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질서의 전복’ 그리고 ‘전환과 확장’ - 

글. 강지원

현재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은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도입한  ‘오디션 프로그램’ 천하다. 한순간에 리얼버라이어티가 대세였던 예능 프로그램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작년 하반기 <슈퍼스타K 2(이하 슈스케)>로부터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열풍을 넘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MBC TV에서는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이 막바지 라운드에 이르렀고, 케이블 tvN에서도 지난 4월 2일 <오페라스타>가 시작됐다. 뒤이어 6월 방영을 목표로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코리아 갓 탤런트>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또 SBS TV도 <기적의 오디션>이라는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이 이루어내는 꿈이라는 스토리가 전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유독 다르게 다가오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 TV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이다. <나가수>는 단 1회의 방영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 모으는가 싶더니 3회분이 방영되던 지난 3월 20일에는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광고가 완판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실력파 중견가수들은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무장한 아이돌에 밀려 주요 가요 프로그램에서 멀찌감치 밀려나 있었다. 그나마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 간간이 출연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댄스음악에 편중된 국내 가요계는 볼거리 가득한 전형적인 가요 순위 프로그램뿐 아니라 각종 버라이어티나 드라마, CF 같은 타 장르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모시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돌 그룹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하기가 힘겨워질 무렵 오디션이라는 포맷은 신선하게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아마추어들이 들려주는 소박한 음악과 도전, 스토리가 호응을 불러왔던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어느 틈엔가 <나가수>에 온통 집중된 모습이다. 진짜 프로들이 만들어내는 무대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래 없는 관심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3회 방송이 끝나자마자 온갖 비난이 쇄도했고 연출자를 비롯한 가수들은 깊은 상처를 받아야했다. 결국 프로그램은 지난 3월 27일 4회 방송을 마감하고 재정비라는 이유로 한 달여의 잠정적인 결방에 들어갔고 출연 가수들의 진솔한 태도와 멋진 무대에 감동한 시청자들은 ‘방송마저 재도전’이냐며 MBC 예능방송국의 조급한 대처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진정성을 겸비한 음악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미 내려진 결론이 번복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폭력적이었던 우리들의 평가도 반성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를 반영하듯 MBC TV는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시사교양 프로그램 <100분 토론(4월 1일)>을 편성했다. 각계 계층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과연 단순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불과한 <나가수>에 범국민적인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휴먼 모드에 돌입했으니 진정하고 찬찬히 그 의미를 점검해 볼 때이다.  

원래 오락적 가치를 극대화한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서바이버>는 리얼리티 쇼의 트렌드를 선도한 프로그램으로 영국에서 제작되고 스웨덴에서 최초로 방영되었다. 이후 2000년에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이 <서바이버>의 포맷을 구매했고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자 유럽으로 역수입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은 문화콘텐츠는 각 나라로 흘러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포맷으로 변형되기 마련이다. 미국에 <아메리칸 아이돌>이 있다면 우리에겐 <슈스케>와 <위탄>, <나가수>가 있다. 위에서 열거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방송국에서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긴장하게 만드는 특별한 장치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슈스케>나 <위탄>, <나가수>는 모두 음악이라는 장르에 스토리를 엮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경우이다. 이 중 <나가수>는 얼핏 보면 출연자가 일반인에서 프로인 가수로 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최고의 가수가 준비한 최고의 무대라는 점에서 분명 다른 감동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고의 무대라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간간이 다른 방송과 매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들과 <나가수>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바로 ‘가치질서의 전복’이다. 필자가 지난 칼럼 [다큐멘터리 영역을 넘나드는 리얼 버라이어티(2010년 12월 31일 업로드)]에서 지적했던 대로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조망된 가치이고 의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동안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상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즉 권위자들이 아래의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추어들을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당연해 보이는 구조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는 반대다. 상위에 있는 스타들을 지극히 평범한 대중이 심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음악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동안 권력적 위계에서 열등한 지위에 있던 우리들은 무언가를 심사하거나 평가하고 결정하는 소통의 부분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다. 수직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가수>는 그 경계를 허물었다. 권력과 계급의 가치에서 벗어난 수평적 세계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스타나 연예인을 상위권 영역에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그들이 존경받고 본받아야 할 훌륭한 인격체라서가 아니라 바로 대중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밝힌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가수>에도 최상위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기는 하다. 자문위원들이다. 음악관련 방송의 PD나 교수, 작가들로 구성된 이름 난 권위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프로그램 속에서 권위자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7명의 출연 가수 선정이라는 당위성만을 설명해 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심사와 평가라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일반 대중을 객석에만 앉혀놓고 심사는 자문위원이 했다면, 지금과 같은 국민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나가수>를 통해 우리 모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니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절대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이미 원곡을 통해 인정받았던 음악들을 편곡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해석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다른 가수의 히트한 노래를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재해석은 오리지널만이 갖고 있던 예술성이 전환되고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영화 분야에서도 B급 무비를 하나의 장르로 받아 들인지 오래다. 라틴 아메리카 예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Fenando Botero)와 같은 화가도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작업을 통해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물론 뚱뚱하고 비대한 인체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많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 예술의 흐름은 아류라거나 복사본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 되는 세상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패러디가 하나의 현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독특한 재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들 - 고전의 재해석

 

모든 문화콘텐츠 전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운운한다. 이전의 모더니즘이 하나의 분야에서 독특한 구조와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장르의 해체와 탈장르 더 나아가 장르 간의 결합까지도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이미 한 장르를 구축하며 저만의 영역을 이루었다고 생각되어지던 가수들은 이젠 그 영역에만 머물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분야 외에도 다른 분야의 영역도 포용할 수 있는 자질과 노력을 보여주어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가수>라는 무대에서 기존의 확고한 음악적 기반을 갖고 있던 가수들이 타 장르의 음악을 들려줄 때 공감하는 것은 그들의 진정한 노력과 그 속에 포함된 재해석된 음악의 예술성일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가치질서의 전복’을 경험하게 하고 ‘전환과 확장의 예술’이라는 감흥을 안겨 준 <나가수>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최고의 명품 오디션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비록 많은 논란 속에 재정비에 들어갔지만 지난 한달 동안 이뤄냈던 일들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부디 이전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거듭나 재조명 받기를 기대해 본다.


강지원 ⓒ 한국콘텐츠진흥원 - 콘텐츠칼럼

. 강지원 / 세종대학교, 한서대학교, 한성대학교 출강중
원문. http://www.kocca.kr/gallery/column/1313760_1381.html

※ 본 글의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