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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왜 우리는 히가시노 케이고에 열광하는가?

by KOCCA 2014. 4. 10.


▲사진1 영화 <방황하는 칼날> 메인 포스터(좌), 대자보 형식의 이색 홍보 포스터(우)



2014년 4월, '대한민국의 심장을 베어버릴 문제작'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 개봉합니다. 딸의 죽음이 소년들의 성폭행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 주인공 상현(정재영 분)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형사 억관(이성민 분)에게 쫓긴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이미 개봉 이전부터 복수, 소년범 등의 화두와 대자보를 이용한 홍보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현재 쟁점이 되는 부분에 강렬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이 영화의 원작자는 놀랍게도 일본 작가인 '히가시노 케이고'입니다.

 

 

▲사진2 히가시노 케이고의 영화화된 작품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용의자X> 메인 포스터

 

 

사실, 이미 히가시노 케이고의 많은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을 원작으로 한 방은진 감독의 <용의자X>, 세 권으로 구성된 소설 <백야행>을 영상화한 박신우 감독의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등이 그것입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들은 서점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차지합니다. '추리'라는 공통 요소가 있긴 하지만 확실히 다른 한국과 일본의 정서를 생각했을 때 과연 히가시노 케이고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양국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요?

 

 

◎ 추리를 넘어 사회를 담다

  

우리나라에서 '히가시노 케이고'하면 가장 널리 알려진 <용의자X의 헌신>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이혼한 여성인 야스코는 전남편의 폭력행위에 못 이겨 그를 살해합니다. 이에 그녀를 흠모하던 옆집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그녀의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면 완전히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적 요소가 들어간 로맨스나 드라마라고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용의자X>는 원작보다 멜로적 감성이 풍부하게 나타나 '감성 멜로물'로도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백야행>이나 <방황하는 칼날> 역시 한국에서는 추리물보다 스릴러와 로맨스, 사회비판물 등 다양하게 재조명한 영화로 개봉되었습니다.

 

추리소설 문화가 우리보다 조금 앞선 일본에서는 범죄에 대한 추리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범인의 심리를 파헤치는 소설이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칭해지며 추리 소설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파 추리소설가의 예로는 <화차>를 쓴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쓴 스웨덴의 저술가 스티그 라르손 등이 있겠습니다. 



 ▲사진3 사회파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화차> 메인 포스터

 


이들의 작품 또한 각각 변영주 감독의 <화차>,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로 영화화되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러한 사회파 추리소설들이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의 소재로 주목받는 것은 추리를 중심으로 다루는 '본격파 추리소설'에 비해 범인과 피해자, 사회 등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중에도 특히 히가시노 케이고의 소설은 한국에서만 세 작품, 일본 작품까지 더하면 무려 17개의 영화로 재구성되었습니다.



◎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다

 

이가시노 케이고의 작품이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사회파 추리소설가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통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게 아닐까요? 아마 그것은 일본 내의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정서의 울림일 것입니다. 일본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은 지금까지도 거장으로 불리는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에게서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추리소설에서 추리적 트릭이 아닌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를 파고들어 간 작가인데요. 


이렇게 범인의 심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범인이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동기’를 밝혀내게 되고, 범행의 원인은 부조리한 사회에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회파 추리소설'로 불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만 본다면 범행의 동기가 되는 사회적 모순은 일본의 사회질서에 맞추어진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파 추리소설 역시 세분화되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랬듯 범인의 동기를 통해 사회의 일면을 파헤치는 '미야베 미유키', 추리의 원인을 파헤치며 환상과 몽환, 노스텔지어의 세계를 펼쳐내는 '온다 리쿠' 등 범행 동기에 눈을 돌린다는 점만을 공통점으로 사회파 추리소설은 다양한 방식으로 쓰입니다.

 

 

▲사진4 사회파 추리소설의 계보를 잇는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 표지

 


이렇게 다양해진 사회파 추리소설 중에서도 히가시노 케이고의 소설은 사회적 모순에서부터 개인과 개인 간의 사랑까지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이나 부성애 등 꼭 일본의 사회상황을 알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이죠. 물론 각 나라의 문화나 사회상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 경우 국가의 경계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심리, 정서를 선택한 것은 그 매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 ‘이과적 감성’, 읽는 이의 상상력을 깨우다

 

히가시노 케이고의 작품이 인기를 얻는 또 다른 이유는 담담한 문체와 플롯(이야기의 전개 방식)에서 오는 잔잔한 충격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과적 감성’이라고도 불린다는데요. 실제로 오사카 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여 관련 회사에 다니다 소설가로 전향한 '이과' 작가인 히가시노 케이고의 작품에 딱 어울리는 별명인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에 꼭 필요한 수사과정과 트릭의 비밀이 밝혀지는 반전, <용의자X의 헌신>에서의 ‘헌신’과 <유성의 인연>에서의 ‘인연’ 등 모든 격정적인 부분을 흥분 없이 담담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독자는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 입니다. 그의 작품을 눈여겨보았던 감독들도 군더더기 없는 그의 묘사에서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사진5 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지금까지 히가시노 케이고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었던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의 원형을 살펴보는 데에 일본의 장르문학을 본다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력과 더불어,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된 그의 작품은 흥행적인 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작품 <방황하는 칼날>이 제작되고 개봉하는 것은 여전히 놓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죠? 


<방황하는 칼날>이 원작의 이러한 매력들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살려냈을지, 기대해 봅니다.


ⓒ 사진 출처

- 사진1,5 영화 <방황하는 칼날> 공식 홈페이지

- 사진2,3 영화<백야행, 용의자X, 밀레니엄, 화차> 각 공식 홈페이지

- 사진4 도서출판 비체, 문학동네


ⓒ 참고문헌

이동,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회성 고찰, 2011

- 이건지, 일본의 추리소설-反문학적 형식, 대중서사연구 제3호,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