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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사춘기, 봄은 있었다

by KOCCA 2014. 5. 9.

▲사진1 영화 <써니> 스틸컷



여러분의 사춘기는 어땠나요?

  

봄이 가버리기 전이자 스무살의 생일 다가오기 전, 저는 빨갛게 머리를 물들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내가 이렇게 빨간 머리를 하고 다니겠어?’ 라며 제 오래전의 친구 ‘빨강 머리 앤’을 떠올렸어요. 앤은 제 사춘기를 그대로 담은 캐릭터라고 생각할 정도로 저와 많이 닮았습니다.  

 

저 역시 앤처럼 하루의 온종일을 상상으로만 채우기도 했고, 엉뚱한 일들을 벌려놓아 친구들과 부모님을 많이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또 한없이 고민하며 제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는 시기’라는 정의를 곱씹어본다면 제 사춘기는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 되고 있지요.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슬픈, 또 한 편으로 묘하게 행복한 친구들을 위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면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다고 하는 것은 행복한 투덜거림일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세 저 또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매점으로 달려가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저 별은 네꺼, 이 별은 내꺼.’하며 걷진 않더라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든든했지요. 그런데 2010년, 저와 친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추억들은 스크린을 타고 나와 저희를 당황시켰습니다. 바로 영화 <써니>때문인데요.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는 문장을 잘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는 남자들의 우정에만 초점을 두었던 기존의 문화에서 여자의 우정에 주목하였고 큰 공감대를 형성하여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사진2 영화 <써니> 스틸컷

 

전라도 벌교에서 온 전학생 ‘나미’는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공주 ‘써니’를 결성하지만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가족에게만 매어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추억 속 친구들을 찾아 나선 나미는 그 시절 눈부신 우정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써니>를 보면서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당시 저는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저와 제 친구들처럼 느껴졌고 지금 앉아있는 제 자신은 한 2,30년 후의 저로 인식될 정도로 ‘이 사춘기의 주인공은 나야’를 제대로 확인했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춘기는 중, 고등학교 때만 겪으라는 법은 없듯이, 고등학교 때 친구들만이 친구들은 아니지요. 대학 동기들 역시 사춘기를 함께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진3 드라마 <응답하라 1994> 포스터


  

<응답하라 1997>에 이어 또 다시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서 종영한 <응답하라 1994 >는 대학생들이 겪는 사춘기를 담아낸 작품인데요. 어색했던 사이에서 서로를 극진히 아끼는 사이가 되고,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며 빛나는 스무 살의 이야기 속 어딘가에 꼭 제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저의 경우도 기숙사 친구들간의 각별함이 있는데요.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 또 다른 나와 같은 친구들은 가족이 되어주었던 제 스무 살과 <응답하라 1994>의 스무 살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곁에 있는 친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함께한다는 사실이 봄을 닮은 사춘기 시절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아무래도 ‘첫사랑’이 아닐까요? <건축학개론>을 비롯한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영화들이 많지만, 필자의 마음 속 사춘기의 사랑을 잘 노래한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은 바로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이 열연한 영화 <클래식>입니다. 



▲사진4 영화 <클래식> 스틸컷



같은 대학에 다니는 지혜와 수경은 연극반 선배 상민을 좋아하지만 호들갑스런 수경이 상민에게 보낼 편지의 대필을 부탁하고, 지혜는 수경의 이름으로 상민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합니다. 지혜의 편지로 맺어진 수경과 상민이 가까워지면서 지혜는 괜한 죄의식에 상민을 멀리 하려 하지만 자꾸만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혜는 그녀의 어머니 주희의 첫사랑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비밀 상자를 보면서 엄마의 클래식한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편지를 대신 써주며 사랑이 깊어간 엄마와 자신의 묘하게도 닮은 첫사랑. 이 우연의 일치에 내심 의아해하는 지혜는 상민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만 갑니다.



▲사진5 영화 <클래식> 스틸컷

 

손예진과 조인성이 OST를 배경 삼아 비가 오는 캠퍼스를 달리며 둘만의 무대로 만드는 장면은 우리나라 로맨스 영화에서 오랫동안 남을 멋진 부분입니다. 영화 제목 ‘클래식’에 견주어 생각해본다면 지혜는 주희의 사랑이 다소 고전적이라고 하지만, 본디 사랑이라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 없는 순간은 없습니다. 그저 우린 사랑을 낯설게, 그리고 멀게 느꼈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춘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사랑이란 너무도 깊게 그리고 깊은 만큼 아린 자국을 남기지요.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위에 떠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등의 구절을 통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절함을 잘 그려내고 있는 영화 <클래식>. 많은 사람들 역시 사춘기라는 계절을 통해 지독하게도 아련한 사랑을 품었기에 영화 <클래식>이 지금까지도 첫사랑을 이야기 할 때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춘기라는 것은 어쩌면 각자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개인만의 단어입니다. 그런 모든 사춘기 시절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듣고 싶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는 '자아'에 대한 영화 <오늘이>입니다. 



▲사진6 영화 <오늘이> 스틸컷



16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담아낸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오늘이>는 ‘멜버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한국영화특별전’에 소개되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상을 받으며 널리 인정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이>는 제주도에서 내려오는 신화인 <원천강본풀이>를 소재로한 작품인데요. 나이도 이름도 알 수 없어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오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부모님을 찾아 원천강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행 중 만난 이들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 결국 부모님을 만나게 된 오늘이는 도움을 받았던 이들의 부탁을 해결해주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섭니다.


 

▲사진7 영화 <오늘이> 스틸컷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오늘이>가 '부모님'이라는 자신의 근원(根源)을 알기 위해 떠난 여정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얻고 다시 그 도움에 보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넓은 세상에 나와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가 건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혼자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와 소통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저마다는 세상에 나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면서 자신 스스로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갑니다. 그것이 빛나는 사춘기의 여정 아닐까요? '오늘이'가 자신의 근원을 알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그 여정 속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얻고 다시 베푼 것과 같이, 우리의 사춘기는 각자 개인의 것이지만 우리 모두의 사춘기이기도 합니다. 혼자 웅크려서 ‘나는 누구인지’ 고민하기보다는 영화 <써니>의 칠공주처럼, 영화 <클래식>의 지혜나 주희처럼 사람과 사랑을 통해 사춘기를 따뜻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따스하고 포근한 봄날처럼 말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각자만의 사춘기가 있었을 것이며, 그에 맞는 자신만의 영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춘기에는 따뜻한 봄날이 지나가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깊은 생각에 물드는 가을과 꽁꽁 얼어붙는 겨울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봄은 오겠지요. 


당신의 사춘기에 마침표가 있느냐,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 모두에겐 따뜻한 봄날, 그리고 눈부셨던 청춘의 절정 사춘기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춘기, 우리 곁에는 봄이 있었습니다.



ⓒ 사진 및 동영상 출처

- 사진1, 2 영화 <써니> 공식 블로그

- 사진3 tvN

- 사진4,5 시네마서비스

- 사진6,7 디앤엠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