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 노동환경 개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
안전한 제작 노동환경, 제작인력의 인권 보호는 품질 높은 콘텐츠 제작의 기반이 됩니다. 제작환경의 개선과 제작인력의 인권강화는 방송영상 제작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상생환경 조성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2017년 7월 박환성・김광일 독립PD 사망 사건으로 쟁점화되었던 열악한 방송프로그램 제작환경, 그에 따른 일련의 사건은 2018년에도 반복되어 나타났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3개 드라마 제작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였습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스태프임에도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경우, 연장근로 제한 위반, 최저임금 미지급, 서면 근로계약 미작성 등 다수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었습니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대표되는 방송제작 노동환경의 문제는 물론, 적합한 계약 미체결에 따른 처우 관련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에는 특히 장시간 노동 문제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많은 편수의 드라마가 장시간 촬영 스케줄을 진행하여 수면시간 또는 휴식시간 미보장 문제로 기사화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 2018년 2월 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노동 시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됨에 따라, 제작 현장에서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대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낮은 수준의 임금부터 계약 미체결에 따른 사회보험 미적용, 안전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제작현장까지, 노동환경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습니다.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5개 부처의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 발표(2017년 12월)를 기점으로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범부처 협력 및 부처별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여기에 제작 스태프의 사망, 장시간 노동 문제가 2018년에도 쟁점화되면서 정부의 노력 및 개선 의지에는 더욱 더 힘이 실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12월 <제5차 방송영상산업 진흥 중장기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공정・상생 생태계 조성 △산업 혁신성장 기반 구축 △방송영상 콘텐츠 글로벌 확산 등 3개 추진 방향이 설정되었는데 방송영상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계획을 포함합니다. 대표적으로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서 개별 근로계약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근로자로서 방송사 또는 제작사에 역무를 제공하는 제작 스태프가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함으로써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 기본권을 보장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작사는 스태프와의 개별 근로계약으로 최저임금, 4대 보험료 등의 부담을 얻게 될 수 있는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19년부터 편당 제작지원비를 약 20~30% 증액한다는 계획을 함께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지원 대상 선정평가기준에 스태프·출연진 임금체불 등 ‘노동 인권’ 관련 평가기준을 도입하여, 임금체불 이력이 있는 제작사에게는 감점을 부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는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표준계약서 실효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마련하였습니다. 해당 부처는 방송프로그램 제작/방영권 구매(2종), 제작 스태프 근로/하도급/위탁(3종), 방송작가 집필(1종) 등 총 6종의 표준계약서를 마련하여 관련 주체에 사용을 권고해왔는데, 표준계약서의 법적 성격 명확화를 위해 2018년 11월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고시로 제정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5차 중장기계획에서는 공공PP, 정부지원 사업, 모태펀드 등 공공부문 사업지원 시,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표준계약서 이용문화 확산 및 계약서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방송사·제작사·제작 스태프·방송작가·독립PD 등 관련 주체 대상의 표준계약서 설명회 개최 계획, 계약서 조문 내용에 대한 교육 콘텐츠 개발 계획이 함께 발표되었습니다. 표준계약서는 물론,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관행, 표준계약서의 형식적인 사용과 오용은 방송사·제작사·제작 스태프·작가 등 관련 주체가 각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를 수반합니다. 표준계약서 이용을 확산하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노력은 양질의 노동여건 구축을 통해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제작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의지를 반영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열악한 노동조건, 불명확한 계약 관계로 인해 다수의 제작 인력이 근로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2018년 3월부터 10월까지 3개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였습니다. 2018년 근로감독을 통해 그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현장 스태프들에 대한 근로자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하였으며, 근로자성 인정에 따라 연장 근로 제한 위반, 최저임금 미지급,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의 법 위반 사항에 대한 시정조치를 내렸습니다. 이후 드라마 제작현장을 지속적으로 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KBS에서 방영 중인 4개 드라마 제작 현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이어갔습니다.
2018년,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 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업계 자율의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 선포가 추진되었습니다. 제작에 참여하는 개별 독립창작자에 대한 보호, 안전한 제작환경 및 공정한 계약 등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목표로 민간 자율 형태의 선언을 견인하였습니다. 선언문의 구성, 문구 및 표현에 대한 참여 주체 간 의견 조율을 통해 ‘상생 방송제작을 위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으로 명명된 선언문이 마련되었고, 2018년 11월 한국방송협회, 한국독립PD협회,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희망연대노조 방송 스태프지부 등의 참여 아래 선언문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선언문은 △독립창작자 기본인권 보장 △안전한 방송제작 환경 △공정한 방송제작 노동관계 △폭력예방 및 보호 △상생의 방송제작문화 등 5개 부문의 15개 조항으로 구성됐습니다. 해당 선언문은 사업자 및 창작자가 문제의식을 함께 하여 이뤄낸 결과물이라는 점, 또한 방송 제작환경과 제작인력의 처우 개선을 위한 기본적인 원칙을 도출하여 대외적으로 선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언문 발표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관련 주체 간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 움직임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사업자 및 협·단체는 물론, 개인 창작자로서 역할을 하는 제작 인력의 지속적인 주의 환기 및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방송 스태프 노조 출범
2018년 7월, 방송 제작 스태프 노동 권익 보호를 위한 희망연대노조 방송 스태프지부가 출범하였습니다. 비정규직·프리랜서 방송제작 인력의 노동조합으로, 특정 직군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종사자 모두를 포함하는 노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영국 사례를 살펴보면 스태프 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장치로서 제작 스태프 노조 및 연맹의 역할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제작 스태프 노조 또는 연맹이 제작사 협·단체와 단체협약을 맺는데, 협약 내용에는 근무시간, 초과 근무수당 등에 대한 기준이 포함됩니다. 개인 스태프는 해당 단체협약 내용을 기준으로 제작사와 개별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안정적인 노동환경 및 처우를 보장받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드라마 제작 스태프의 상당수가 속해 있는 극장무대기술자연합(IATSE)은 TV·영화 제작자 협회와 스태프의 근무조건과 관련하여 단체협약을 맺으며, IATSE에 속한 스태프 개인은 단체협약에 명시된 조건(임금 단가, 초과 근무 수당, 의료보험, 퇴직연금, 안전교육 등)을 토대로 제작자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영국 방송예능 영화공연 노조(BECTU)는 카메라, 조명, 음향, 분장, 소품 등 다양한 직군의 방송제작 스태프들이 속해 있습니다. 해당 노조는 영국 독립제작사협회(PACT)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데, 스태프의 노동시간 및 휴게시간, 시간당 임금, 유급휴가 등 노동조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협약서에 담깁니다. 미국 IATSE 소속 스태프와 마찬가지로 영국 BECTU에 속한 스태프 개인은 단체협약 내용을 기준으로 제작사와 개별 계약을 맺습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 스태프지부는 출범 첫 날,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최소한의 권리’로 △살인적인 초과노동 중단과 노동시간 단축 △정당한 임금과 초과 노동수당 지급 △점심시간·휴게시간 보장과 안정적인 식사 제공 △하루 8시간 수면권 보장 △야간촬영 종료 시 교통비·숙박비 지급 △불공정한 도급계약 관행 타파와 노동인권 존중 △근로시간과 적정 임금 명기된 근로계약서 작성 △모든 스태프들에 대한 차별금지와 인권 존중 등을 요구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미국의 IATSE, 영국의 BECTU 등 해외 스태프 노조 역할에서 살필 수 있듯, 한국의 방송영상산업 생태계에서 방송 스태프지부가 발휘할 긍정적 영향력을 예상해봅니다. 다종다양한 고용형태를 띠고 서로 다른 직군으로 구분되었던 스태프를 묶는 하나의 단체가 조직된 만큼, 스태프 권리 신장은 물론 노동환경 전반의 개선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제작인력 처우 개선을 위한 사업자의 움직임
2018년은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자의 노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한 해입니다. 상생환경 조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차원의 조치가 여러 사업자들에 의해 마련되었는데, 특히 방송 제작인력의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바로잡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프리랜서를 포함한 비정규직 인력의 정규직화를 추진하였고, 제작 스태프 및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의 준용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2018년 1월, 서울시는 TBS 교통방송의 프리랜서PD와 기자, 작가, 카메라 감독 등 비정규직 272명에 대한 단계적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정규직 전환 조건을 충족한 종사자는 개방형 제한 경쟁 절차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전환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종사자의 경우, 전속계약 체결 등 직접 고용 방식을 통해 처우를 보장하기로 하였습니다. 업무 특성이나 본인 의사에 따라 프리랜서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표준계약서 작성을 통해 노동인권을 보장할 것이라는 계획 역시 마련되었습니다.
2018년 3월에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 CJ ENM이 비정규직 종사자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던 1~3년차 프리랜서 PD와 작가의 용역료 인상안, 방송작가 집필 계약서 제정 및 체결 의무화 계획 등이 ‘방송산업 상생방안’의 일환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방송사, 제작사, 제작인력 간 인식 차이를 좁히고, 상생환경 조성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소통 창구가 마련되기도 하였습니다.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은 모회사 CJ ENM과 함께 1일 노동시간 14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주 68시간 제작 가이드를 마련하여 제작사에 전달하였으며, 더 나아가 프로젝트별 스태프 협의체를 구성하여 상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현장 상황에 맞게 제작 노동 이슈를 해결해 나가고, 스태프와 상시 소통 및 그들의 동의를 얻어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는 사업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방송사업자와 제작인력 간 지속적인 소통에 따른 결과물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지상파방송 4사와 언론노조는 2018년 6월 산별교섭을 위한 상견례 이후 매주 분과별 교섭을 진행하였으며, 9월에는 첫 산별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산별협약 내용에는 ‘사전 제작 환경 협의’를 의무화하는 특별 대책이 포함되었는데, 장시간 노동에 따른 문제가 지속으로 발생해 온 드라마·예능 제작 현장 스태프의 노동 인권 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방송사 책임자와 제작사 대표가 제작 스태프와 사전에 촬영 시간, 휴게 시간을 포함한 제작 환경에 대해 충분히 협의한 후 제작 현장을 운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2019년 7월, SBS가 지상파 산별협약 체제에서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지상파 공영방송 산별협약’으로 변경되었지만, 노사가 제작환경 개선에 한 뜻을 모아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띱니다. 드라마 스태프의 표준인건비 기준과 표준근로계약서 내용 마련을 위한 ‘지상파방송 드라마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 방송작가의 권익보호 및 표준계약서 제도의 안착 방안 모색에 목표를 두는 ‘방송작가특별협의체’와 같이 핵심 주체 간 실질적인 논의의 장을 구성하여 운영을 이끌었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방송 제작인력은 한국 방송영상산업의 성장을 견인한 핵심 주역입니다. 제작인력의 이탈은 방송산업의 손실이자, 산업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해당 산업 영역에 능력 있는 인재가 지속적으로 투입되고, 창작자로서의 역량, 노동자로서의 역무가 일종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들이 몸담고 있는 제작현장이 안전해야 함은 물론, 이들의 권익을 해치는 요소가 잔존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정부 부처, 방송사와 제작사 및 협·단체, 제작인력의 이익을 대표하는 노조 등 관련 주체의 환경개선 의지와 실질적인 노력, 실효성을 담보하는 조치가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 일련의 변화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작 인력의 노동 형태는 제작에 참여하는 프로그램 장르, 직종, 제작참여 경험기간 등 여러 변인의 결을 타고 다종다양한 특성을 띱니다. 그만큼 2018년에 가시화된 움직임, 발표된 계획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아쉬움이 남는 조치로 평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당 사안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 부처가 마련한 정책과 제도, 사업자의 신규 운영 계획, 노사협약 결과 등은 일차적으로 건강하고 안정적인 제작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동조건이 무엇인지 명문화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제작 스태프 노조의 출범, 방송사업자와 언론노조 간 산별협약과 그에 따른 협의체 운영은 상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지속적인 소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향후 더 나은 제작환경 구축을 목표로 온전한 합의를 이루는 데 소중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 방송영상 산업백서'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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