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와 플랫폼 간 결합
2019년 3월, KBS는 초이락콘텐츠팩토리(이하 초이락)와 합작으로 KBS Kids 채널을 독립 법인화 한다고 밝혔습니다. 초이락은 국내 유명 완구업체 손오공의 창업주 최신규 회장이 설립하였으며, 설립자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 기업입니다. <터닝메카드>, <카봇>, <소피루비> 등 유명 완구와 애니초이락은 완구에 맞춰 IP를 기획한 후,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경영하고 있습니다. 경쟁사인 영실업도 애니메이션으로 IP매출을 올리는 전략을 채택하지만, 초이락은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닙니다. 특히, 기획된 완구는 손오공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완벽한 자체 개발 구조와 수익모델을 확보하였습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브라보키즈를 자회사로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KBS와 합작 법인 설립은 초이락 애니메이션의 쏠림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KBS노동조합과 애니메이션산업 유관단체들은 공영방송 채널의 사유화를 이유로 반대를 표명하였습니다. 이들은 초이락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KBS Kids에서 우선적으로 편성되어 다른 애니메이션의 입지가 줄어들고,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애니메이션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합니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기존 플랫폼이 국내 애니메이션 방영권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특정 업체와 합작은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13년 EBS가 애니메이션 제작사에게 홀드백(hold back)을 기존 3주에서 6주로 늘리기로 했을 때 업계 반발이 심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케이블, IPTV를 통한 유료 VOD와 같은 부가 판권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에게 홀드백 연장은 바로 재정 타격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TV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회당 평균 1억 원 이상이 소요되지만, 방송사가 지급하는 판권료는 제작비의 1/10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완구 기업을 중심으로 방영을 조건으로 판권료를 받지 않는 계약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사와 플랫폼 간 결합은 특정 업체의 애니메이션을 우선적으로 편성하거나, 타 애니메이션의 판권료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결국, KBS와 초이락의 합작법인 설립 과정에서 나타난 업계 반발은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TV용 애니메이션 판권료의 편당 금액 기준 획정과 판권료에 대한 방송사의 투명한 공개 등 산업 생태계의 건전성 회복을 위한 정책적 시도가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통업체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콜라보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콜라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GS25는 그동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콜라보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스누피>, <미니언즈>, <디즈니>, <원피스> 등 해외 애니메이션 캐릭터 제품 일변도에서 최근에는 국내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공동으로 제품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2014년 <미생> 관련 상품을 출시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안녕 자두야>, 2019년 <유미의 세포들>에 나오는 세포깡을 직접 제작, 판매하였습니다.
2019년 GS25는 애니메이션 <좀비덤(Zombie Dumb)>과 대규모 콜라보를 진행했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할로윈 시즌에 진행된 콜라보 프로모션으로 과자(243%), 봉제인형(210%), 사탕(145%), 캐릭터빵(96%) 매출이 직전 주말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GS25의 SNS 홍보로 <좀비덤> 유튜브 채널 구독자와 조회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외에도 2D 형태의 상품 패키지 디자인으로 2D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지도가 증가하고, 국내외 인형 업체와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하며 <좀비덤> 콜라보 상품의 추가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제작사는 GS25와 콜라보 성과를 바탕으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와 2020년 할로윈 프로모션, 상품 팝업스토어, 공연을 협의하였고, 중국, 홍콩, 대만 업체와 피규어컵, 가방, 의류 등 관련 계약을 진행하였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는 2019년 <로봇 태권 V> 피규어가 포함된 펩시콜라를 출시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프로모션에 능한 패스트푸드 업계도 콜라보를 꾸준히 진행하였습니다. 맥도날드는 ‘이 달의 장난감’을 포함한 해피밀 세트를 매월 출시하는데, 대부분 애니메이션 캐릭터입니다. 국내 업체인 롯데리아도 <포켓몬스터>, <원피스> 등 해외 애니메이션 캐릭터뿐만 아니라 <로봇 태권 V>와 <검정 고무신> 등 국내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콜라보는 제작사와 기존 업계가 함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져다 줍니다. 소비자에게도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접하도록 유도하여 소비 만족도를 높이는 계기로 기능합니다. 향후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가 이뤄지도록 거래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하여 애니메이션산업의 확장을 도모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웹툰 서비스로의 애니메이션 확장
2019년 11월 어린이 콘텐츠 전문 업체 아이나무와 EBS가 어린이 웹툰 플랫폼 EBSTOON을 출시했습니다. EBSTOON은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제공하며, 취향 혹은 부모 추천에 따라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작품과 리스트가 달라집니다. 어린이에게 선택권을 부여한 EBSTOON의 출시는 애니메이션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웹툰 플랫폼은 애니메이션 확장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보완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현재 서비스되는 작품 중 상당수가 E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원작이거나, 애니메이션 준비 중인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에어로버>는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스크롤 편집으로 웹툰만의 고유한 화법과 연출로 재탄생했으며, 자세한 뒷이야기로 이용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세미와 매직큐브>도 애니메이션에서 보지 못한 개그 컷과 상황묘사를 추가하며 재미를 배가시켰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에피소드를 마무리해야 하는 TV 애니메이션 특성상 소소한 이야기가 제외되는데, 이를 웹툰이 보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BSTOON에서 웹툰 연재를 위해 제작되는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세계관과 시나리오를 그대로 웹툰으로 옮겨 재편집한 작품,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는 유지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없었던 장면과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작품,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은 유지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다루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다룬 오리지널 스토리 작품, 애니메이션 세계관을 확장하여 좀 더 높은 연령대의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오리지널 스토리 작품으로 구분됩니다.
한편, EBSTOON은 플랫폼 출시와 동시에 오픈 이벤트를 진행하였고, 이벤트에 응모한 회원 중 추첨을 통하여 <세미와 매직큐브>의 피규어, <공룡대발이>의 봉제인형과 화석 발굴 키트, <말랑말랑 무브먼트>의 가방 고리 등을 선물로 증정했습니다. 웹툰으로 연재하는 작품은 도서, 피규어, 팬시, 문구 등 기존 굿즈를 넘어 다양한 콜라보로 어린이 대상 악세서리, 코스메틱, 가구, 식음료 등으로 확장할 전망입니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만으로 유지되던 기존 부가상품시장에 보완제로 작용하면서 추가 성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애니메이션 제작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먼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된 사례를 살펴보면, 웹툰 <시타를 위하여>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제작사는 총 5,000만 원의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회당 5~10분 분량으로 총 12화로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에서 838명이 참여하여 7,800만 원 이상을 모금하며 156%의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제작사는 DVD, 콘티북, 아트북, 포스터와 엽서, USB 타입의 OST 음반 등 45,000원~115,000원 상당의 펀딩 리워드를 제공했습니다.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의 OST 발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되었습니다. 국내 방영 15주년을 기념하여 2019년 9월 27일부터 <달빛천사> OST 국내 정식 음반 제작에 필요한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펀딩이 시작되었는데, 7만 명이 넘는 후원자가 참여해 목표액 대비 7,989%를 달성하여 총 2,636,684,000원을 모금하였습니다. 이것은 애니메이션 관련 크라우드 펀딩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기존 구성은 USB 카드형 음반, 8P 북클릿, 3단 디지팩 구성으로 시작하였고, 인기에 힘입어 추가 구성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디자인과 콘서트 대관료 사용 등 여러 문제가 생겨 7,000여 명에게 환불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워낙 대규모 펀딩이 이루어지다 보니 모든 후원자의 요구를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IP 관련 문제, 디자인 및 자금운용 논란 등 여러 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나,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후원 창구가 마련된 것은 의미 있는 부분입니다.
이 밖에 단편애니메이션 <즐거운 나의 인생>, 네모난 동물들의 이야기인 <픽코의 동물 친구들>, 1인 애니메이션 아트북인 <트윙클>, 웹애니메이션 <당신과 영화>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가 텀블벅에서 자금을 조달하였습니다.
타 소셜 크라우드 플랫폼에서 진행된 애니메이션 펀딩 사례를 살펴보면, 국내 2D 애니메이션 제작사 그리메 스튜디오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거신대전>의 굿즈 리워드를 와디즈에서 진행했습니다. 펀딩은 115명이 참여하여 12,605,100원을 모금하며 설정액 대비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카카오같이가치를 통해서도 애니메이션 펀딩이 이뤄졌습니다. 전태일 재단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제작진과 함께 투자 및 제작 완성까지 맡아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태일이>를 제작하며 카카오같이가치에서 펀딩을 실시하였습니다. 총 1만 명 이상이 참여하여 목표액 1억 원을 넘겼습니다.
제작 기간이 길고, 완성본의 흥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국내 애니메이션산업 환경에서 투자자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할 대안으로 온라인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이 점차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투자금 조달은 일차적으로 제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이차적으로 펀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도 제고 등 사회적 환기 효과도 추후 작품의 흥행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크라우드 펀딩이 투자 분위기와 작품의 인지도에 따라 좌우되면서 중도 무산되는 경우가 많고, 펀딩 관리, 홈페이지 디자인 등 크라우드 펀딩에 필요한 자원과 투자 역시 적지 않다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 애니메이션 산업백서'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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