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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제 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 - 대통령상, 문화훈장 수상자는 뉴규?! :D

by KOCCA 2011. 11. 24.


지난 11월 21일 올림픽 홀에서 성황리에 펼쳐진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 시상식.

  올해 2회째를 맞는 '2011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대중문화예술 발전과 한류 확산에 기여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이번 2011년도의 시상은 실연자 뿐만이 아니라 창작자, 스탭 등 예술문화 전 분야 종사자로 그 대상을 넓혀 의미가 더욱 깊은데요. 그 영광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이번에는 국가수반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대통령상’과 예술인 최고의 영예인 ‘문화훈장’을 수여받은 분들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대 통 령 상>

   

 

 김건모

 
  가수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국민가수 김건모.

  92년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한 이후 2집의 <핑계><잘못된 만남><서울의 달><미안해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고 특히 3집의 경우 단일음반 판매 2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엘범 국내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전 국민의 13명중 1명은 김건모의 음반을 샀다는 이야기죠. 올해까지 20년간 13장의 앨범을 발표한 대한민국의 대표가수 김건모. 여전히 발전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국민가수라 할만 합니다.

 

 

 

 이병헌

 

  이제는 당당히 세계로. 글로벌 한류스타 이병헌.

  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여 <내 마음의 풍금><공동경비구역 JSA><올인> 등으로 국민배우로 성장, 이후 <아이리스><착한놈,나쁜놈,이상한놈> 등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맹렬한 활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입니다. 특히 2005년 영화 ‘달콤한 인생’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았고 <지.아이.조>에서는 헐리웃의 인기캐릭터 ‘스톰 쉐도우’ 역할을 맡으면서 헐리웃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였죠. 그 외에도 일본에서 ‘뵨사마’ 열풍 등 한류스타로서 세계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각인시킨 훌륭한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진영

  

  최고의 개성파 가수이자, 프로듀서 박진영.

  94년 다소 충격적이었던 비쥬얼과 패션으로 가수로서 데뷔한 박진영은 <날 떠나지마><허니><그녀는 예뻤다>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성공한 가수로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99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 ‘비’, ‘원더걸스’. ‘2PM’, ‘2AM’ 등 글로벌 한류스타들을 가수들을 발굴하고. 미국음반시장에도 진출하는 과감한 도전을 보여줬었죠. 그 결과 아시아 작곡가 최초로 빌보드 차트 TOP10엘범에 곡이 수록되는 등 한국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양현석

 

  최고의 그룹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YG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양현석.

  1992년 전설적인 돌풍을 일으켰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96년 은퇴 후 97년 YG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습니다. 탄탄한 기획과 경영으로 지누션, 원타임, 세븐, 거미, 빅뱅, 2NE1 등의 가수를 배출, 실력과 개성을 겸비한 YG만의 특색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앞장서서 주도하였죠. 아쉽게도 시상식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철

  
  대한민국의 대표 원로 개그맨, 희극인 남철.

  72년 TBC 코미디언으로 데뷔 이후, ‘웃으면 복이와요’, ‘장군멍군 코미디쇼’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면서 파트너 남성남님과 ‘왔다리 갔다리’ 춤으로 전 국민에게 큰 웃음을 주셨던 희극인이시죠. 아리랑 악극단 전국순회 공연 및 고령의 나이에도 방방곡곡에 위문공연을 활발히 하는 한편 후배 양성에도 이바지한 대한민국 대표 희극인이십니다.

 

   

  

도신우



  한국 모델계의 거목. 모델 도신우. 

 1968년 모델로 데뷔, 국내에는 모델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선 시절에 최초로 남성프로모델 모임인 왕실모델클럽을 창립하여, 남성모델이라는 직업이 한국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공헌하신 분입니다. 73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맞춤신사복 콘테스트에서 선진화된 모델 에이젼시를 접한 뒤, 84년 ‘모델 센터’를 설립합니다. 이후 ‘모델센터’를 통해 1000여 명의 모델을 배출하고, 해외 패션쇼 기획 및 연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에이젼시 운영을 통해 후배양성과 모델계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셨습니다.


   

 

 
홍상수

 

  칸이 사랑하는 감독  , 감독 홍상수

  1996년<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 한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현장 분위기에 따라 그 자리에서 대본을 만든다던지, 백지 대본을 배우에게 주고 알아서 연기를 하도록 하는 등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배우와 만나고 실제 촬영장소와 맞닥트리면서 감독의 내면과 현장에서의 과정이 그대로 투영된 제작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높은 완성도의 영화들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힘><오!수정><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한국 감독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칸영화제에 진출한 감독이기도 하죠. 2010년 칸영화제에서는 <하하하>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이름을 널리 떨쳤습니다.

 

 


<문화 훈장>

 

  


 <보관훈장> 유호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 방송작가 유호.

  대한민국 최다작의 기록을 갖고 있는 방송작가이며, 또한 다수의 대중가요를 작사했던 작사가이기도 합니다. 유호 작가는 광복 후 1945년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뒤 우리의 역사와 말을 되찾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의 신설과 편성에 참여하였습니다. 6.25전쟁 후에도 TBC 방송국에서 <맞벌이부부><짚세기 신고왔네>등 다수의 라디오 드라마를 성공시키며, TBC일요극장 코너가 <유호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정도의 큰 국민적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외에도 <신라의달밤><낭랑18세><맨발의청춘><님은먼곳에><진짜사나이등>수많은 히트곡을 작사하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집필, 현재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펜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 중입니다. 방송 외적으로도 방송작가협회의 교육 원장직을 맡으며 많은 신인작가들을 배출하고 현재도 고문으로 활동하며 대중문화예술발전과 후임양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보관훈장> 오승룡

   

  라디오의 전설. 우리시대의 대표 성우. 성우 오승룡

  1954년 KBS 1기 성우로 데뷔 후 한국 최초 라디오 연속 방송극 <청실홍실><박서방><해바라기 가족><당쟁비화> 등 편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로 많은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며 약 23,655시간에 이르는 공중파 라디오를 진행하신 전설적인 성우입니다.  특히 ‘사수역의 오승룡이었습니다.’라는 멘트로 대표되는 M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 <오발탄>은 63년부터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72년까지 박진감 넘치는 오승룡님의 목소리 연기력에 힘입어 60년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현재도 TBS<길따라 노래따라>의 DJ로서 또 애니메이션에도, TV 교양프로그램에도, 뉴스에서도 왕성히 활동하는 중입니다. 또한 여전히 생방송 2시간 전에 도착해 미리 준비하는 열성과 꼼꼼함을 보이며 방송인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보관훈장> 신중현

  

  살아있는 한국록의 전설. 기타리스트 신중현

 1958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데뷔 후 트로트 일색이던 한국 음악계에 서구대중음악인 록음악, 그룹사운드를 처음으로 들여오신 분입니다. 한국 최초의 록큰롤 밴드인 애드포를 비롯하여 조커스·덩커스 등의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로큰롤과 한국적 리듬감이 결합된 독특한 사운드로 한국 음악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였습니다.  

특히 73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이름으로 나온<미인>등 4장의 앨범은 한국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손꼽히며, <님은 먼곳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등 다양한 히트곡의 작곡, 프로듀싱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 확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작곡자이자 가수이며 프로듀서입니다.

09년에는 아시아 음악가 최초로 세계적 기타제조회사 펜더(Fender)로부터 헌정기타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Fender로 부터 헌정기타를 받은 뮤지션은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스티비 레이본’, ‘잉베이 맘스틴’, ‘에디 반 헤일런’, 그리고 ‘신중현’. 이렇게 단 6명 뿐 입니다.

 

 

 

 

<은관훈장> 하춘화

   

  가요계의 대모, 하춘화.

  1961년 6세의 나이로 최연소 가수로 당시 성인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데뷔하여 오늘날까지 2500여 곡 이상을 취입, 총 133장의 엘범, 120여개의 화려한 수상경력, 8400회 이상의 세계 최다 공연 기네스기록 보유자입니다. 또한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평양에 공연을 연 여가수, 대중가수 최초로 예술철학 박사학위 취득을 한 대중음악계에 큰 대모입니다.

음악 외적인 활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 금액이 지금까지 200억원에 이르는 등 묵묵히 사회공헌에도 힘쓰셨습니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전국을 돌며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선공연을 펼치고 있다고 하네요. 진정한 가요계의 대모답습니다.

 

 

 

<은관훈장> 이수만

   

  대한민국의 대표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75년 포크듀오<4월과5월>로 데뷔한 이수만은 주목받던 가수이자, 유능한 MC였습니다. 대학가요제의 단골MC이자 현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바로 전 MC로 이문세, 유열과 더불어 마삼(馬三)트리오로 유명했었지요.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던 중 잠시 다녀왔던 미국 음반산업과 MTV에 큰 영향을 받아 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업계최초로 체계적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후 H.O.T, SES,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보아, 동방신기, 슈퍼쥬니어, 소녀시대 등 수많은 한류스타들을 기획, 배출하였으며 해외 진출에도 앞장서 SMTOWN 월드투어를 통해 유럽, 미주까지 신드롬을 일으키는 등 한류열풍의 핵심적 주역으로서 한국 대중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은관훈장> 신영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 후, 대학시절 연극부의 인연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1960년 영화<과부>로 데뷔하여 <딸부자집>,<빨간마후라> 등 20년간 총 294편의 영화에 출연 한국영화 중흥기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배우입니다.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로 <연산군><폭군 연산>에서 사극연기의 한 획을 그었으며, 68년에서 71년에 이르는 네편의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의 훌륭한 연기 등 한국적인 남성상의 연기자 계보에 큰 족적을 남긴 배우입니다.

작품외적인 활동으로 한국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거쳐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엽합회 회장, 제주방송 명예회장을 맡은바 있고, 15대 16대 국회의원 등 문화예술계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셨습니다. 2010년에는 점점 사라져가는 옛 영화계의 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해 명보극장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대 재산을 문화예술계에 기부한 진정한 영화인이십니다.

 

이상으로 모든 수상자분들을 만나보았는데요.

과연 대통령표창과 문화훈장의 격에 어울리는 분들이라고 생각되시죠?

 

특히 이번 은관문화훈장은 가수로써 받는 것는 가수 이미자 이후 두 번째이며,프로듀서로서는 최초, 배우로서도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수상자 분들에게는 더 없이 큰 영광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동안 한국 대중문화예술이 걸어온 발자취도 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대중 문화의 영웅들인 수상자들과 또 새로운 스타들이 이끌어갈 한국 대중문화, 또 한류열풍이 어떻게 발전해 갈지 기대해 봅니다. :D   KOREA CONTENT!!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