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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문학]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삶

by KOCCA 2013. 9. 25.

 

 

 

조선시대 양반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양반’하면 ‘에헴~’ 소리와 함께 뒷짐 지고 가는 모습, 기품 넘치고 풍족한 여유로운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정말 그랬을까요? 조선시대 한 양반이 남긴 사적인 편지 1,700통에서 당시 조선시대 양반들의 밝혀지지 않은 비밀스런 사생활을 책 <양반의 사생활>이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진2 책 <양반의 사생활>

 

<양반의 사생활>은 17,18C 두 세기에 걸쳐 화려한 지위를 누렸던 노론의 후손, 학자 조병덕의 삶을 통해 양반의 비밀스런 삶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조병덕은 노론 학자들의 교육과 영향을 받은 조선후기의 문인입니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몇 차례 과거공부를 시작해 과거에 응시했지만, 거듭 실패를 했죠. 어머니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조선말 세도정치기부터 대원군 집권기는 끊임없는 민란과 신분제의 동요, 서양 열강의 개항 압력, 천주교의 확산 등으로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이처럼, 조병덕은 화족이었지만 삼대가 문과에 급제하지 못해 몰락양반의 신세를 면할 수 없었고, 그 결과 그는 서울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삼계리라는 마을로 이사하게 됩니다.

 

책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는 삼계리와 청석교는 서로 가깝고도 먼 곳이에요. 삼계리는 조병덕이 사는 곳이고, 청석교는 조병덕의 아들, 조장희가 사는 곳이에요. 조병덕은 아들과 교신하는 방법으로 편지를 보냈어요. 조병덕은 아들의 글쓰기 교육을 위해, 그리고 사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용도로 썼습니다.

 

조병덕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①“손에 동전 한 푼 없어 꼼짝달싹 못한다”, ② “만사는 사람의 계산대로 되지 않고, 일생은 모두 운명이 안배해 놓은 것이다.” ③ “인간 만사에 좋은 자손만한게 없다” 가 많이 발견됐는데요. 이는 조병덕의 경제적 곤궁과, 슬프고 처량한 선비의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리고 조병덕은 사적인 이익을 거부하고 유교에 따른, 인의를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유학자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방법에 대해 관리가 되어 녹봉을 받거나, 관리가 되지 못하면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 결과 조병덕은 낮에 밭을 갈고 밤에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농사로부터 얻은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자, 지방 수령의 자제의 선물과 증여로 경제적 빈곤을 해결해야했습니다.

 

 ▲사진3 영화 <전설의 고향>에서 양반 역을 한 배우 재희

 

조병덕은 서울에서 백여 명의 식솔들과 함께 생활했고, 삼계리에 낙담한 후에도 어른만 21명인 대가족이 노비 80명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뿔뿔이 흩어진 자제들은 조병덕의 아버지 제삿날에도 오지 않았어요. 그는 네명의 며느리가 있었지만 며느리 봉양을  받아 본 적 없었죠. 큰며느리는 고부간 갈등으로 시어머니를 쫓아낼 정도로 억셌고, 둘째 며느리는 남편이 첩을 여럿 거느린 탓에 첩에게 안살림의 주권을 빼앗겨 살았습니다. 셋째 며느리는 맏며느리에게 버림받는 시부모를 정성껏 모실 정도로 착했으나 무능한 남편을 만나 약 한 첩도 쓰지 못하는 형편이 되자, 조병덕이 친정으로 보냈답니다.

  ▲사진4 문화재청 '선비'

 

게다가 그는 양반으로서 수치심을 느낄만한 사건들을 겪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교졸돌입사전’인데요. 나라의 세력이 노론에서 세도가 안동 김씨로 옮겨지자, 갑자기 장교와 포졸들이 조병덕의 집 사랑에 들이닥쳐 수사를 하게 되죠. 두 번째 사건은 ‘도둑묘’ 사건으로, 조병덕이 둘째 부인을 화산이라는 산에 묻었다가 금전 문제로 도로 파내고 묘 이장을 한 사건이에요. 세 번째 사건은 ‘조장희정배’로 아들 조장희가 볼법과 폭력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자, 체포되어 정배된 사건이에요. 이 사건들은 조병덕가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으며, 몰락 양반의 모습이 얼마나 허무하고 안타까운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5 드라마 <탐나는 도다>에서 양반역으로 나온 배우 임주환

 

조병덕이 살았던 시대는 안팎으로 밀어닥치는 변화의 물결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그는 그 변화의 물결을 ‘세상의 변괴’라고 했다. 그의 삶은 19세기 양반가의 보편적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책 <양반의 사생활>을 통하여 살펴본 19C 조선사회는 더 이상 유교적 도덕이 실현되지 않고 양반이 양반대우를 받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사진출처

- 사진1 북한 평양 조선미술 박물관

- 사진2 출판사 푸른역사

- 사진3 스튜디오 박스

- 사진4 문화재청

- 사진5 드라마 <탐나는 도다>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