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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난무하는 가창력 마케팅의 위험

by KOCCA 2012. 8. 9.

 

 

이 솔 이 (싱어송라이터)


서바이벌 프로그램 “the Voice” 의 한국 버전 “보이스 오브 코리아(the Voice of Korea)” 의 돌풍이 한동안 뜨거웠다.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의 난립에 대중은 지쳐있다는 우려를 뒤엎고 목소리 하나로 승부를 본다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황리에 종영,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가수로 활동한 바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 혹은 가수들을 가르치는 보컬 트레이너들 등 이미 프로로 인정받은 보컬들이 대거 참여하며 프로그램의 이슈화에 성공했고, 수준 높은 무대들로 방송을 가득 채워줬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보이스 오브 코리아(the Voice of Korea)”의 원조격인 “the Voice of Holland”.

미국의 NBC에서 판권을 사들여 “the Voice”로 방송하기 시작하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되어 여러 국가 버전으로 제작되고 있다.>


“나는 가수다” 열풍 이후 높아진 대중의 가창력에 대한 기대치는 “보이스 오브 코리아” 에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된 듯 하다. 대체 저렇게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 다 대한민국 땅 위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라는 반응이 넘쳐났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가창력에 대한 기대치, 과연 이것은 가요계에 어떤 작용을 일으킬까?
 
그렇다면 먼저 ‘가창력’ 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를 따지자면 ‘노래를 부르는 능력’ 이다. 가수에게 노래를 부르는 능력은 춤을 추는 능력이나 사람을 웃기는 능력, 혹은 연기를 하는 능력보다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노래를 하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며 가수들의 가창력 정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게 된 것은 우선 나쁘지 않다. 하지만 노래를 즐기는 것 보다 평가하려 드는 것이 우선시, 혹은 당연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이 가창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특정한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굳어져가며 가요계에 또 하나의 획일화 현상을 만들어가는 현상 역시 상당히 우려된다.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의 경쟁률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들의 입시판은 특정 대학들의 경우 500:1을 뛰어넘는 경쟁률을 보인다. 실기 시험 기간이면 심사를 맡은 교수들은 대략 일주일간 최소 하루 9시간 이상 입시생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새 학기가 시작되어 그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이따금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안정적인 호흡과 발성, 그리고 넓은 음역대를 가진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특별한 반짝거림을 찾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까닭이다.

 
몇 년 전 실용음악과 실기 시험장의 에피소드 중 하나를 밝히자면, 오후 5시 경 지쳐있는 심사 교수들의 피곤을 달래줄 만큼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입시생이 시험장에 들어왔었다. 동석한 다섯 명의 심사 교수들은 모두 웃으며 그 학생이 부른 Jason Mraz의 노래를 즐겼지만 학생이 나간 후 이런 평가가 내려졌다. 
 
 
“다 좋은데 시험곡에 고음이 안 나와서 못 뽑겠네.” 

“발라드를 불렀으면 좋았을 걸.”
 
 
노래를 잘 하는 능력에 대한 가장 큰 기준이 고음을 얼마나 높게 낼 수 있는지 여부라는 주장,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발라드를 듣는 것이라는 주장에 나는 반대했지만 다양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넓은 음역대를 가져야 하고, 그것이 확인되지 않은 학생을 합격시킬 수는 없다는 다수의 의견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안정적인 발성을 구사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르가 발라드라는 의견에도 반기를 들 방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Jason Mraz. 화려한 기교 없이 노래하는 이 사람,

하지만 그에게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이 경우는 실용음악과, 즉 음악을 학문으로 전공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인정되어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는 앞서 밝혔듯이 몇 년 전의 에피소드이며 최근에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가수는 음악을 학문으로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에게 자신이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며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그리고 노래를 통한 소통의 방법에는 당연히 고음이나 안정된 호흡과 발성 외에도 다양한 재료가 존재한다. 노래에 점수를 매기기 위한 요소들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절대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가창력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제 대중은 가창력이 좋은 가수를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의 요구를 놓치지 않는 콘텐츠 공급자들은 ‘폭풍 가창력’, ‘가창력 종결자’ 등의 (이제는 다소 식상해진) 미사 여구를 붙이며 가수들을 홍보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위험한 헛점이 보인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는 곧 높은 음역대를 잘 표현하는, 혹은 발라드를 잘 부르는 가수라는 식의 인식을 은근히 조장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가창력 논란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발라드 싱글 한 곡 부르는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아다니고 있을까.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히 짧은 시간에 많은 자극을 전달해야 하는 방송 환경 상 출연 가수들은 높은 점수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약간은 부자연스럽더라도 장르를 전환하고,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음역대를 탈탈 털어 노래하게 된다. 가수들이나 편곡가들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특정한 범위에 국한되는 가창력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콘텐츠 공급자들마저 우르르 따르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순위를 위해 연출한 무대와 소장용 음악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인데, 손쉽게 대중의 귀를 자극할 방편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기법을 그대로 차용해 만드는 음악이 많아지고 있지 않은가. 위압감을 줄 정도의 편곡과 가창을 통해 ‘이렇게 노래를 잘 하니 감탄하며 들어라’ 라는 식의 노래들을 몇 곡 듣다보면 귀가 따가워질 지경이다.


노래를 부르는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편협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여러 대학들의 실용음악과나 보컬 관련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가창력에 대한 몇 가지 조건을 전파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는데, 특정한 기준에 부합해야만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는 인식을 대중이 갖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을 만들어가는 공급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수에 대한 기대치가 한층 높아진 대중은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가수, 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가수에게 가창력이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노래를 듣는 순간 이 가수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니 굳이 가창력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또한 지금처럼 노래 잘 하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한 편곡과 음역의 노래들을 양산하다 보면 어느덧 이러한 음악에 질려버린 대중이 차라리 조금은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가창력보다 비쥬얼에 집중하는 가수들에게 다시 눈을 돌릴 수 있다.


가수에게 눈이 아닌 귀를 집중하게 된 호재를 놓치지 말고 다양한 음악으로 가요계가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미 과도한 가창력 마케팅에 쌓인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대중의 귀는 생각보다 어리석지 않다. 화려한 편곡으로 무장된 가창력 과시용 노래를 만들고 불러야만 좋은 평가를 받으리라는 생각을 공급자 측에서 먼저 버려야 한다. “TV를 봤네” 를 들으며 ‘장기하, 노래 정말 잘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한 둘이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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