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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만신>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원형의 나아갈 길을 찾다

by KOCCA 2014. 4. 9.


※ 내용 중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1 영화<만신>포스터



2014년 3월, <만신>은 다양성 영화로는 드물게 관객수 3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그것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이런 흥행 성적이라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의의가 있겠지만, 영화의 소재인 만신, 그리고 한국 콘텐츠계의 화두인 문화원형과 관련 지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간단히 영화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만신이란 무당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만 개의 혼을 몸에 담는,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이기 때문에 만신(MANSHIN: Ten Thousand Spirits)이라 칭합니다. 영화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만신으로 일컬어지는 김금화 만신의 삶을 세 부분으로 나눠 다룹니다.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으나 남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는 이유로 핍박 받는 소녀 김금화 넘세(김새론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한국전쟁의 시기를 견뎌낸 새만신 김금화(류현경 분), 전통이 천대받던 근대화의 한가운데에서도 존재함만으로 만신의 필요성을 다시금 증명해 낸 1970년대의 김금화(문소리 분)가 그것입니다.


 

▲사진2 영화<만신> 스틸컷  



<만신>이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갖는 시사점은 다양합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장르의 경계를 허문 영화였다는 점 입니다. 김금화 만신 본인이 등장하여 본인의 이야기를 진술하거나 기록된 영상이 삽입되고 이것이 황석영 작가와 민속학자 황루시 교수 등 전문가들의 진술로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간중간 삽입되는 배우들의 연기와 애니메이션은 김금화 만신의 삶을 단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여 재창조합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애니메이션 등 여러 장르를 오가는 <만신>의 구성은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만신이라는 존재와 흡사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포스터나 홍보물을 스틸컷 등의 일반적인 홍보 형태를 벗어나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이수역에 위치한 다양성영화관 아트나인에서는 <만신>의 포스터 및 팜플렛 디자인을 담당한 김지평 아티스트와 만신의 콜라보 아트워크를 볼 수 있습니다. 영화관의 분위기도 살려 주고, 홍보 효과도 가지는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지요.

 


▲사진3 아트나인에 전시된 영화<만신> 아트워크



◎ 용서받았기에 눈 감았던 역사의 아픔, <만신>으로 주목 받다.

 

이와 같이 <만신>의 매력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영화의 내용과 조금 더 연관을 시켜 보겠습니다. 앞서 김금화 만신을 연기한 세 배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혹 세 만신의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1931년 출생 이후로 우리나라의 흐름과 삶을 함께 해온 김금화 만신은, 인생의 어느 때에도 고통을 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위안부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은 그녀 자체가 한국의 아픈 근 현대사 자체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만하면 그만 핍박 받아도 될 만한데, 해방 이후에도 새마을운동과 근대화의 일환으로 굿과 만신은 샤머니즘의 하나 정도로 치부되며 역사에서 밀려납니다. 결국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존재이기 때문에 신과 한국인을 가장 잘 연결해줄 수 있는 존재임에도 우리는 무당을 찾는다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도 언급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신을 ‘저급한 것으로 치부되면서도 급한 일이 있으면 찾게 되는’ 이중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었나 봅니다.

 

영화에서는 꾸준히 만신이 이러한 시선에 대응하는 방식은 복수가 아닌 ‘용서’라고 말합니다.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고 바라보아도, 만신은 우리나라의 수백 년 역사를 몸에 담은 존재입니다. 동시에, 이례적일 정도로 다재 다능한 배우이기도 하지요. 


전세계적으로 종교의례가 관객을 고려한 노래와 춤만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뿐더러, 만신은 거의 오페라나 연극 하나에 해당하는 분량을 홀로 해냅니다. 불운을 복으로 바꾼다는 그녀의 소원과 같이, 영화 속 만신은 시대와 사람들의 압박에 무너지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굿에 녹여냅니다. 그렇기에 김금화 만신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미디어에 노출되면서도 오히려 카메라까지 굿의 일부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만신>의 진정한 매력은 우리가 너무나도 터부시해왔던, 그리고 그녀가 너무나도 견디어 왔던 이 부분을 수면 위로 끌어왔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만신이 우리 역사에서 정신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문화원형이자 정신적 지주를 우리가 얼마나 주변으로 밀어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만신을 비롯한 잊혀져 가는 우리의 문화원형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은 끊임없이 있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신>은 이러한 노력이 좋은 스토리텔링 방식과 적절한 실험적 시도를 만나 흥행했을 때 어떠한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몸소 보여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장르의 파괴, 독특한 홍보 방식 등도 역시 결국은 우리가 멀리했던 만신이라는 소재에 대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장치의 역할을 해낸 것이겠죠.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비롯, <비단꽃 넘세>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만신 김금화>의 재판이나 무대인사 및 관객과의 대화에의 성원 등이 그 증명입니다.

 


▲사진4 영화<만신> 스틸컷



◎ 이제는, 우리가 먼저 우리 것을 되살릴 때!

 

만신과 우리 굿은 우리가 역사에 치여 당신을 천대시할 때에도 문화적 매력과 종교적 포용력으로 감싸 준 소중한 존재입니다. 만신 뿐만이 아닙니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도 근대화의 압박도 사라진 지금, 우리 민족을 지탱해준 문화의 많은 부분이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만신>을 통해 이러한 문화원형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민족적 설득력과 힘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감싸 줄 차례입니다. 문화원형의 콘텐츠화는 문화원형을 수면 위로 올리는 데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원형의 재발견과 더불어 그에 맞는 표현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신>의 경우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선 만신이라는 소재를 살린 탈 장르적 형식과 동양적 아트워크 등이 한몫 했지요. 물론 적절한 표현 방식이라는 것은 문화원형의 본질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파악할 수 있겠죠? <만신>의 뒤를 이을 우리 문화 콘텐츠를 기대합니다.


 

 ⓒ 사진 출처

사진1,2,4 영화<만신>공식홈페이지

사진3 화가 '김지평' 블로그(http://jipyeong.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