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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2012년 주목받고 있는 토종 애니메이션 <파닥파닥>

by KOCCA 2012. 8. 16.


 

이 름 : 이 대 희

주요 경력
2007~현재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 기획/감독/대표
2005~2007 ㈜JM애니메이션 Key Animator
2003~2005 ㈜캐릭터플랜 기획/연출/레이아웃/작화

 

지난 7월에 성황리에 막을 내린 SICAF2012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토종 애니메이션의 힘을 과시한 <파닥파닥>. ‘바다 출신 고등어의 횟집 탈출’이라는 독특한 내러티브 설정과 넙치, 놀래미, 아나고, 줄돔, 도미 등 수족관 물고기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애니메이션을 ‘업(業)’이라고 생각하고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만들겠다는 이대희 감독과 만났다.

 

내 길이 아닌 줄 알았던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다가 애니메이션 학과로 전공을 바꿨지만 방황도 많이 했어요. 졸업하고 5년 동안 두 회사를 다녔는데, 처음에 다녔던 회사는 애니메이션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고, 두 번째 회사는 OEM 작업을 위주로 했어요. 처음에 직장을 다니면 설렘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삶에 회의를 많이 느끼게 되죠. 저 역시 대학시절에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지만 밴드를 하는 등 방황도 했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닐 때도 왜 애니메이션 하고 있는지 고민하곤 했죠.”


그는 개인적으로 뭔가를 계속해서 해야 하는 타입이라고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애니메이션이 의외로 잘 맞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을 계속 할 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였다.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지만 돈벌이도 시원치 않았죠. 하지만 <파닥파닥>을 준비하면서 지낸 5년의 세월 동안 애니메이션을 업(業)으로 삼고 평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애니메이션을 업(業)으로 삼아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만들겠다는 이대희 감독

 

이대희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은 긴 시간을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만드는 과정은 무척 힘들고 어려워요. 하지만 한 계단씩 팀원들과 힘을 합치고 서로서로 부족한 점들을 메워 나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게 됐어요. 물론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돼서 많은 돈도 벌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통해 많은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든 거죠.”


그는 회사생활을 통해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들과 방황하면서 고민했던 점들을 하나의 소재로 묶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주변에서 늘 보아왔던 횟집과 물고기들의 삶을 자신의 삶과 비교해 보면서 어느덧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파닥파닥>을 한참 만들 때는 30명에서 50명까지 작업 인원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애니메이션 기획 작업만 하고 있어서 저를 비롯해 감독과 PD 등 4명이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도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려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욕심을 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파닥파닥>이란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다 보니 5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라도 검증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회사로 시작했던 스튜디오는 이제 법인회사가 됐다.

 

 

▲ 바다를 향한 고등어 ‘파닥파닥’의 횟집 탈출기라는 독특한 소재로 관심을 모은

<파닥파닥>의 초기 설정 자료들


친근한 캐릭터와 한국적인 색채감이 돋보여
<파닥파닥>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등어를 비롯해 넙치, 도미 등 물고기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제작진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의 표정을 세밀하게 관찰해 물고기 캐릭터들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캐릭터의 감정 표현에 공을 들였다. 또한 바닷가 부두에 위치한 횟집이라는 공간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국의 바닷가와 횟집, 수산시장을 수차례 답사하며 실사영화 같은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애썼다.


“처음에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때는 물고기가 나오는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정도만 생각했어요. 직장생활 할 때 근처에 횟집이 많았는데, 그때 물고기들을 보면서 저를 비롯해 직장인들의 처지가 비슷해 보였어요. 수족관에 갇혀서 꿈을 키우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말이죠.”


국내에서는 TV판으로 인기를 얻은 다음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TV판을 생각해 보진 않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TV판으로 만들려면 애니메이션 작품도 좋아야 하지만 처음부터 비즈니스 적으로 잘 기획해서 상업화시켜야 합니다. 물론 극장판도 그렇지만 제 경우에는 TV판 애니메이션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어떤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볼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뭔가를 따져가며 기획하는 일은 저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 <파닥파닥> 중간 제작 과정으로, 배경 작업과 캐릭터 설정 등 2D와 3D 애니메이션을 결합했고

한국적인 캐릭터와 정감 있는 색채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처음에 의도했던 것처럼 어둡고 마이너적인 느낌들을 작품의 후반부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점에 그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하다 보면 처음과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이나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 점은 아쉬워요. 작은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만들다 보니 경험이 많은 애니메이터들과 작업할 수 없었죠. 각본대로 진지함이 묻어날 수 있도록 캐릭터에 몰입감이 좀 더 들어갔어야 됐고, 유머러스한 부분도 더 잘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네요.”


이 감독은 <파닥파닥> 제작 초기부터 수족관이라는 답답한 공간만 비춰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드라마와 뮤지컬이 결합된 뮤직드라마 시퀀스를 도입해 변화를 주었다. 영화에 삽입된 뮤지컬 시퀀스는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족관 내부의 앵글에서 벗어나 관객들이 ‘파닥파닥’과 함께 꿈꾸고, 노래할 수 있는 판타지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설정된 일종의 장치였다.


“영화 <어둠 속의 댄서>처럼 현실은 비관적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판타지적인 요소를 넣은 것처럼 <파닥파닥>도 수족관이라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 바다 속을 헤엄치는 고등어의 꿈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판타지를 가미했죠.” 이 감독은 애니메이션에서 현실적인 공간은 3D로 제작됐지만 뮤지컬이 등장하는 부분은 2D로 제작해 대비를 주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연출적인 면에서는 자신이 의도했던 데로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을 본 관객들 중에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회를 먹기가 싫다고 하거나 불편하게 느끼게 됐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점들을 보면 물고기들을 통해 불편한 심정을 전달하려고 했던 연출적인 면들이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 <파닥파닥>을 제작한 애니메이터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과 애니메이션 녹음 현장 모습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가능성을 찾다!
그는 애니메이터 시절에 100번도 넘게 보았다는 <정글북>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고자 애썼다. 또한, <라퓨타>나 <벨리빌의 세쌍둥이> 같은 서정적인 감성이 풍부한 작품들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애써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바로 올해 국내에서는 첫 선을 보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으로 빛났다.


하지만 이대희스튜디오도 지난 2010년 겨울에서 2011년 봄에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지원사원비가 바닥나고 새로운 투자도 받지 못하면서 <파닥파닥> 제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만 놓고 본다면 제 경우에는 즐겁게 일하자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요. 오히려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작품을 만드느라 그러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한편, 그는 국내에서는 극장을 찾는 부모들이 아이들만 애니메이션을 보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족이 함께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이나 보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충분한 애니메이션 상영시간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점도 아쉬워요. 그렇다고 우리 같은 소규모 프로덕션이 헐리우드처럼 캐릭터나 부가적인 사업을 위해 마케팅적인 측면에도 많은 비용을 쓸 수는 없죠.” 다만 그는 지금처럼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선입관이 해결될 수 있는 분위기와 좋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아직도 도전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노력만으로 오늘도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고 있다. “TV판은 만들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 시장은 판로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과 투자 환경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유아용이나 가족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 계획입니다.”

 

 

 

 

▲ SICAF2012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토종 애니메이션의 힘을 과시한 <파닥파닥>의 스틸 이미지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긴 작업이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길 바랍니다. 결과에만 집착한다면 불행해질 수 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첫 장편인 <파닥파닥>을 관객들이 어떻게 점에 포인트를 두고 보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이 감독은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고 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애정과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의 작품들을 많이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3년마다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는 평생 애니메이션을 만들 생각이다.


현재 이대희 감독은 2D와 3D의 표현적인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더불어 기회가 된다면 3D입체영상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제게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업(業)과 같은 존재입니다. 평생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합니다. 차기작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로봇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기획 중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글 _ 박경수 기자 twinkak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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