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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스마트 미디어와 에듀테인먼트콘텐츠

by KOCCA 2011. 5. 25.

글. 박영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팀)

며칠 전 오랫동안 쓰지 않던 캐비넷 속을 정리하다가 한 장의 DVD 타이틀을 발견했다. ‘놀면서 배운다! 에듀테인먼트’ 라는 이 DVD 타이틀이 2002년의 늦은 가을로 나의 기억을 데려다 주었다.

구(舊)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입사해 필자가 처음 맡은 일이 에듀테인먼트 지원사업이었다. 당시 에듀테인먼트 개념이 널리 퍼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생소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이 비즈니스를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다만 에듀테인먼트가 교육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산업으로서도 발전가능성이 높다는 논의가 업계로부터 조심스럽게 나타났다. 그런 의견들이 수렴되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자 사업을 준비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에듀테인먼트 진흥업무는 초기 3년간 주로 우수 콘텐츠 발굴과 제작지원 중심으로 추진됐다. 에듀테인먼트를 정의하고, 분류하고, 관련 산업의 규모를 파악하는 등 산업 체계를 갖추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됐다. 에듀테인먼트 산업은 2003년 말 기준으로 추정 매출액 525억원에서 2009년 말 현재 1428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학습방식으로서의 에듀테인먼트가 가지는 장점과 초고속인터넷 보급의 확산, 우수한 콘텐츠의 경쟁적 출시,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높은 교육열 등 시장 내외의 긍정적인 환경요인에도 불구, 수요는 초기의 기대만큼 빠르게 확대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최근 에듀테인먼트 업계가 좀 이상하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로 대변되는 스마트 미디어와 글로벌 오픈 마켓의 등장 이후, 에듀테인먼트콘텐츠(애플리케이션) 제작이 활기를 띈다. 스마트폰 등장 초기에 주로 성인 대상의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의 제작과 유통이 활발했다면, 스마트패드 등장 이후 유아·어린이·청소년 대상 에듀테인먼트콘텐츠가 봇물이 터진 듯하다.

이용자 측면에서 스마트 미디어는 인터넷과 PC보다는 이용이 편리하고 쉬운 것만은 사실이다. 회원 가입도 필요하지 않다. 한 번 가입하면 1년치 이용료를 한 번에 지불하거나 매달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다소 귀찮은 일도 없다. 교육적인 내용에 대한 검증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료 콘텐츠나 0.99~3달러 내외의 비교적 저렴한 유료 콘텐츠를 다운받아 이용해보고 언제든지 다른 콘텐츠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콘텐츠의 다운로드수가 실시간으로 표기되고 이용 후기도 언제든지 읽어 볼 수 있다.

필자는 스마트 미디어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콘텐츠가 에듀테인먼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2000년대 초·중반에 기대했던 에듀테인먼트 산업의 발전이 스마트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런 기대가 우려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마트 미디어 시대의 에듀테인먼트콘텐츠에 대한 몇 가지 기회요소와 위협요소를 생각해봤다.

기회요소는 에듀테인먼트콘텐츠 수요의 증가다. 전문화·세분화한 지식에 대한 수요증가, 인구 고령화에 따른 평생학습의 수요증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지식수요의 증가 등이다. 휴대성·편리성·상호작용성 등의 특성을 갖는 스마트 미디어의 확산·보급 또한 수요를 증가시킬 것이다.

위협 요소도 적지 않다. 같은 교육적 내용이라도 그 제공형식에 따라 무수히 많은 콘텐츠로 생산될 수 있어 틈새시장이 큰 특성을 갖지만, 낮은 진입장벽이 기업 간 경쟁을 격화시켜 동일 분야에 과잉중복투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또한 콘텐츠의 양적 증가는 이용자에게 양질의 에듀테인먼트콘텐츠를 선별하기 어렵게 할 수 있으며, 콘텐츠가 가지는 경험재적 특성 역시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더불어 미디어의 융합과 다양화의 추세가 콘텐츠기업에게는 높은 불확실성으로 작용해 생산의 위축과 우수한 콘텐츠의 과소생산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오픈마켓은 국산 콘텐츠를 해외시장에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반대로 해외 콘텐츠의 국내시장 유입 역시 확대가 예상된다.

스마트미디어와 오픈마켓의 등장은 에듀테인먼트 산업에 약으로, 혹은 독으로도 작용할 수 있어 현명한 대응이 요구된다. 오래된 캐비넷에서 꺼낸 DVD 타이틀 한 장이 전해준 묘한 기대와 흥분감에 두서 없는 생각을 펼쳐보았다.

※ 본 글은 전자신문 5월 23일자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글. 박영일 ⓒ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