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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세상을 만든 마고(麻姑)할미는 왜 마귀할멈이 되었을까?

by KOCCA 2012. 11. 8.





우리 구전동화에서 아주 오래 전 옛날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흔히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이란 말을 자주합니다. 그럼 도데체 이 호랑이가 담배를 피던 시절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동물을 의인화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떠오릅니다. 바로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백일동안이나 먹었다는 그 이야기, 바로 단군 신화인데요.


힘든 과정을 통해 인간이 된 곰은 천제의 아들 환웅을 만나 단군을 낳고, 이후 그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면서 우리 나라의 시작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이제 유치원생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은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건국 신화의 시작점인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호랑이와 환웅이 사는 세상을 만든 창제 신화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요?  




 

▲ 건국신화의 주인공 단군 ⓒ 두산백과

 

 

   

 


태초에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는 것은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각 문화권마다 다양한 창제 신화가 존재하는데요. 


여기 아주 오래 전부터 구전을 통해 전해 온 우리 나라만의 창세신화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그것은 바로 '마고할미'입니다. 단군의 건국 이전 세상을 창조한 우리 문화 속 창제신화의 당당한 주인공입니다.

 

 

 

 

▲ 창세신화의 주인공 마고할미 ⓒ한국콘텐츠닷컴

  

 

 마고할미는 태초에 이 세상의 지형을 창조한 거대한 몸집을 가진 여성거인신입니다. 중국의 창세신화인 여신 반고(盤古) 역시 마고(麻姑)처럼 여성거인신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 둘의 창세행보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마고할미가 어떻게 세상의 틀을 잡았는지 살펴보면 창세신화의 위엄과 신비로움보다 친근한 모습의 다정한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 마고할미가 쌓은 성벽이라는 설화가 있는 마고산성 ⓒ 양산시 디지털양산문화대전

 

 

 

▲ 마고할미가 쌓은 산성이라는 설화를 담고 있는 충주산성 ⓒ 디지털충주문화대전

 

 

 

 마고할미는 화려한 무기와 거창한 수법으로 세상을 만들었다기 보단 일상의 작은 행동들로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흙을 담고 가던 치마가 찢어져 산이 세웠고, 한 번의 발길질로 강을 만들고 배설물로 바다와 섬을 만들었습니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과 육지의 개양할미, 서구할미 등이 지역별로 파생된 마고할미의 변형으로, 거창한 호칭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고대국가의 창세신화에 비해 세상을 창조한 방식이나 현재까지 불리는 호칭으로 미루어보아 다소 과소평가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라를 세운 단군은 한민족의 조상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에 비해 세상을 만든 마고할미는 어째서 ‘마귀할멈’이 되어 원망과 퇴치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산을 짓고 강과 바다를 만든 창세의 주인공 마고할미는 험상궂은 마귀할멈이 되어 원망과 퇴치의 대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설화에서 설문대할망은 자신이 만든 바다에 빠져서 죽는 어리석은 인물로 묘사되었고, 서구할미는 사람들을 해치는 악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단군신화에서도 마고는 단군에게 쫓겨났다고 전해집니다. 세상을 만든 주인공인 마고할미가 쫓아내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동아시아에서 가부장 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모계 사회의 중심이었던 마고문화가 퇴출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합니다.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변화하며 가부장제가 자리잡게 되며 마고할미의 영향력은 점점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유교문화의 확장으로 여성거인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세신화는 부정되었고, 구전으로 전해온 마고할미의 이야기 역시 민간전승으로 구분되어 정리해야 할 범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 무속신앙으로만 남은 할미성대동굿 ⓒ 용인시 디지털용인문화대전 


 

현재 마고할미는 무속의 굿판에서만 존재하며, 사람들은 나라를 만든 단군은 기억하되 세상을 만든 마고할미는 마귀할멈으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고할미는 구비설화를 통해 전승된 신화입니다. 오랜 기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어내려 온 설화는 그 민족의 특성과 가치관을 담고 있는 주요한 무형의 자원입니다. 마고할미는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지만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했으며, 거대한 산과 바다에 비견할 만한 거대한 풍모를 자랑했습니다. 마고할미의 이야기가 우리의 민족적 특징과 세계관을 포용한다고 할 때, 마귀할멈이 아닌 마고할미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