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각국의 문화가 자유롭게 공유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로 대변되는데 소위 문화제국주의에 의해 세계 각국의 고유한 문화들이 자기 색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영역이 서구화 되어 가고 있어서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음악 시장에서 우리 고유음악의 비율이 현저히 낮음을 보면 국악이 그야말로 ‘음학’으로서만 남아있게 될까 무서울 정도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것만을 고수하기는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것을 구태의연하게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 것을 온전히 지키되 시대에 맞는 음악을 하는 국악밴드들이 많이 있는데요. 국악밴드에 대해 알아보고 7월 30일에 2집 앨범이 발매된 ‘고래야’를 만나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사진1 고래야 프로필 사진
현재의 퓨전국악밴드를 이야기하기 전에 국악가요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악가요는 국악의 장단이나 가락을 살려 대중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민요풍의 창작가요를 말합니다. 국악가요의 연원은 일제강점기 민요풍의 대중가요였던 신민요에서 찾아지는데요. 당시 신민요는 특정 작곡, 작사자에 의해 짧은 유절 형식의 민요풍 가요로 만들어져 양·국악 혼합합주(일명 鮮洋合奏)에 의해 반주 되면서 대중에게 현대적인 민요로 유행되었습니다.
국악가요는 1970년대 후반 국악계 안팎에서 소규모 양·국악 혼성 실내악단에 의해 반주 되는 민요풍의 창작가요로서 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퓨전국악의 대중화로 인해 민요의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그 하위 갈래로 자리 잡았으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쇠퇴일로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몇몇 훌륭한 퓨전국악밴드의 등장으로 국악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잠비나이’가 있는데요. 글래스톤베리 실버 헤이즈 존의 총 책임자인 말콤 헤인즈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2012년 뮤콘을 통하여 처음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과 해외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보았고, 2013년 에이팜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당시 열린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주목한 이들 중 하나가 '잠비나이'였습니다. 그는 잠비나이를 두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밴드"라는 표현을 했었습니다.
'고래야'는 201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고 평점을 받으며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외에도 세계무대 속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국악밴드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노래에 관심을 더 가질수록 더 좋은 음악이 나와 세계 속에서 국악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 퓨전국악밴드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http://fgugak.com/ 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영상1 잠비나이 <소멸의 시간> 뮤직비디오
개인적으로 퓨전국악밴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노래 하나를 추가로 소개하겠습니다. 2006년에 1집을 발매하고 활동하는 퓨전국악밴드 '프로젝트 락'의 <난감하네>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난감하네~' 부분은 예능에서 쓰이기도 할 정도로 나름 많이 알려졌습니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별주부전' 또는 '수궁가'를 배경으로 만든 노래인데 전통적인 판소리극을 연상시키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들을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도 국악이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 영상2 프로젝트 락 <난감하네> 뮤직비디오
▲ 사진2 고래야 2집 앨범표지 및 발매 공연 정보
CJ Tune UP 뮤지션 선정, 천차만별 콘서트 대상,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최고 평점 획득 등 국내외 다양한 영역에서 주목받았던 국악밴드 고래야가 7월 30일 정규 2집 [불러온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불러온 노래]는 한국의 토속민요를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이 앨범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민요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전통사회의 민요는 본래 작곡가나 작사가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노래들이기에 부르는 사람에 따라 내용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중 인기 있는 노래는 널리 퍼져 그 시절의 유행가가 되기도 했죠. 고래야의 2집 [불러온 노래]는 바로 그러한 방식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수많은 민요가사 중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고르고 오늘날의 이야기와 멋을 더했습니다. 특정한 곡을 리메이크하는 것이 아니라 민요 자체를 재해석하는 방식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민요, 2014년 현재의 유행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고래야가 불러온 것은 노래만이 아닙니다. 잊혔던 전통사회의 악기들도 함께 불러왔습니다. <아이고 답답>에서는 제주 아낙들이 물을 길 때 사용했던 물허벅 소리를 전면에 내세웠고, 인생의 황혼기를 노래한 <생각나네>에서는 목화솜을 타던 활을 이용한 연주를 선보입니다. 익숙한 생활 도구였지만 지금은 잊힌 옛 악기들의 소리는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가사와 함께 시대를 초월한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 사진3 연주 중인 고래야
◎ 타이틀 곡 <잘못났어>
한국의 전통놀이였던 투전놀이를 랩 배틀의 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지 록, 클럽 튠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사운드는 물바가지, 싸리 빗자루 등 한국의 전통악기이자 생활도구로 만들어 낸 결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를 들려주며 고래야의 노래가 확실히 2014년 현재의 것임을 역설합니다.
▲ 영상3 고래야 <잘못났어> 공식 뮤직비디오
고래야는 8월 3일 오후 5시 여의도 M-Pub에서 엠긱스(M-GIGS) 무대를 통해 2집 쇼케이스를 갖습니다. 8월 26일부터 31일까지는 김광석, 들국화, 김창기, 루시드폴 등 관록 있는 음악인들의 콘서트를 개최했던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8회의 단독 공연을 개최합니다. 특히 이번 소극장 공연은 전통사회로 돌아간 듯한 무대 위에서 음악뿐만 아니라 텍스트 이미지, 영상, 민요 채록 음원이 한데 어우러질 예정입니다. 조상님이 불러온 노래, 그리고 고래야가 다시 불러온 노래는 2014년 도시 한복판에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공연 시간은 평일 저녁 8시, 토요일과 일요일은 3시와 6시 2회 공연합니다. 조상님과 함께 부른 이번 앨범을 통해 우리 소리가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 사진4 2집 발매기념 쇼케이스 포스터
고래야만의 이야기가 아닌 퓨전국악밴드를 대변하는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처음엔 국악밴드인 줄 알았는데 노래를 듣다 보면 국악인가? 의문이 드는 것도 많아요. 고래야는 정확히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인가요.
A. 저희는 악기편성이 국악기가 대부분이라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국밴드이고요. 노래가 정의되거나 유행하지 않은 음악입니다. 어떤 장르를 하겠다고 정의해놓고 작업을 하지 않아서 1집에선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 많았고. 2집에서는 조금 정리가 된 편이고요. 아직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장르가 정의가 되지 않은 게 장점 또는 단점이 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계속 재밌는 음악을 할 거라는 거죠. 저희가 쓰는 악기의 편성으로는 전례가 없는 밴드에요. 그래서 계속 만들어가고 개척해야 하므로 저희끼리 의논해가면서 저희만의 음악을 하는 중입니다.
장르적인 방향성은 사실 없었고 만들 때 지향하는 점이 있다면 한국 악기를 사용하고 전통의 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살아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어요. 민요라는 게 그 시대의 인기 있는 노래였잖아요. 한국에서 전통적인 음악은 유행가의 부류에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저희는 악기 구성도 그렇고 전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시대의 유행가로서도 어필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을 작업의 방향성으로 잡고 있습니다.
Q. 퓨전국악밴드가 서양음악도 아니고 국악도 아닌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이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음악사를 돌이켜봐도 어떤 음악이든 다른 장르끼리 조합될 경우엔 초기엔 욕도 많이 먹기도 하고 이게 뭐냐 식의 평이 많았어요. 이런 것들에 너무 휩쓸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어요.
Q. 국악계에서 퓨전국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요.
A. 국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해주는 분위기에요. 대다수 선생님께서 성장하는 것을 좋게 바라봐 주십니다. 보수적인 분들은 아니꼽게 보시는 분들도 있었고 그랬다가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공통적인 시선은 다들 저희가 어떻게 될까? 기대하고 지켜보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저희가 잘되면 국악에 이바지하게 되니까요.
Q.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대중들이 국악에 대해 약간의 장벽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조예가 없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등으로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옴브레(기타) : 저는 공감해요. 국악전공자가 아니라서 아직도 국악을 잘 몰라요. 국악에 멋있는 음악도 있는데 저는 일반 대중과 비슷한 입장이에요. 지겹고 재미없는 게 더 많아요. 그래서 제가 이해가 안 되는 음악은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나 경이가 대중적인 기준으로 끌고 오는 경향이 있어요.
김동근(대금) : 접하러 가는 과정이 어려운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들, 젊은 사람들도 저희 음악 좋아해 줘요. 근데 쉽게 이런 노래를 들을 수가 없잖아요. 국악이라 하니까 잘 안 듣게 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국악이 많이 들린다면 이런 점이 많이 해결될 텐데. 솔직히 인기가 없으니까 이런 상황인건데 인기 있는 국악이 나와야 해요.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인지도가 좋아졌어요.
경이(퍼커션) : 지금까지 국악 콘텐츠들이 정악 같은 무겁고 진중한 것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보존됐어요. 국악에서도 재밌는 부분이 충분히 많은데 이런 부분들을 더 개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초롱(퍼커션) :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해요. 카페에서 나올만한 음악이 나와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국악밴드들이 많아져야 해요. 하지만 현재 저희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요.
경이(퍼커션) : 저희가 하는 일이 없는 아예 씬을 만드는 역할인 거 같아요. 2집이 나왔으니까 저희가 잘 돼서 이 씬을 살린다면 뒤로 좋은 밴드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Q. 스핑크스 믹스드(Sfinks Mixed), 에딘버러 프렌즈페스티벌 등에서 찬사를 받으셨는데 국악이 세계에서 주목받을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여요. 어떤 점이 서양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나요?
A. 국악기 음색의 아름다움을 좋아했어요. 일단 악기가 신기하니까 일단 쉽게 관심은 끌어요. 그리고 앙상블도 선보이고 그러니까 좋아하더라고요. 근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어요. 더 깊이 인정을 받으려면 일단 우리나라에서부터 내공을 쌓아야 해요. 이 때문에 해외에 나가보니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 힘드니까 해외를 목표로 열심히 하는 밴드들도 있는데 저희 생각은 달라요. 저희는 국내에서 열심히 한다면 자연스럽게 해외진출의 기회도 많을 거라고 봅니다.
Q. 시장이 작다 보니 지원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지원에 관련된 얘기를 해주세요.
A. 지원이 없어져야 오히려 좋은 음악이 나올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서 돈벌이가 돼야지 뮤지션들이 더 긴장하고 경쟁을 하는데 지금 지원이 좀 약해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또 지원이 없다면 그게 또 그 나름대로 문제라. 참 어려워요. 그리고 저희에게 음악을 만들어내라고 주는 돈보다는 저희만의 방향성으로 마음대로 작업을 할 수 있게 후원금 형식으로 지원되는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Q. 고래야 탄생 배경이 어떻게 되나요.
A. 권아신(소리) : 국립국악원에 주최한 대회,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퓨전국악팀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였는데 이 대회를 나가보고 싶어서 팀원을 물색했습니다. 지금 팀에서 국악을 하는 분들은 선후배 관계였고 친하지는 않았지만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옴브레나 경이는 다리 건너서 알게 된 멤버들입니다. 이렇게 팀을 꾸려서 시작을 했는데 좋았어요. 재밌는 음악이 나오고 화려하게 장려상을 탔습니다. 그 뒤로 처음엔 서로 눈치를 봤어요. 계속 하고 싶기도 하고 서로서로 간을 보고 있던 것이죠. 그러다가 겨울에 지원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밴드의 시작에 불씨를 지폈지만, 그 이후로는 모두가 같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Q. 국악 비전공자인 리더 옴브레씨에게, 국악작곡에 어려움이 있다면?
A. 옴브레(기타) : 서양음악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어려워할 것 같아요. 소리가 잘 안 섞여요. 코드며 화성이며 다 잘 안 묻어나더라고요. 코드의 느낌은 한국 전통에는 없잖아요. 그것을 묻게 하기도 어렵고 떨림도 많이 달라요. 농현(비브라토)은 한음 반 두음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그런 악기와 코드 악기가 섞였을 때 불협화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통기타가 일렉기타 보다는 좀 더 잘 섞이는 것 같아요. 작업하다 보니 작곡법을 완전히 바꿨어요. 고래야만의 앙상블을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작곡법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Q. 고래야와 브라질이 인연이 있다던데?
A. 브라질 민속 음악을 저희 식으로 바꾼 커버곡 <하얀날개> 이후로 브라질과 인연이 생겼어요. 저희 노래에 댓글을 보면 브라질 사람들이 참 많아요. 브라질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궁금해요. 브라질에서 MTV에도 나오고 현지 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오고 브라질에서 자국에 오면 숙박은 우리 집에서 다 재워준다는 아티스트들도 있었고 저희 프로필을 포르투갈어로 번역도 해주었어요. 그만큼 브라질에서 저희를 원하고 있는데 어디서도 브라질에 저희를 데려가겠다는 곳이 없었어요. 그쪽에서도 오라 그러고 우리도 가고 싶은데 갈 기회가 없어요. 국가 수교차 가는 공연들은 판소리 같은 전통적인 공연을 위주로 구성하더라고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데려가 주면 감사할 것 같아요.
ⓒ 참조
- 국악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사진 및 영상 출처
- 사진1~4 고래야 제공
- 영상1 잠비나이 제공
- 영상2 프로젝트 락 제공
- 영상3 고래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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