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상발전소/방송 영화

'역사 품은 브라운관' 두 번째 이야기 - 매력적인 인물, 재생산의 의의

by KOCCA 2013. 5. 31.

 

▲ 사진1 왼족부터 드라마 <동이>, <뿌리깊은 나무>

 

역사의 본래 의미는 사람들에게 ‘기억’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단순히 개인의 기억이 역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이 기록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해석은 다양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역사 기록 사이에서도 한 인물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천재였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성격이 나빴다고 이야기하는 등의 예가 많답니다.


역사가 콘텐츠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캐릭터 해석의 다양성’에서 출발한답니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겪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기록된 역사의 어느 한 줄을 보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포인트는 이겁니다. 과연 그 해석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매력이라는 것이 역사 콘텐츠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럼 우리 드라마는 같은 인물을 얼마나 다양하게 또 비슷하게 표현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 사진2 역대 장희빈

 

 

악녀의, 악녀의 의한, 악녀를 위한 = 희빈 장씨

조선을 논함에 있어서 이 분이 빠지면 아쉽죠. 희빈 장 씨입니다. 한국 역사 콘텐츠 사상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이라고 볼 수 있죠. 소설,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현재 방송하고 있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김태희 씨는 9번째 장희빈이랍니다. 1961년 영화 <장희빈>을 시작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이어서 맡아오고 있지요. 그렇다면 역사 속 그녀는 어떨까요? 희빈 장씨의 이력은 그야말로 화려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자못 아름다웠다’고 짧게 표현됐지만, 다른 후궁들이나 여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실록에서 이 정도의 기록이면 엄청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조선왕조실록이 인정한 유일한 미녀라고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 사진3 드라마 <동이> 속 장희빈

 

흥미로운 기록은 이 부분인데요. 장희빈은 궁인의 신분으로 숙종의 마음을 휘어잡지만 대비에 의해 6년간 궁 밖으로 쫓겨나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컴백과 더불어 숙종의 후궁이 됩니다. 대단한 여인이죠. 이런 매력이 있기 때문에 장희빈은 무려 9번이나 스크린, 브라운관에 다뤄지게 된 것이지요. 이런 점들 때문에 장희빈은 전통적으로 한국사회 악녀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대부분의 해석이 ‘권력을 지향한 요부(妖婦)’ 정도로 통일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시작한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경우 패션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해석을 접목시키기도 했는데요. 과연 그 시도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 결과가 주목이 됩니다!

 

조선의 대표 천재, 하지만 실상은? = 세종

훈민정음을 만든 그분! 모든 초등학생의 선망의 대상이자, 존경하는 인물에 빠지지 않으셨던 그 분 차례입니다. 다름 아닌 조선의 제 4대 왕 ‘세종’이죠. 세종의 본명은 ‘이 도’로 태종의 셋 째 아들이랍니다. 벌써 여기서 매력 포인트 눈치채셨죠? 그렇습니다. 왜 태종은 많은 아들을 두고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줬을까요? 역사 콘텐츠 해석은 이런 작은 부분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 된 이유는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고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治體, 정치의 요체)를 알아서 매양 큰일에 헌의(獻議, 윗사람에게 의견을 아룀)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이라고 적혀있다고는 합니다만, 사실상 그냥 셋 째 아들이 가장 똑똑하니까 셋째에게 주겠다. 하는 것과 같지요.


▲ 사진4 왼쪽부터 동상 '세종대왕'과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세종이 직접 다뤄진 작품은 <대왕 세종>과 <뿌리 깊은 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두 작품에서 다뤄지는 세종은 큰 차이가 있지만요. <대왕 세종>의 경우 세종의 리더십과 훈민정음에 관한 자긍심 등 다소 무겁게 다뤄지는 반면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은 인간적이고 백성을 사랑하는 걸걸한 왕으로 나온답니다. 이 두 면모를 모두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조선의 최고의 천재이자, 애민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을 ‘해동요순’으로 만들었던 왕이기도 하지만, 풍류를 사랑하고 고기를 좋아하면 무려 슬하에 18남 4녀를 둔 왕이기도 하답니다. 이런 이중적인 측면이 대중들이 세종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천재인데 완벽하기까지 하면, 콘텐츠로 다뤄지는 역사 인물의 매력이 없을 테니까요!

 

시대가 만들어낸 비운의 천재 = 정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네, 조선의 제 22대 왕 이 산, ‘정종’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운명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선의 신 부흥기를 이끌었던 왕이지요. 정조의 운명에서부터 이미 매력이 막 팍팍 느껴지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 가장 아름답게 피었던 한 송이의 꽃과 같은 분이죠.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천재로 불립니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였던 세종과는 달리 정조는 매일 밤 자신이 암살에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고통과 불안에 떨며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조의 모든 정책과 사상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답니다.

 

▲ 사진5 왼쪽부터 '정종'의 초상화, 드라마 <이산>의 정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네, 조선의 제 22대 왕 이 산, ‘정종’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운명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선의 신 부흥기를 이끌었던 왕이지요. 정조의 운명에서부터 이미 매력이 막 팍팍 느껴지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 가장 아름답게 피었던 한 송이의 꽃과 같은 분이죠.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2대 천재로 불립니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였던 세종과는 달리 정조는 매일 밤 자신이 암살에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고통과 불안에 떨며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조의 모든 정책과 사상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답니다.

 

사극은 특성상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물의 매력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인물에 대한 재해석 혹은 새로운 접근 시각 위주의 전개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매력 있는 인물을 계속 보여주는 형식이 이루어지기 쉬운데요, 좀 더 매력인 인물을 찾아서 역사를 보는 시각을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사진출처

- 사진 1-5 구글 이미지 검색

- 사진2 네이버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