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5월 4일부터 6월 15일까지 팝아트를 비롯 설치미술, 전위예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A Dream I Dreamed'라는 주제를 가진 이 전시회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었던 개인전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쿠사마 야요이는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쿠사마 야요이의 사례는 고지식한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 혹은 '상업적 활동과 마땅히 분리되어야 할 것'이라는 예술작품에 대한 편견을 깬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미술의 엄숙함에 반하여 대중문화적인 시각이미지를 미술과 영합시키고자 한 팝아트의 성격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전을 맞이하여 오늘은 팝아트를 비롯한 예술작품과 패션 콘텐츠가 결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 사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 사진1 자신의 설치미술 <호박> 앞에 앉아 있는 쿠사마 야요이
▲ 사진2 쿠사마 야요이와 루이비통의 2012 S/S 콜라보레이션
먼저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세계 순회 개인전을 열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쿠사마 야요이 작품의 특징은, 한마디로 '땡땡이'입니다. 평면미술과 설치미술 등 그녀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도트무늬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꿈, 사랑 등에서 시작하여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서 여성작가로서의 정체성 등 그녀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과 망으로 설명되는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세계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앓던 편집적 강박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10살 즈음부터 주변의 사물 등에 점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고, 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캔버스, 나아가 3차원 공간에 자신의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서인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작가의 시선에 동화되는 동시에 작품에 나타난 희망적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한편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와 더불어,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물방울 무늬나 그물망은 패션 소품에 어울리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을 하기 이전에도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100여 종에 달하는 직접 디자인한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 역시 그녀의 작품에서 이러한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읽어냈다고 할 수 있겠죠. 도트무늬가 주는 발랄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 콜라보레이션은 2012년 여름 시즌에 진행되었습니다.
◎ 쿠사마 야요이 전 'A Dream I Dreamed'를 보고 싶으시다면? - 전시기간: 2014.5.4~6.16 (휴관일 없음) |
[출처] 팝아트, 패션콘텐츠를 만나다 - 쿠사마 야요이 전을 맞이하여 (비공개 카페)
▲ 사진3 무라카미 다카시의 그림과 루이비통 문양의 콜라보레이션 로고
▲ 사진4 무라카미 다카시의 평면예술품 <Flower Smile>
▲ 사진5 무라카미 다카시의 그림으로 구성된 2011년 6월 22일 구글 로고
사실 루이비통은 쿠사마 야요이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자동차 회사인 BMW와도 여행 가방에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요. 이렇게 루이비통이 계속해서 협업을 하는 것은 일본의 유명한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레이션 시도가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히 하나의 프로젝트를 넘어 '오래된 명품 회사' 내지는 '칙칙한 패션'으로 고착화되던 루이비통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 사진6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에 반영된 남성들의 여성상과 성도착을 다룬 것으로 평가되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미스 코코>
루이비통의 혁신을 가능케 한 그의 작품은 보기에도 자못 밝고 명랑합니다. 미소녀가 등장하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미스 코코'나 미키 마우스와 도라에몽을 합친 것처럼 생긴 그의 캐릭터 '미스터 도브'등은 화면 내에서 배경은 음산할지언정 깜찍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 등 일본의 대중문화를 예술에 적극 차용한 팝 아티스트입니다. 여기서 그가 초점을 맞춘 일본의 문화는 그 자신도 '오타쿠'라고 부르는 음지문화이며, 따라서 그는 '오타쿠 1세대 작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여성 캐릭터에 반영된 남성들의 성도착 등에 대한 비판은 그의 작품에서 귀여운 캐릭터나 몸매 좋은 여성 피규어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일부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아시아에 대해 가지는 고정된 인식을 깨뜨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미 이전에도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작가였으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알려져, 지난 해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라는 개인전을 개최하고 이를 기념하여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 사진7 가장 사랑 받는 키스 해링의 작품 중 하나인 <무제>
▲ 그림 8 한국의 패션 브랜드 베이직하우스와 키스 해링의 콜라보레이션
일본의 콜라보레이션 사례를 보았으니 이번에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팝아트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아티스트 키스 해링은 1990년 작고하였으나,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여겨지고 있을 만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화장품 브랜드 더페이스샵, 캐쥬얼 패션 브랜드 베이직하우스 등이 키스 해링의 그림들을 차용한 바 있습니다. 한편, 뉴욕에 있는 키스 해링 브랜드 숍은 관광객들에게 쇼핑의 명소로 자리잡았다고도 하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키스 해링의 작품이 데뷔하고 구설수에 오른 것은 갤러리나 작품 전시회 등이 아니라 지하철 플랫폼과 거리의 벽면에서였습니다.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그래피티 아트와 낙서화의 형식을 자신의 작품세계를 나타내는 데에 적극 활용한 것입니다. 그는 처음 이러한 행위예술을 시작했을 때에는 공공기물 훼손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거나 그림이 지워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전쟁과 평화, 인종차별 반대, 사랑 등의 무거운 주제를 특유의 흥겨운 낙서화로 나타낸 것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고 키스 해링의 화풍은 뉴욕의 그래피티 아트 뿐 아니라 예술계의 또다른 흐름으로 자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지하철과 대로 벽화라는 대안적 환경에 주목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이전에는 예술과 연결되지 않았던 패션 소품, 휴대폰 케이스, 심지어 정수기 등의 생활용품에까지 자리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키스 해링의 이름은 팝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친숙하게 받아들여져 2010년에는 <팝아트 슈퍼스타, 키스 해링전>이라는 이름으로 소마 미술관에서 키스 해링 기획전시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 사진9 아기의 머리, 로봇 몸통에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대조가 흥미로운 낸시랭의 작품 <터부 요기니>
▲ 사진10 패션 브랜드 쌈지에서 낸시 랭 라인으로 출시한 가방 '매직박스'
지금까지 해외의 콜라보레이션 사례를 살펴보았는데요. 한국 아티스트의 작품들 중에는 패션 혹은 여타 콘텐츠와 결합한 것이 없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티스트 패션브랜드'라는 명목 하에 캐쥬얼 패션브랜드 쌈지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아티스트가 공식적인 최초의 패션브랜드와 팝아트 콜라보레이션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주인공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낸시 랭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낸시 랭은 팝 아티스트라는 본직보다 연예계 및 각종 사회 이슈에서의 '뜨거운 감자'로 더 친숙할 것입니다. 각종 방식을 통한 예술이나 누드, 퍼포먼스 등으로 부와 명예, 그에 따른 여파를 끌어안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감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과시적 면모로 낸시 랭의 예술세계를 속단하기는 이를뿐더러, 오히려 이는 대중문화와 예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오늘날의 실태와 맞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명품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유행어 '앙!'을 인터넷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신있게 외치는 낸시 랭 본인이 걸어다니는 팝 아트인 셈입니다.
그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패션을 비롯한 대중문화와 유명인사들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 차용하는 낸시 랭의 작품이나 가치관은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추진하기에 딱 맞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009년부터 꾸준히 전시회나 갤러리를 통해 작품활동을 해 온 낸시랭의 가장 최근 전시회는 올해 2월에 전시를 마감한 이연주갤러리 내 낸시랭전 <낸시랭과 부산친구들>이었네요. 앞으로도 방송이나 여타 활동을 비롯한 팝아티스트 낸시 랭의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 그림 11 권기수의 작품 <a tiny yellow boat - bronze>
▲ 그림 12 동구리를 활용한 트루젠의 콜라보레이션 티셔츠와 넥타이, 스카프
동그란 얼굴, 성별이나 연령·신분을 알 수 없는 몸체, 언제나 웃고 있는 표정. 아티스트 권기수의 많은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동구리'를 보면 왠지 마음이 편해집니다. 동양화풍의 배경을 자유롭게 노니는 동구리는 권기수 작가의 자아와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라고 하는데요. 몇 개의 선과 단일한 표정으로 이루어진 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작가 본인의 말처럼 '세상을 둥근 것으로 바라보는 동양적 우주관'과 '둥근 삶에 대한 바람'을 반영하기 때문인지, 동구리는 예술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인기는 남성복 브랜드 트루젠에서 출시한 동구리 넥타이·스카프와 같은 패션 콘텐츠와의 콜라보레이션 뿐 아니라 지하철 벽을 이용한 공공미술, 세계적인 포털사이트 구글·네이버와의 로고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동구리가 만들어진 사연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반영되어 있지만 권기수 작가는 이러한 동구리가 캐릭터로서 상업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콘텐츠화되어 패션 소품, 시계, 벽화 등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동구리들을 보며 우리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도 온·오프라인 서점 예스24, 인천지하철 등과 콜라보레이션이나 벽화작업 등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권기수 작가는 5월 18일에 마감된 대구미술관의 <네오 산수>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본인의 작품활동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술, 특히 팝아트가 패션콘텐츠와 결합한 사례에 대해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알아보았습니다. 미술은 상업적 목적을 위한 콘텐츠와 분리되어 순수예술의 테두리 하에서 보존되어야 한다는 입장, 대중문화와 접목되거나 대중문화를 이용하여 유희하는 것 또한 예술의 한 분야라는 입장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대립되어 이야기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팝 아트의 시조인 앤디 워홀이 대중문화를 미술로 편입시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 반대로 패션이나 여타 콘텐츠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위에 언급한 아티스트들의 명성이나 작품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이를 생각할 때, 이러한 콜라보레이션이 콘텐츠에게는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나 디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품의 기능적인 부분을 살려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결국 바람직한 상생이 이루어진다면 콘텐츠와 미술, 상반된 듯 보이는 이들의 결합은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본 것처럼 실제로 이러한 상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둘이 어떻게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전진할 수 있을지, 어떤 아티스트와 패션 브랜드들이 또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해낼지 기대됩니다.
ⓒ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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