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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그 안에 인생의 모든 맛이 담겨 있다, 뮤지컬 <소금>

by KOCCA 2014. 5. 26.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 갈수록 가족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믿을 사람이 없어지더라도, 사랑하는 가족만은 늘 자신의 편이 되어주니까요. 가족과 함께 웃고 기뻐하면 기쁜 일은 더욱 기뻐지고, 힘들 때 함께 화내고 풀면 화났던 일이 다 스르르 풀어지기도 하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이 때,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가득 담은 <소금>이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 위에 올랐었습니다. 청년 작가 박범신이 쓴 이 이야기는 어버이날을 맞아 5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 상연되었습니다. 섬세한 소설이 아름다운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가 어우러진 뮤지컬로 변신하였는데요. 어떤 뮤지컬이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출처] 그 안에 인생의 모든 맛이 담겨 있다, 뮤지컬 <소금> (비공개 카페)




▲ 사진1 박범신 작가



박범신. 우리 시대의 영원한 청년 작가라고 불리죠. 박범신은 1946년 8월 24일에 태어났고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부문을 수상하였고 끊임 없는 문학 활동을 통해 현대인들의 세태와 풍물을 그리고 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5만여명에 이르는 팔로워들과 왕성하게 소통하는 박범신은 얼마 전 <소소한 풍경>을 발표하여 여전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의 문학은 감성적 묘사 위주의 시적인 문체, 어두운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대결, 비정한 문명과 인간성에 대한 비판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현대인의 욕망과 좌절, 배타적 인간성, 물질만능의 속물근성, 기회주의 등 다양한 인간 세상의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낭만적으로, 또는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죠. 




▲ 사진2 박범신의 40번 째 장편소설 <소금>

[출처] 그 안에 인생의 모든 맛이 담겨 있다, 뮤지컬 <소금> (비공개 카페)



소금은 박범신이 2013년에 출간한 소설입니다. 박범신의 40번째 장편소설이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에 이어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만큼 <소금>에는 돈만 추구하는 현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간중심으로의 회귀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끝 없는 부정(父情)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뮤지컬 <소금>은 위의 소설을 원작으로 인천시립극단이 어버이날을 맞아 만든 창작뮤지컬입니다. 350쪽이 넘는 방대한 장편을 2시간짜리 뮤지컬로 조화롭게 옮겨 놓았습니다.  작품의 연출을 밭은 주요철 예술감독은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투란도트', '영원한 제국', '불의 나라' 등 약 70여 편의 작품들을 연출한 국내 연극계에서 손꼽히는 중견 연출가입니다. 가무극 '푸른 눈 박연', 뮤지컬 '막돼먹은 영애씨' 등에서 관객의 호평을 받은 작곡가 김경육이 음악을,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작 '고구려'와 2010년 대한민국 무용대상 수상작인 '명성황후' 등으로 잘 알려진 안무가 박이표의 안무가 극의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이야기는 시우가 10년 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집을 나간 아버지 선명우가 남긴 수첩을 보며 아버지의 행적을 찾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명우는 어릴 적, 서천에서 염전을 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천에서 한참 먼 강경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집으로 올 생각 말고 공부만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서러운 나날을 보내던 때, 명우는 세희 누나를 만납니다. 


명우와 세희는 자라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명우가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자 세희도 함께 서울로 올라왔고 명우는 학교를 다니고 세희는 재봉 공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명우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4학년 크리스마스, 명우는 세희 누나에게 다른 여자에게 아이를 임신시켰으니 결혼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니다. 그 일 이후로 세희와 명우는 연을 끊게 되고 명우는 사치스러운 부인과 세 딸을 낳고 살게 됩니다. 이 세 딸 중 막내가 시우인 거죠.

 

이 때부터 아버지가 된 명우의 불행한 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사치스럽고 소비만 늘어가는 가족들,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아버지는 그야말로 개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하고 일해도 가족들의 욕심을 채울 수는 없었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며 일하던 아버지는 급기야 췌장암에 걸리고 맙니다. 


그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 아버지는 세희 누나를 찾아가보기도 하지만 세희 누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딸 하나를 입양해서 평생 혼자 살다가 말년에 고향에 내려가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오열합니다. 


얼마 후 시우의 생일 날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로 인해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아버지는 아예 집을 나와버리게 됩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부인, 식물인간이 된 남편, 구루병에 걸린 아이의 큰아버지 행세를 하며 그 가족을 돌봐주고 식물인간인 남편이 죽자 자신이 완전히 이 가족의 보호자가 되어 명우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살게 됩니다. 


현실의 스트레스를 내려놓은 아버지는 췌장암마저 완치됩니다. 그들은 트럭 한 대를 사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공중화장실 앞에서 여자아기를 주운 이후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희 누나의 고향인 강경으로 내려와 소금밭을 일구고 노래 부르며 욕심 없이 즐겁게 삽니다.

 

시우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내려온 강경에서 다리를 저는 부인을 만나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오열합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그 사람은 우리 아버지야! 우리를 버린 우리 아버지라고!'.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들을 떠난 뒤 노래 부르며 즐겁게 사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시우의 아버지였습니다. 어릴 적 꿈조차 잊어버렸던 아버지는 자본주의에 찌든 가족을 벗어나서야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있었고 즐겁게 노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밤에 아버지가 노래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시우는 자유로운 아버지의 삶을 위하여 아버지와 만나지 않고 강경을 떠납니다. 그리고 명우는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 즉 시우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에 잠깁니다.




사실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첫사랑 누나와 서울에 올라와서는 자신만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는 여인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바람을 펴서 부잣집 여자를 임신시켜 결혼한다는 것도, 결국 그 첫사랑 누나는 평생 명우만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았다는 것도, 후에 딸 셋이 있는 명우가 집을 나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다른 집의 가장 노릇을 한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흡사 막장드라마 같지 않나요?

 

그러나 그 속에는 막장이 아니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정이 들어 있습니다. 돈만 밝혀 자신을 갉아들어가는 자본주의 암에 걸린 가족을 피하기 위해서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월급쟁이 월급으로 강남에 빌라를 사고, 제주도에 별장을 사고, 유학을 가는 등 온갖 사치를 부리고 있었죠. 그리고 이것을 하나라도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못난 가장이라고 매도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상황을 탈출하고 싶어했습니다. 언제나 노래부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가족들은 "아빠는 노래 못해. 안 어울려."로 바로 일갈하기 바빴죠. 그러나 교통사고에서 만난 다리 저는 부인은 한 번도 명우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명우가 노래를 밤새도록 불러도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요."라고 말하죠. 아버지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가족은 하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던 것입니다. 가난한 세희 누나와 불렀던 노래,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며 잃어버렸던 노래를 옛 시절과 유사한 삶에서 찾은 것입니다. 시우는 그러한 아버지를 인정하지 못하지만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아버지가 추구하던 자유를 알아보고 아버지를 더 이상 옭아매지 않기 위해 떠난 거죠.

 

그리고 명우는 염전을 일구며 자신을 위하여 일했던 아버지의 심경을 이해합니다. 명우는 아버지에게 창피하니 대학 졸업식에 오지 말라고 했던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며 마치 속죄하듯 돌아가신 아버지 선기철이 가르쳐준 전통 방법으로 소금밭을 일굽니다. 주변 사람들이 전통 방식으로는 돈을 벌기 힘들다고 몇 번이고 말하는데도 말이죠. 소금밭에서 일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체내 염분 부족으로 돌아가셨던 자신의 아버지를 늘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명우의 아버지가 땀을 많이 흘리고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않아 체내 염분이 부족해져서 사망하게 되었다는 대사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지막 장면 직전에 늙은 선기철(명우의 아버지)과 어린 명우와 청년 명우, 장년의 명우가 함께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연출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어리고 순수했던 명우, 의도치 않은 결혼으로 크게 되라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명우,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온 장년 명우. 장년 명우와 선기철의 영혼의 대화에서는 세계를 초탈한 무언가마저 느껴집니다. 선기철은 명우가 소금밭에서 탈피하기만을 바랐으나 결국 명우는 소금밭으로 되돌아 와서야 행복을 찾았죠. 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던 곳에서 모든 욕심을 버린 후에야 그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사진3 뮤지컬 <소금>의 출연 소품



마지막 장면에는 모든 출연진이 아버지 얼굴 탈을 쓰고 나오는데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얼굴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정말 뭉클했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연출이었습니다. 그 모든 표정들, 주름들이 아버지의 고생과 사랑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뮤지컬 속에서 명우의 아버지 선기철의 얼굴이 탈과 닮아있었기에 선기철의 얼굴과 탈이 모든 아버지의 대사를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도 힘들 수 있고 아버지도 아플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식을 사랑한다는 아버지의 희생 말이죠.

 

뮤지컬 <소금>에서는 특이하게도 배경을 그래픽으로 사용했는데요. 유화같은 그래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세희와 명우가 처음 만났던 강경에 있는 배롱나무는 모든 배경을 꿰뚫는 요소가 되기도 하죠. 명우가 첫사랑을 만났던 순수한 추억의 공간이자 후에 세희가 평생 명우를 생각하며 생의 마지막에 내려와 살았던 그리움의 공간이자 명우가 남은 생을 아무런 제약 없이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자급자족의 공간인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흐드러지는 배롱나무와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노래들이 참 좋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시우(詩友)'라는 노래가 정말 예쁩니다.



누구나 가슴속엔 시인이 살고 있네

시인의 친구가 살고 있네

바람이 사막이 되더라도

눈물이 메말라 소금밭 되더라도

눈빛은 서글서글 속눈썹은 반짝반짝

나의 친구 시인은 어린 나무처럼 잠들지

누구나 가슴속엔 시인이 살고 있네

시인의 친구가 살고 있네

 - 박범신 <소금> 中 -

[출처] 그 안에 인생의 모든 맛이 담겨 있다, 뮤지컬 <소금> (비공개 카페)



시우는 시인의 친구라는 뜻과 명우의 막내 딸 시우라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가사와 음률이 모두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아버지가 늘 원했던 자유로운 노래의 영혼과 자연이 담겨 있지요. 이 노래만이 아니라 청년 명우가 세희에게 고백하며 부르는 '노래와 바람'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가사와 노래만 멋진 것이 아니라 청년 명우의 멋진 목소리까지 함께 어우러져 더욱 감동적입니다. 이런 고백을 듣고 반하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졌습니다. 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돋보이게 해주어, 듣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노래였습니다.





워낙 긴 소설을 2시간짜리 뮤지컬에 담다 보니 장면 전환이 매우 빠릅니다. 소품을 치우는 시간도 없이 장면이 휙휙휙 변하죠. 소설 속 입체적 서사를 뮤지컬에서도 사용하고 있는데요. 장면 전환이 워낙 빠르다보니 집중하지 않으면 장면들이 휙휙 지나가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시점이 변하는 입체적 서사를 뮤지컬에서는 무대를 분할하여 사용하는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시우가 화자일 때 쓰는 무대공간과 명우가 화자일 때 무대를 쓰는 공간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큰 무대라도 나누어서 쓰게 되어 넓은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무대 한 가운데에 큰 소금 창고가 있는데요. 이 소금 창고를 돌려가며 배경 전환에 사용하기는 합니다만 이 소품이 무대를 너무 크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실제 활동하는 영역은 별로 되지 않았습니다. 자주 변하는 <소금>의 배경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돌릴 수 있는 무대 장치를 사용한 것은 좋은데 무대 영역이 적어져서 너무 아쉽습니다.

 

음향 문제도 있었습니다. 배우들이 말할 때 소리가 끊기거나 갑자기 목소리가 작게 나오거나 크게 잡음이 나기도 했죠. 첫공연이긴 했지만 안타까운 부분이었습니다. 2시간 공연 내내 간간히 음향 문제가 계속 있었습니다.

 

어버이날 특집 공연인 만큼 장년층 관객들이 주가 되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온 관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구요. 많은 분들이 배우들이 울 때 함께 울고 배우들이 웃을 때 함께 웃으며 관객들과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아파도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오늘날의 힘든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해주는 뮤지컬이었습니다. 어버이날 특집 뮤지컬이었기에 다시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작품일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함게 보면 훨씬 감동적이고 좋은 뮤지컬일 것입니다.



ⓒ 참고자료

- 한국현대문학사전 박범신

- 경기일보(http://bit.ly/RiI2bp), 2014년 4월 29일, 아버지의 꿈과 청춘 … 박범신 소설 '소금' 뮤지컬로 만난다.


ⓒ 사진 출처

- 표지 직접 촬영

- 사진1 SBS 힐링캠프 공식 홈페이지 

- 사진2 인터넷 교보문고

사진3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