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이제 우리 일상생활 속에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가상현실속의 인터렉티브 영화로, 조형적인 건축물을 매체로, 혹은 우리가 입는 의상으로. 이렇게 미디어 아트는 우리 일상생활 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작가는 이제 예술가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를 선택하거나 여러 매체를 섞어 새로운 플랫폼을 창조하는 미디어 융합시대가 열린 것으로 그 의미를 두고자 한다. 건축과 패션은 우리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한 분야이다. 두 분야 모두 환경에 민감하며, 인간의 신체를 보호하고 편안하게 하는 기능과 동시에 그 시대 속 사회를 반영하는 예술적 표현 매체이기도 하다. 처음 드로잉과 회화로 예술을 접했던 작가는 인터렉티브한 영상이나 환경설치, 웨어러블 예술을 통해 작품을 갤러리 밖의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려운 기술로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위트 있는 진솔한 메시지로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자 한다.
- 김영희 미디어아트 개인전 도록 中
우리나라 웨어러블 패션의 개척자인 김영희 작가를 만나서 웨어러블과 미디어아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본인 소개 간단하게 부탁할게요.
A. 저는 Art, Technology, Media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우리의 감정이나 사회적인 관계들을 표현하려하는 김영희 작가입니다. 동시에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웨어러블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몸의 움직임을 통한 표현이나 사회적인 관계들을 표현하기에 웨어러블이 최고의 미디어 플랫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 '웨어러블 패션분야의 개척자'라는 소리를 들으시는데 처음 이런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90년대 중반 뉴욕에서 시각·영상 작업을 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렉티브 미디어를 전공하면서 피지컬 컴퓨팅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터렉티브 미디어 에이전시를 운영하면서 플랫폼 구상을 하던 중, 영상으로만 표현되는 작업에 질려 실제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옷이라는 것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재봉틀부터 사고 매뉴얼을 읽어가며 옷을 공부했습니다. 패션을 공부하면서 계속 해오던 작업들과 자연스럽게 융합이 되어 패션과 인터렉티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을 시작으로 옷 자체에 미디어 제어 장치들이 들어간 작품들을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Q. 기술과 예술에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기술은 이미 충분하게 개발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어떤 기술을 어떻게 쓰고 표현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예술가를 먼저 지원해주면 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용도를 한정하기 쉬운데, 예술가들은 기술을 사용할 다양한 적용법을 마음껏 상상하면서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때문이죠. 요컨대 저는 기술과 예술은 상부상조하며 발전하는 관계라고 봅니다.
Q. 지난 10년간 웨어러블을 미디어플랫폼으로 작품 활동을 해오시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A. 무엇보다도 작업 단가가 비싸요. 누가 만든 것을 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척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실험에 대한 비용이 상당히 큽니다. 들어가는 재료들도 소모품이 많아서 더욱더 부담이 됩니다. 각종 공모전에 당선되어 지원을 받아 작업을 하면 이런 부담을 조금 줄일 수 있죠. 또, 만드는 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듭니다.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과정에서 실험도 많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죠. 여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한국에 와서 작가를 지원하는데 있어서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Q. 미디어아트에서 사용되는 플랫폼은 다양한데요, 웨어러블만의 색다른 매력이 있다면?
A. 옷은 신체의 일부가 되기에 우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웨어러블은 가장 자연스러운 플랫폼이 될 수 있죠. 저는 아날로그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술을 많이 사용하지만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흔히 주변에서 접하는 옷이라는 것이 부각되길 원합니다. 만든 것을 관람객이 직접 입어보고 체험하는 것보다 작가와 공감하기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웨어러블에서 파생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A. 이미 제 작품에서도 사람들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바디 그래피티’인데요. POV를 사용한 작품인데,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입력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고받다>라는 작업이 있습니다. 역시 디스크에 POV를 사용하여 만든 것인데, 상대에게 원반을 던질 때 그 가는 경로에 문구가 표시됩니다. 그 문구는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꼭 말을 한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듯이 <주고받다>도 그러하죠. 말 주고받기를 원반던지기를 통해 느껴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보내고 싶은 문구를 넣어 사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수 있게 준비 중인데요,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이 많이 가는 것 중에 네트워크 서비스가 있는데 웨어러블과 소셜네트워킹이 만난다면 다양하고 재밌는 콘텐츠들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는 항상 달린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이렇게 달리는가? 도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상구 사인의 달리는 피겨가 ‘RUNNING GIRL'의 아이콘 형태로 EL(Electroluminescent)시트지로 얇게 마주 닿는 2개의 벽면과 천장 코너에 그려진다. 관람객이 보는 시각에 따라 일그러져 보이기도 하고 올바르게 보이기도 하는 이 달리는 아이콘은 작가의 자화상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두워지면 사방으로 영상이 투영되면서 주변에 달리는 소녀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 김영희 미디어아트 개인전 도록 中
Q. 대표 작품들 소개 부탁드려요.
<Running! 달려라, 영희!>
▲ 사진1 <Running! 달려라, 영희!>
<Body Graffiti> & <Body Graffiti V.2>
▲ 사진2 <Body Graffiti>
▲ 사진3 <Body Graffiti>에 사용된 POV조끼
▲ 사진4 <Body Graffiti V.2>
A. 바디 그래피티는 POV(Persistence of Vision, 시각잔상효과) 기술을 이용한 자체 개발 미디어 플랫폼 시스템입니다. 본 시스템을 통해 작가는 그래픽과 글자 형태의 시각 메시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POV를 장착한 옷을 입고 비보이들이 춤을 추면, 그 궤적을 따라 준비된 문구가 잔상효과로 인해 보이게 됩니다. 비보이 그룹 '라스트포원'과 같이 작업을 했는데요, 'Body Graffiti V.2'는 부츠에 POV를 달아서 만들었습니다.
<Throw & Catch> (words) (말을)주고받다 - Body Graffiti version 3.0
▲ 사진5 <주고받다> 시연 사진
▲ 사진6 <주고받다> 디스크
A. 이것은 위에서 설명했떤 바디 그래피티 시리즈 3번째 작품입니다. 디스크에 POV를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디스크를 던지면 디스크 궤적을 통해 입력된 문구가 보입니다. 디스크를 던지고 받으면서 말을 주고받는 느낌이듭니다. 문구가 항상 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잘 보일 때도 있고 희미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상대에게 말을 하는 것이 100프로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하네요.
<Gravity of Light>
▲ 영상1 <Gravity of Light> 시연 영상
A. <Gravity of Light 빛의 중력>은 '빛이 물처럼 중력에 따라 흐르고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린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으로 시작된 웨어러블 작품입니다. 작은 마이크로컴퓨터와 전자 부품들을 이용해 착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본 작품은 3D프린팅을 이용한 웨어러블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Gravity of Light 2.0>
▲ 사진7 <Gravity of Light 2.0>
A. <Gravity of Light 2.0 빛의 중력 버전2.0>은 <빛의 중력 버전 1.0>에서 좀 더 발전된 작품으로, 흰색 텍스타일과 특수제작된 흰색 전자기판과 센서 및 LED등을 사용하여 은은한 빛과 색으로 디자인된 모자로써, 3D 프린팅된 패턴이 마치 매우 굵은 실로 뜨개질 된 듯하게 디자인된 작품입니다. 본 작품은 프랑스 파리의 CHI 2013 Interactivity-Exploration전시에 출품되었습니다. 제 31회 CHI 2013는 저명한 국제학회로써 4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3,400명 이상이 참관하였습니다.
<HearWear>
A. 이 작품은 외부환경의 소리에 반응하는 옷입니다. 소리에 반응하여 특정한 빛의 패턴이 표시됩니다. 첨단기술이 일상에서 입는 옷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기술이 오히려 패션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 사진8 <HearWear> 착용 사진
▲ 사진9 <HearWear> 설명 사진
▲영상2 <HearWear> 시연 영상
Q. 웨어러블에서는 소재가 중요한 요소인데요, 소재에 관한 이야기 부탁해요.
A. 웨어러블과 스마트 텍스타일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소재에 대한 연구가 웨어러블 연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그래서 저도 소재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웨어러블에선 3D프린팅이 제일 촉망받고 있습니다. 필수 부품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거나 고유한 텍스타일을 작가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미 많은 첨단소재들이 개발되었는데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Q. 최근에 한 작품에서 "본 작품은 디지털 드로잉에서 3D물질로 프린트되고 굳어지는 과정에서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미세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멘트를 하셨는데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느낀 3D프린팅에 관해 말해주세요.
A. 20년 전에 했던 판화작업을 했었습니다. 3D프린팅을 하면서 판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똑같은 원판으로도 매번 다르게 찍히듯이 3D프린팅도 똑같은 도면을 넣어도 물질화 되면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미세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전 이런 점이 정말 재밌습니다. 3D프린터면 모든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의도한 모든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소재 문제와 프린터의 한계 속에 실험해가면서 최대한 머릿속의 상상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아무리 정밀하게 설계를 해도 찍어낼 때 의도하지 못한 미세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 사진10 <First Edition of Network> 도면
▲ 사진11 <First Edition of Network> 3D프린팅 모습
Q. 최근에 키네틱 설치작품을 전시하셨는데, 지금까지 작품들을 보아오면 ‘움직임’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저는 사람의 움직임이 하나의 언어라 생각합니다. 쉬운 예로 'body language'가 있죠. 이것은 가장 원시적인 소통이라 생각하지만, 문화마다 다르고 또 실제로 가장 중요한 소통방법입니다. 몸의 언어가 그 사람의 고유한 반응을 표현한다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양하게 표현해주고 싶어서 움직임을 가지고 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사진12 호~ 하고 입김을 불면 비늘들이 살짝 열렸다가 닫히는 키네틱 작품 <비늘>
Q. 예전부터 패션과 IT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최근에 열린 웨어러블 해카톤에서 작업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4일간 '아트센터 나비'에서 갇혀서 작업을 했어요. 이렇게 집중적으로 아이디어부터 제작까지 해보니까 참 재밌는 경험이었죠. 여러 팀들과 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팀원들과도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발전시켜서 나왔는데요, 소통하는 자리를 생각하다보니 술자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알코올에 반응하는 웨어러블을 만들어보자고 했고, 남성용, 여성용 두 가지로 작품이 나왔습니다. 남성용은 알코올 농도가 높아짐에 따라서 목깃이 세워져서 입을 가려주는 외투였습니다. '지금 많이 취했으니 나에게 술을 권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옷입니다. 여성용은 알코올 농도가 증가함에 비례하여 팔부분이 반응하여 현재 알코올농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창작의 장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A. 산업계와 융합해서 양산되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요.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인터렉티브한 설치물이나 웨어러블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쯤 개인전을 하고 싶어요. 지속적으로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발전시키면서 여러 작품을 병행할 것입니다. 뜻이 맞는 패션디자이너와 작업을 같이 해보고도 싶고, 특히 안무가랑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춤이랑 웨어러블은 최고의 조합이라 생각합니다.
ⓒ 사진 및 동영상 출처
-사진1~12 김영희 작가 제공
-영상1,2 김영희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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