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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문화원형] 문화원형을 찾아서 <충북 보은 편> 어머니 품에 안긴 작은 마을, 첫 번째 이야기

by KOCCA 2013. 9. 11.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행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하자면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일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풍경을 찾기 위해 충북 보은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은혜를 갚는다는 뜻을 가진 보은은 삼국시대엔 삼년군이라 불렸습니다. 그 것이 고려시대에는 보령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지금의 명칭인 보은이 되었습니다. 보은은 인구가 36,000명밖에 안 되는 충청도의 조그마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는 저에게 여러 가지 표정을 지으며 반겨주었으며, 저는 그 표정들에서 많은 풍경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권세의 무상함. 선병국가옥

 

 ▲사진1 선병국가옥 표지판

 

▲사진2 선병국가옥 대문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를 지나다 보니 군부대 표지판과 나란히 자리 잡은 선병국가옥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1919년부터 1921년에 걸쳐 지어진 이 가옥은 당대 최고의 목수를 초빙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가옥의 외부는 주변의 소나무 숲과 잘 어우러져 고택의 운치를 맘껏 뽐내었습니다. 외부의 운치를 느끼고 내부로 들어갔을 때 나는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놀랐습니다.

 

▲사진3 선병국가옥 내부 전통건물

 

 

▲사진4 선병국가옥 처마에 걸린 파란하늘과 구름

 

한때는 이 집에서 하인들의 바쁜 발걸음소리와 때가 되면 찾아오는 객들의 간절한 외침과 화가 난 주인어른의 무서운 호통소리로 넘쳐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정돈되지 않은 마당과 가꾸어지지 않은 조경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한 쪽에 줄지어 서있는 장독대 부대만이 한 시절을 풍미했을 옛 권세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진5 선병국가옥의 장독대

 

 

 

▲사진6 선병국가옥 내부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

 

 

 

 

 

 

◎ 서로가 그리며 지낸 600년, 정부인송과 정이품송

 

 

▲사진7 정부인송 전경

 

▲사진8 정부인송 가지에 걸려있는 파란하늘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를 지나다 보면 도로변 옆에 단아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이 나무는 속리면 상판리에 있는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고 불리는 정부인송입니다. 아래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올라가 사방으로 가지를 드리운 모습은 지체 높은 양반집 안주인의 자태가 분명했습니다. 정부인송에게서 단아하고 조심스러운 아름다움을 본 후 그녀의 부군을 보기위해 구절양장같은 갈목재를 넘었습니다.

 

▲사진9 정부인송의 줄기와 가지

 

 

갈목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늠름하고 중후한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이 소나무는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던 중 소나무 가지가 아래로 처져 걸리게 된 것을 저절로 들어 지나가게 했다하여 정이품의 벼슬을 받은 정이품송이었습니다. 그는 임금을 향한 강직한 마음을 볼 수 있는 늠름한 기골을 가지고 있었으며, 분명 임금에게 충을 다하여 인정받은 사나이임이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600년이라는 세월을 부인과 떨어져 있었던 매정한 남편임에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사진10 정이품송의 전경

 

▲사진11 정이품송의 전경2


 

남편과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갈목재를 정부인송은 얼마나 원망했을까요? 그렇게 기다린 세월은 어느덧 600년이 흘러 이제는 기다림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랜 기다림은 그녀를 지치게도 했지만 아름답게도 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본 소나무 중 최고의 단아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 극락세계도 식후경. 손칼국수와 법주사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극락세계의 풍경일지라도 내 속이 든든하지 않다면 뒷간의 풍경과 다를 바가 없기 마련입니다. 이에 법주사를 구경하기 전에 배가 든든하지 않은 중생이 있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주차장 건너편에 위치한 15년 전통의 '손칼국수' 집이 바로 그 곳입니다. 간판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식당의 주력메뉴는 손칼국수입니다. 2대가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은 아들이 면을 만들고 며느리는 육수를 끊이고 할머니가 마무리를 합니다.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상차림과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배가 든든해 졌다면 극락세계로 들어갈 준비는 모두 끝난 것입니다.

 

 

▲사진12 속리산 인근에 있는 손칼국수 간판

 

 

▲사진13 손칼수집의 메뉴판

 

▲사진14 손칼국수와 감자부침

 

 

법주사는 장대한 가람과 너무나도 유명한 팔상전, 인자한 표정의 마애여래좌상 등으로 눈이 즐거운 곳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법주사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꼽으라면 들어오는 초입길을 꼽겠습니다. 그 길이야 말로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로 통하는 길의 풍경이라 생각합니다. 가지런히 늘어선 가로수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왼편에서 조용히 흐르는 개울소리를 듣고 있자면 자연히 숙연해지며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을 느껴집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도착한 법주사는 참말로 극락세계입니다.

▲사진15 법주사 초입길의 전경

 

▲사진16 법주사 금강문

 

▲사진17 법주사 석조여래좌상

 

▲사진18 법주사 대웅보전

 

◎ 사진출처

-사진1-18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