥행작이 1편 정도는 나와 줘야 하는데,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나마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한시적으로 특수를 누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미국 헐리우드 작품 정도만 일정한 상영 기간을 채우고 흥행할 뿐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을 맡고 있는 현재의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구조에서는 그림필과 같은 소규모 회사에서는 성공한 애니메이션을 내놓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TV시리즈물도 영상의 드라마적인 요소 보다는 캐릭터 상품화를 위한 측면으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TV판 애니메이션도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5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시장이 커지기 힘든 구조입니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뽀롱뽀롱 뽀로로’가 가장 큰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로보카 폴리’ 정도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부분 실질적인 수익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캐릭터 같은 부가사업을 통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에서 가져가는 파이는 크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 2010년 52편의 TV 시리즈로 제작된 ‘천의 얼굴의 티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에 희망을 걸다!
그 동안 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문을 닫는 악순환의 구조가 계속되면서 자체적으로 방송용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10여 개에 불과하다고 김영호 감독은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회사들이 40~50개 정도 되지만 필름으로 완성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또,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돈을 대려는 자본들이 거의 없어서 현실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자체 제작하기는 힘든 실정입니다. 자기 자본과 대출을 통해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한 프로젝트당 많은 비용이 드는 메인 프로덕션 작업을 직원들 월급을 주면서 진행하기는 정말 힘들죠.”


김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투자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는데, 국내에서도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적어진 투자비에서 좋은 퀄리티의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과거에는 경험이 부족해서 퀄리티가 높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능력은 크게 높아졌지만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서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많은 돈이 든다. 또한 많은 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쓸 만한 인력은 게임회사나 다른 직종으로 빠져 나가고 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들이 2D와 3D를 소화하고 있고, 제작비도 대폭 축소되어 한 작품을 낸다고 해도 애니메이션 영상만으로는 수익구조를 맞추기 힘들다고 한다. “사실 제 인생에 절반 가까이 함께 해온 애니메이션을 계속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콘텐츠사업에 대한 발표 자료를 보면 게임시장이 가장 크고 캐릭터 시장, 그리고 한참 아래에 애니메이션 시장이 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은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렵고 캐릭터 사업과 연계를 통해 진행되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 애니메이션 기획과 디지털 파트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주)프로덕션 그림필의 직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애니메이션은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모님께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던 작품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죠.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 중에서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라는 극장판이 있습니다. 상업적로는 실패했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가 매우 높고, 제게 큰 감명을 주었던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말했던 부분이 부모님도 공감해 주셨습니다.”

 

그는 최근에 유아용에서 성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라바’ 같은 작품을 재밌게 봤다고 한다. 어린이 위주의 애니메이션 일색이 되어 버린 국내 애니메이션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림필의 새로운 작품 기대하세요!
“작품을 만들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을 토대로 작품에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 그림필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장르가 완전히 다릅니다. ‘유휴와 친구들 극장판’은 아이들에 타겟을 맞추고 있지만 ‘R119’는 SF물입니다. 작품의 디자인이 ‘건담’ 같은 로봇물인데 전투용이 아닌 소방구조 같은 구조물입니다. 중국에서는 장난감 모델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 현재 그림필에서 기획중인 SF물 ‘R119’

 

김영호 감독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만 제작해서는 미래를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에 출판을 비롯해 캐릭터 같은 부가적인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새로운 작품이 어떤 색깔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 글 _ 박경수 기자 twinkak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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