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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작품을 계속 기억해 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by KOCCA 2012. 8. 5.

이 름 : 최 규 석

주요 경력
2011년 제8회 부천만화대상(울기엔 좀 애매한) 2009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백도씨)
2008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대한민국 원주민) 2004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단편집)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단편집)
2003년 「영점프」(5월 1일자)에서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주 작품인

‘공룡둘리’ 단편으로 데뷔, 독자만화대상 인디 단편부문 선정(공룡둘리)
시카프 만화상 우수단편 선정(사랑은 단백질) 등 다수

 

2003년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주인 ‘공룡둘리’를 선보이면 국내 만화계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최규석 작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백도씨’, ‘울기엔 좀 애매한’, ‘지금은 없는 이야기’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비즈니스센터에서 만화출판과 웹툰, 일러스트 등을 작업하고 있는 친분관계에 기반한 작가집단인 ‘삼단변신’ 소속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작품마다 다른 색깔과 다른 느낌으로
“단행본으로 여섯 권의 책이 나왔고, 작품마다 색깔이 달라요. 어떤 특정한 것들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연재를 거치지 않고 서점을 통해 단행본으로 만화책을 출판하고 있다는 점이죠. 현재 한국만화 시장에서는 이렇게 출판하는 만화작가들이 몇 명 없거든요.”


1998년에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에서 ‘솔잎’이라는 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한 최규석 작가는 실제 만화가 생활은 ‘공룡둘리’ 단편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03년부터 만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웹툰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출판만화 시장도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는 웹툰을 그려도 돈을 받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자신의 홈페이지에 만화를 그려 세상에 알리던 때였죠. 잡지 만화가 없어지면 책으로 내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출판만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1998년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에서 ‘솔잎’으로 금상 수상한 최규석 만화가는

2003년 「영점프」(5월 1일자)에서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주 작품인 ‘공룡둘리’ 단편으로 데뷔했다.


 

포털에서 웹툰을 그려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오기도 했지만 그는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출판만화를 그리는 재미에 더 빠져 있었다. 웹툰이나 게임 쪽에도 기회가 많았지만 출판만화가 주는 매력과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 출판만화를 계속해서 그리는 작가가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학에서 만화이론을 공부해 보고 싶어서 만화학과를 들어가기는 했지만 정작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만화가 형이 살았는데, 1년에 하루도 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화가가 될 생각은 안했거든요. 그러다 만화 쪽에서 몇 번 상을 받고 온라인에도 그림을 올리면서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어요. 제 친구들은 게임 분야로도 많이 진출했는데,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여러 가지 만화관련 작업을 하다 보니 만화 쪽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도 어려운 시기가 많았다고 한다. 공모전을 비롯해 각종 만화 관련 행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수상을 했지만 정작 만화를 연재하자는 제안을 받지 못하면서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미술학원 강사를 하며 만화가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강사 생활을 하면서 그렸던 ‘습지생태 보고서’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만화작가로 되돌아 왔다.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2004년)                       ▲ 습지생태보고서(2005년)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작품들
“제 작품에 영향을 준 작품들은 아주 많아요. 중학교 시절에 김수정 선생님의 만화를 봤는데 그때까지 나온 작품들은 모두 챙겨서 봤어요. 그 작품들을 보면서 대사의 맛을 많이 배웠죠. 또,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도 그 당시에 봤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드래곤볼’이나 ‘북두신권’, ‘시티헌터’ 등을 주로 봤었는데, 그 작품들도 좋지만 캐릭터가 약했어요. 반면에 ‘터치’는 연출이 복합적이었죠. 일반적으로 소년만화는 순차적으로 내용이 흘러가지만 아다치 미츠루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만화를 그리는 것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죠.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지만 특히 ‘아키라’가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그는 ‘아키라’ 같은 작품은 스튜디오에서 분업화된 작업으로만 나올 수 있는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작품들을 만화가 혼자서 해내려고 한다며 엄청나게 고된 작업이라고 말했다. “머릿속에 만화 이미지의 완성은 ‘아키라’다라고 박혀 있어요.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고집하게 됐죠. 전 세계에 있는 그림쟁이들은 모두 저와 똑같은 생각과 경험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되도록 덜 그리고 많이 벌려는 추세거든요.”


 

▲ 대한민국 원주민(2008년)                            ▲ 백도씨(2009년)       

 

▲ 울기엔 좀 애매한(2010년)                ▲ 지금은 없는 이야기(2011년)

주로 종이로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최규석 작가는 손으로 그리는 재미가 더 좋고 긴장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린 그림을 스캔을 받아서 포토샵으로 색칠을 하기도 하는데, 최근에 그린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작품에서는 직접 수채화로 그렸다. 하지만 개인 창작의 영역에서 본다면 만화는 노동량이 가장 많은 분야에 속한다고 그는 말한다.


“작품 제작에 들어가면 죽고 싶을 정도로 작업양이 많죠. 특히 한 컷이면 끝날 장면을 서너 컷으로 늘리고 영화적인 연출 방식을 도입한 데츠카 오사무 이후에 일본이나 한국에서 태어난 만화가들은 그가 제안한 방식으로 그림을 늘려서 그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지금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이런 만화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의 시선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만화가들이 생존할 수 있는 무대가 절실하다!
웹툰이 생기기 전에는 만화를 그리겠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에서 만화를 하겠다는 하는 사람들도 2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대부분 알고 지냈죠. 그래서인지 끈끈한 유대관계도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화를 본격적으로 그리던 시절에는 오히려 다른 만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지 않았어요. 저처럼 장편만화를 하겠다는 작가도 많지 않았고 대부분 짧은 스토리로 작품을 냈어요.”


 

▲ 청소년만화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만화를 그리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는 최규석 만화가와 수료식 모습

 

그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경험담에서 얻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경험들이지만 잘 까먹는 것들을 그리고 있어요.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해도 어떤 작가는 학원 폭력물을 그리지만 저는 돈이 없어서 학원에 못 갔던 일들을 만화의 소재로 삼아 그렸죠. 어떤 면에서는 적합한 소재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제 작품에는 그 동안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최규석 작가는 국내 만화가들이 줄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만화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작품을 만들고 나서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다 만화가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어요. 웹툰 작가들도 첫 연재를 하고 두 번째 연재를 못하는 경우가 많죠. 첫 작품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음 작품을 내기가 힘들어요. 따라서 만화가를 꾸준히 키워내려면 첫 작품에서 실패했더라도 다음 작품을 계속해서 그릴 수 있는 특별한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그는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참석했을 때, 그 지역의 만화작가들은 어떻게 계속해서 만화를 그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에 4~6시간 정도 접시를 닦고 나머지 시간에는 만화를 그려요. 그 정도만 일해도 방세를 내고 다음 작품을 그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하루에 10시간 넘게 접시를 닦아도 집세를 내기도 힘들죠. 무엇보다 만화를 그릴 작업시간이 없어지는 셈이죠.”


그는 젊은 시절에 만화가로 삶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일 때 한 번 더 작품을 제작하느냐 못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적절한 지원책이 제시된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만화출판, 웹툰, 일러스트 등을 작업하고 있는 친분관계에 기반한 작가집단인
  ‘삼단변신’에서 최규석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다.


 

계속 기억이 나는 작가이고 싶다!
한편, 부천의 축제 중 하나인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는 매년 부천만화대상 수상자에게 이듬해 축제의 포스터 작업과 특별전시를 열어주고 있는데, 오는 8월에 열리는 ‘제15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2012’의 포스터는 전년도 수상의 영예를 안은 최규석 작가가 맡았다. 그는 만화한류를 만들어 가는 만화가들의 작업실을 위트 있게 표현했는데, 이번 포스터는 만화가 만들어지는 공간이라는 작업실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마치 ‘월리를 찾아서’처럼 포스터에서 실존하는 만화가들이 등장하죠. 저를 비롯해 다른 만화가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 최규석 만화가 그린 제15회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2012)의 포스터에는

만화가 만들어지는 공간이라는 작업실과 현직 만화가들이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현재 무면허 떠돌이 의사의 스토리를 담은 일본 만화 ‘블랙잭’처럼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떠나는 주인공을 모델로 한 웹툰 작품을 구상 중이다. 또한 ‘최규석 연대기’라는 컨셉으로 BICOF 2012에서 특별전도 준비 중인데, ‘작가와의 만남’에서 독자들과 함께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나눌 예정이다.

만화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더니 그는 “겁먹지 마세요. 창작분야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을 보면 저마다의 성격과 특성이 있고, 자기 확신이 굉장히 강하죠. 누구나 창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작품의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나는 그런 작품을 그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최규석 작가. 그에게 만화는 아직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산이다. 아직도 어떻게 올라가야 할 지 잘 모르지만 그런 것들이 만화를 하는 재미라고 그는 말한다.

 
 
■ 글 _ 박경수 기자 twinkak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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