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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내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CG - 삼우공간 정원혁 이사를 만나다.

by KOCCA 2012. 3. 6.

 

 

  이 름 : 정 원 혁

 

- 주요 경력 -

 현재 (주)삼우공간 이사 (2007년 12월부터)
 2010년 Dead Space Aftermath 제작
 2007년 All Pro Football 2K8(콘솔 게임) 캐릭터 아티스트
 2006년 NBA 2K7(콘솔 게임) 캐릭터 아티스트
 2005년 NBA 2K6(콘솔 게임) 캐릭터 아티스트

 

뭐든지 해보고 싶고, 뭘 하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10대나 20대가 아닐까. 돌이켜 보면 엊그제 같기만 한데 세월은 쏘아 놓은 화살처럼 휙~ 하고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뜨거운 열정과 관심으로 20대의 청춘을 바쳐 컴퓨터 그래픽(CG)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선 이가 있다. 바로 삼우공간 영상사업부인 픽스테이션(Pixtation)을 책임지고 있는 정원혁 이사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CG를 하게 된 그의 인생 스토리가 궁금했다.

  

뜨거운 열정은 CG에 꽂히고


“그때는 다른 건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CG가 하고 싶었죠.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CG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죠. 졸업하고 건축회사에 들어갔는데 건축일 보다는 CG가 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AAU)에서 컴퓨터 아트(3D 모델링)를 공부하게 됐죠. 사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영상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비자 문제가 계속 터졌죠. 그러다 게임 회사에 취업하면서 고민거리가 해결 됐죠.”

그의 젊은 시절도 여느 CG인들과 다르진 않았다. 그냥 CG 작업하는 것이 좋았다. 모니터 화면을 화려하게 수놓는 CG 작업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이제 CG는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건축하는 사람들 중에 CG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건축 모델링 작업을 하다 보면 오토캐드나 3D 스튜디오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다른 분야 보다 이런 툴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저 역시 건축 설계보다는 CG 작업에 훨씬 더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물론 건축 개념이 있는 사람들은 스케일감도 좋고 공학적인 면도 밝지만 아트적인 면은 다소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2K Sports (Visual Concept Entertainment in San Rafael, CA 재직 당시)

 

그는 미국에서 캐릭터 아트를 공부하면서 건축학이나 설계가 아닌 인체해부학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지치지도 않았다. 그만큼 CG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에 푹 빠져 있었다. 2004년 스포츠 게임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는 2K Sports에 입사하면서 그는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의 캐릭터를 모델링했다.

 

2K Sports는 EA와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스포츠 게임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업체다. 그는 이곳에서 NBA 농구를 비롯해 대학농구, 풋볼 게임 등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하며 캐릭터 아티스트로 첫 발을 내딛었다.
 

“보통 NBA를 비롯해 대학농구, 풋볼까지 회사에서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선스가 있으면 게임 제작에 필요한 선수들의 정보와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데, 그 데이터를 가지고 선수들의 캐릭터를 모델링하는 일을 했습니다.”

 

▲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했던 게임 ‘NBA 2K6’



미국에서 스포츠 게임은 스테디셀러

미국은 스포츠 강국답게 스포츠 게임에 대한 인기도 굉장히 높다. 특히 게임 회사에서는 스포츠 게임이 임팩트가 강하고 중독성이 강한 빅 히트작이 아닐 지라도 오랫동안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입을 올리게 해주는 효자 상품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미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기 전에 캐릭터 아티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에 XBox 초기 모델을 비롯해 XBox 360, 플레이스테이션 2, 3 같은 콘솔 제품용 게임 타이틀에 들어가는 캐릭터를 모델링하는 일을 주로 했다.

 

“캐릭터 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일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미국에서도 막바지 CG 작업을 할 때는 철야를 합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에요. 물론 우리나라 게임회사들처럼 자주 밤샘 작업을 하지는 않지만요. ‘클런치 모드’라고 해서 게임 타이틀이 출시되기 두 달 전쯤부터는 집에 가는 대신 회사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옷만 갈아입고 다시 회사에 돌아와서 일을 하죠.”

 

 

▲ 캐릭터 아티스트로 참여했던 ‘NBA 2K7’

 

그가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NBA 2K6’라는 게임 타이틀을 만들었을 때다. 외국인 친구와 둘이서 500여 개의 캐릭터 모델링 작업을 해야 했다. 물론 모두 다르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얼굴 모양을 바꿔서 작업하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요즘은 컴퓨터 사양이 높아져서 더 짧은 시간에 만들고 있지만 보통 미국에서는 캐릭터 하나를 생성하는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줍니다. 그러니 꽤 많은 작업 양이었죠.”

 

스포츠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실제 인물들의 사진이나 영상 데이터를 기본 모델로 삼아 가능한 똑같이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탄생한다. 기본 템플릿을 만들어 놓고 얼굴을 바꾸는 작업이 많은데, 개수가 많아지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 캐릭터 아티스트로 참여했던 ‘All Pro Football 2K8’



그에게 즐거웠던 기억은 미국 AAU 출신들이 만든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였다. 해외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블리자드에 있는 강형원 씨가 운영하는 ‘게목사(게임에 목숨 건 사람들)’라는 게임 캐릭터 아티스트의 모임에서는 게임제작에 필요한 노하우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국내에서 CG 회사를 운영한다는 건


“국내에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들어오게 됐는데 미국인이 한국에 세운 게임회사에서 잠깐 있었어요. 그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R&D 개발 프로젝트에 인연이 되어 삼우공간 영상사업부에 ‘픽스테이션’을 만들게 됐어요. 미국에서는 캐릭터 아티스트로 활동했지만 게임에 들어가는 홍보영상이나 시네매틱 작업을 진행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때부터 캐릭터 모델링 작업 보다는 영상 작업에 더 큰 매력을 느꼈죠.”

 

그는 픽스테이션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영상작업을 주로 진행하다가 두 편의 영화 CG 작업에 참여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비롯해 지난해 넥스트 비주얼과 함께 이연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백사대전>이라는 중국영화의 CG 작업을 맡았다. 이외에도 국내 게임 회사인 위메이드의 게임 홍보영상을 비롯해 한빛소프트의 <삼국지천> 홍보영상 시네매틱 작업도 픽스테이션의 작품이다.

 

“지난해 1월에 출시된 <Dead Space Aftermath>라는 EA 게임의 OSMU 성격을 띤 애니메이션 작업도 했습니다. 게임의 속편은 EA에서 제작하고 픽스테이션에서는 DTV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죠. 또, 정부지원 사업으로 일환으로 ‘꼭두각시’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 2011년 1월 출시된 ‘Dead Space Aftermath’


하지만 그가 국내로 돌아와 CG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영상사업을 4년 동안 해보았지만 비전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CG시장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어요. 몇몇 회사는 정품 소프트웨어를 갖춰 놓고 정상적인 룰에 맞춰 CG 가격단가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영세한 CG 업체들은 제대로 투자를 하지 못한 상태로 영업을 하고 있어 정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가격경쟁을 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는 자신들처럼 정품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CG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들로 인해 회사 운영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한 사람을 채용하면 워크스테이션과 CG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데 적어도 2천만원은 들어갑니다. 10분짜리 영상작업 일을 따낸다고 하면 적어도 10명은 투입되어야 하죠. 따라서 아무리 못해도 인건비와 경상비를 생각하면 적어도 2억원 이상은 가격을 책정해야 되는데, 1억도 안 되는 가격을 들고 입찰에 들어오는 업체들이 있어요. 그 일을 못 따는 것도 문제지만 따낸다고 해도 그 비용으로는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죠.”

 

 

▲ ‘Dead Space Aftermath’ 제작 당시, 삼우공간 영상사업부 픽스테이션 아트팀원들과 함께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기본 가격조차 책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정상적인 투자를 해서 경쟁에 뛰어드는 업체들은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원혁 이사는 앞으로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올바른 가격을 제시하고 받을 수 있도록 시장을 이끌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힘들지만 그래도 CG에 희망을 건다!

해외시장과의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결코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다. 인건비가 비싼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수주 경쟁도 만만치 않다. 인도라든지 중국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고, 최근 들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도 CG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진 상황이다. 한국 CG업체가 특별한 CG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해외 프로젝트를 맡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해외 취업의 길도 쉽지 않다. 예전처럼 한국에서 일하다 스카우트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학생활을 거치면 좀 더 쉽게 취업의 길로 다가갈 수 있지만 미국 생활도 높은 생활비로 인해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 삼우공간 영상사업부 Pixtation Korea Media & Content Market USA

 

유학과정을 거치지 않고 스카우트되어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다.

“미국에 아직 있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생활고에 힘들어서 오는 사람도 있고 가족들이 한국에 있어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미국 생활은 화려하지도 만만치도 않다고 그는 말한다.  

“연봉 조건이 한국보다는 좋은 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세금은 비싸기 때문에 크게 플러스 요인이 되진 않습니다. 또 매달 월세를 내야하고 땅이 넓어서 차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생활비로 지출되는 고정비용이 큰 편이죠. 따라서 한국에서보다 많이 번다고 해도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진 않습니다.”


국내 CG시장이 열악한 실정이라 아직까진 국내에서 큰 비전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정원혁 이사는 20대에 좋아서 시작한 CG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융복합 시대를 맞아 CG만 고집해서는 답을 찾기 힘들다고 그는 지적한다.

“앞으로는 스마트 미디어처럼 새로운 미디어에 적합한 포맷을 찾고 기획력과 CG 기술력으로 경쟁업체에 맞서야 할 때입니다.”

 

그는 국내 CG 업계를 이끌고 있는 선두업체들이 후발업체들은 물론 CG계에 입문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시장의 터전을 잘 닦아주길 바라고 있다. 그의 바람과 노력이 좋은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