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인데도 늦잠을 못 잤다. TV에서 틀어주는 애니메이션 ‘디즈니 만화동산’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정말 열심히 봐서 그랬는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한정된 몇몇 시간대를 빼놓고는 어린이가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시절, 나를 위한 얼마 안 되는 황금시간대였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을 때 영상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이 부모 옆에 얌전히 앉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상황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TV도 스마트폰처럼 터치가 되는 줄 알고 TV 화면 곳곳을 손으로 눌러본다고 한다. 그들에게 퍼스트 스크린은 TV가 아니라 모바일이다. 문제는 급변하는 매체환경 속에서 미디어로 인한 폐해도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편성된 시간대에 사전심의를 받은 결과물인 TV 프로그램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때나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서 중독에 빠질 수 있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이런 무분별한 시청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인터넷 콘텐츠 가운데 가장 아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 건 ‘1인 방송’이라고 불리는 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이다. 지난해 EBS와 스쿨잼 조사 결과 초등학생이 가장 닮고 싶은 인물 1위는 김연아, 2위는 세종대왕, 그리고 3위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도티가 나왔다. MCN 업체 다이아TV의 오프라인 행사였던 다이아 페스티벌에는 4만 3000여 명이 참가했다. 인터넷 방송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존의 미디어 교육은 신문을 활용하거나 방송을 체험하는 방식이 주였기 때문에 현재의 매체환경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 뉴미디어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방법은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계간 ‘미디어 리터러시’에 소개된 김자영 동신 초등학교 교사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분별력을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인터넷 방송에 확대 적용한 예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목에는 ‘매체로 의사소통해요’라는 단원이 있다. 김 교사는 이 단원을 교육할 때 인터넷 방송을 소재로 활용했다. 인터넷 방송 서비스 로고를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어느 회사 로고인지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서비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파악하였다. 또한 인터넷 방송의 장점과 문제점을 다룬 여러 신문, 방송 기사를 읽고 인터넷 방송의 ‘좋은 점’, ‘나쁜 점’, ‘흥미로운 점’을 정리하게 하면서 스스로 고민하게 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가 공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제안한 ‘개인방송 다이어트’ 일지도 주목할 만하다. TV 시청 행태를 스스로 기록하는 ‘미디어 다이어트’를 확대한 개념으로 플랫폼, 장르, 특징, 진행자, 주제, 소재와 이용시간과 의견을 적는 식으로 일지를 쓰는 방식이다. 이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특정 미디어를 시청하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인터넷 또는 모바일방송은 먼저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를 자신이 아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이다.
BBC, CNN 등 언론사들은 가짜 뉴스에 대항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한 허위뉴스 사례도 많아졌다. 인터넷상 허위정보(가짜 뉴스)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역사적 진실이 분명히드러난 사건을 왜곡하거나 특정 연예인을 향한 일방적 비방성 내용,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이나 터무니없는 의혹을 다룬 영상을 찾는건 어렵지 않다. 또한 이런 뉴스에 누구나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도 있는 게 요즘 우리의 현실이다. 중독과 기준 없는 노출, 이것은 미디어 교육이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된다.
가짜 뉴스와 인터넷상의 정보를 구분하는 미디어교육의 핵심은 ‘신뢰할 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는 데 있다. 물론, 믿을만한 정보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는 난민과 무관한 폭행 사건 사진과 영상이 난민 범죄라는 설명과 함께 유포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사진을 토대로 영상을 구성하는 등 동영상까지 조작하는 ‘딥페이크’ 기술까지 나왔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사들은 가짜 뉴스에 대항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는 방식의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주어진 뉴스 중 가장좋은 뉴스와 가장 좋지 않은 뉴스 뽑고 이유 말하기’ 등 신뢰할 만한 뉴스를 고민하게 한다. 이들 교육을 토대로 허위정보를 구분하기 위한 교육 방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있다.
첫째, 매체를 확인해야 한다. BBC는 허위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의 첫 번째로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뉴스 제공사인가?”부터 확인하라고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카카오톡에서도 정보를 만든 이를 신뢰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언론사 콘텐츠라고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언론이 같은 내용을 다뤘는지도 살펴야한다.
둘째, 근거가 얼마나 있는지 따져야 한다. 좋은 기사나 시사 콘텐츠는 보통 많은 수의 전문가나 관계자들이 등장하고, 복합적인 주장이 담겼다. 출처없이 ‘카더라’식으로 하는 말이 그럴 듯해 보여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은 “허위정보는 근거 없이 흥미만 자극하는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여러 취재원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BBC 가이드라인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 곳이 지도상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인가?”, “주장에 대한 하나 이상의 증거가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셋째, ‘악마의 편집’에 주의해야 한다. 원본이 아닌 이상 가공될 수밖에 없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내 성향에 딱 맞는, 보고 싶은 내용은 누군가가 이익을 얻기 위해 왜곡하거나 조작한 내용일 수있다. CNN의 가짜 뉴스 구별법에는 “지나치게 반갑고 믿을 수 없이 기쁜 기사는 한번 의심하라”는 대목이 있다.
유튜브 등 접근이 쉬운 채널을 통해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청소년들에게전달되기도 한다.
사진은 유튜브에서 ‘충격’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의 결과 화면.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는 남녀노소를 모두 포함하는 과제가 되어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교육 방법이 있어도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곤란하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미디어 시대, 일방적 교육보다는 직접 제작하는 체험 교육을 연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제작’과 ‘비판적 이해’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미디어 교육 선진국으로 꼽히는 핀란드의 티꾸릴라 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있다. 그곳의 미디어 담당 교사인 안티 팬티쾨이넨은 “좁은 개념에서 뉴스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육도 미디어 리터러시지만, 크게 보면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공부하고, 콘텐츠를 제작해 시민으로서 표현의 수단을 확장하는 것도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언론 수업 때 ‘학교 이미지를 실추하는 콘텐츠 제작하기’를 과제로 준다. 학생들은 학교에 쓰레기를 합성하고, 저질스러운 음식을 학교 급식이라고 왜곡한다. 황당한 과제 같지만 속고 속이는 게 얼마나 쉬운지 직접 경험하게 하는 차원의 교육이다. 다큐멘터리 수업에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틀어주고 학생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해 토론하게 했다. 교사는 “이걸 왜 보여주는지 맞추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정답을 맞히지 못하자 교사는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내용이 가짜임을 밝히며 “내가 교사라고 해서 신뢰하지 마라. 모든 정보가 사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스스로 능력을 길러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교육이 곧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윤리교육을 학교에서 시행한다고 모두가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무한한 인터넷 공간에서 왜곡된 정보나 자극적인콘텐츠를 퍼뜨리는 이들을 일일이 제재할 수도 없고, 처벌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시청을 금지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부모들은 자신들의 유년시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막는다고 안 볼 애들이 아니다. 이왕 보는 거 ‘잘’ 보게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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