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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문화원형 이야기- ‘뱀파이어’와 ‘구미호’의 공통점?!

by KOCCA 2012. 6. 3.

문화원형 이야기- ‘뱀파이어’와 ‘구미호’의 공통점?!

 

 

최근 개봉한 영화 <다크 섀도우>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뱀파이어가 된 주인공 ‘바나바스’가 관에 갇힌 지 수백년이 지난 이후인 1960년대에 깨어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영화입니다. 주인공 ‘바나바스’는 햇볕에 노출되면 살갗이 타고, 거울에 비치지 않으며, 사람들의 피를 마시며 살아가지요. 신기하지 않나요? 아니, 뱀파이어니까 당연하다구요?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뱀파이어’에 대해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영화, 드라마, 게임들이 ‘뱀파이어’를 똑같이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아니 어떻게 있지도 않은 것을 두고 모두가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죠?


‘뱀파이어’라는 가공의 존재의 기본적인 설정들은 루마니아의 뱀파이어 전설에서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뱀파이어 백작으로 불리는 한 인물의 이야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붙어서 “사람의 피를 마시며, 밤에만 활동하고, 햇볕에 노출되면 재가 되어 사라지며, 마늘과 십자가, 은(銀)으로 된 것을 두려워하는” 뱀파이어가 완성된 것이지요. 뱀파이어는 ‘문화원형’의 훌륭한 예입니다.

이렇듯, 문화원형이란 전설이나 신화, 민담, 독특한 관습등을 통하여 사람들의 관념 속에 남아 있는 원초적인 상(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들음직한 이야기,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저러한’ 형태로 존재해 왔기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해 누구나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문화 원형의 의미지요.

우리 문화 속에도 뱀파이어에 필적할만한 가공의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 “구미호”지요.

 

구미호는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문화원형입니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를 뜻하는 구미호는 주로 여자의 모습으로 그려지지요. 외형적인 이미지가 꼬리 아홉달린 여우라면,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구미호는 주로 ‘조력자’, ‘영물’ 또는 ‘유혹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유혹자”로서의 구미호의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지요. 한국에서 구미호는 인간이 되기를 소원하여, 남자를 유혹해 간을 빼 먹는 무시무시한 요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포 영화,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지요.


흥미롭게도, ‘구미호’와 ‘뱀파이어’는 영화, 드라마의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몇몇 재미있는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1. 엄청난 나이

 

 

영화, 드라마 속 뱀파이어와 구미호들은 다 늙은이들입니다! 겉모습에 속아선 안되지요. 구미호들은 흔히 ‘천년’ 묵은 여우 라고 불리고 뱀파이어들은 수 백 년씩 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젊지요. 보톡스도 없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탱탱한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늙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서 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능력의 한계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이 초월자들은 나이도 압도적으로 많네요.



2. 옴므파탈/ 팜므파탈

 못생긴 구미호나 못생긴 뱀파이어는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여배우가 '구미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면 , 그동안 구미호를 맡았던 여배우들을 비교하는 기사가 올라올 정도로 '미녀'들만이 구미호 역할을 맡는 다는 사실 ! 전부 이~쁘고 잘생겼어요. 다만 구미호와 뱀파이어의 차이가 있다면 구미호는 모두 ‘여자’인데 반해 뱀파이어들은 남,녀를 불문한다는 것이지요. 원래 뱀파이어는 ‘남자’의 모습으로 주로 나타났었지만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가 많아지면서 여자 뱀파이어들도 이제 흔히 볼 수 있지요. ‘구미호’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많아지다 보면 남자 구미호도 나타나지 않을까요.


3. 포식자와 먹잇감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

 

 

구미호와 인간, 뱀파이어와 인간 , 이 두 관계의 공통점은 모두 ‘포식자’와 ‘먹잇감’관계라는 것입니다. 구미호는 사람의 간을 먹고 뱀파이어는 사람의 피를 먹지요. 다른 점이 있다면 구미호에게 잡아먹힌 사람은 그대로 영영 죽는 것이지만 뱀파이어들은 자기가 피를 마신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들 수도 있어요. 만약 원한다면 말이지요. 이 먹이사슬의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이 바로 구미호,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게다가 둘 다 자기 정체를 숨기고 먹잇감에게 나타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지요. 고양이 앞에 놓인 쥐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고양이가 쥐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이 두 포식자들은 매우 자주, 자기 먹잇감을 좋아하게 돼서 낭패를 본다는 점이지요.



4. 이종(異種) 로맨스


이종(異種)간 로맨스는 성공가능성이 있는 비즈니스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필두로, 3D 영화 최고 흥행작 <아바타>에서는 심지어 키가 3m가 넘는 나비족과 인간과의 로맨스도 성사되었지요. 사랑은 모든 외적인 조건(외양)을 넘어선 순수한 마음의 문제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런 로맨스에 더 열광 하는지도 몰라요. ‘뱀파이어’와 ‘구미호’는 모두 인간이 아닌 종과 인간과의 로맨스를 그렸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넘을 수 없는 종 간의 장벽을 두 사람의 마음 하나로 뛰어넘을 때, 그 이야기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종(異種)간 로맨스 물에서 뱀파이어와 구미호는 굉장히 유리한 위치에요. 인간의 모습에 송곳니(뱀파이어), 꼬리(구미호)만 더하면 되니까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형성된 문화원형임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와 구미호가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니! 재밌지 않나요?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우리 문화원형인 ‘구미호’가 문화자산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수 많은 영화, 드라마, 게임등이 제작되면서 문화원형이 본래 가지고 있던 내용이 더 풍부해졌듯이 ‘구미호’를 소재로 우리 콘텐츠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새로운’ 구미호의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거든요.

 

 대표적인 로는 지난 2010년 종영된 드라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와 <구미호: 여우누이뎐>을 들 수 있어요.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진짜 로맨스’를 꿈꾸는 엉뚱하고 발랄한 구미호가 현대의 인간세계에 나오게 되면서, 얼떨결에 그녀를 떠맡게 되는 인간남자와의 아기자기한 연애담을 그렸다면, <구미호 : 여우누이뎐>은 구미호가 인간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모성애를 가진 ‘구미호’ 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습니다. 같은 해 방송한 두 드라마가 '구미호‘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구미호’가 콘텐츠 소재로서 가진 매력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다음번에 만나게 될 ‘구미호’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지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