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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고전 시가에서 콘텐츠를 발견하다

by KOCCA 2014. 12. 2.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우리 고전들 생각나시나요? 고전 작품은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자가 빼곡했던 고전 시가는 더욱 가까이하기 어려웠습니다. 딱딱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고전 작품이 이제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나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새로운 콘텐츠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고전은 무궁무진한 소재를 지닌 동시에 친근하며 저작권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콘텐츠 보물창고'라 말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 형태로서 문화원형이 그대로 살아있는 고전 시가들이 현대의 감성과 만나 새롭게 탄생한 콘텐츠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전이 어렵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색안경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부터 새롭게 탄생한 우리 고전 시가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운치 있게 고전 시가도 한 수 읊어보고 작품들도 알아가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임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시오 公無渡河


임은 그예 그 강을 거너셨네 公竟渡河


마침내 물에 쏠려 돌아가시니 墮河而死


가신님을 어찌할 것인가? 當奈公何


위 작품은 4언 4구의 한시(漢詩)로 채록되어 전해지는 <공무도하가>입니다. 이 시와 관련된 설화에 대해서 함께 알아볼까요?

  

“공후인(箜篌引)은 조선(朝鮮)의 진졸(津卒)인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처 여옥(麗玉)이 지은 것이다. 곽리자고가 새벽 일찍 일어나 배를 젓고 있는데, 머리가 흰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호리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소리 높여 부르며 막으려 했으나 그녀가 다다르기 전에 그는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백수광부의 아내는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으니 그 소리가 매우 구슬펐다. 노래를 마친 후 아내는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곽리자고가 돌아와 아내인 여옥에게 그 소리와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옥은 슬퍼하며 공후를 타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그 소리를 따라 하니 듣는 사람 모두 눈물을 흘렸다. 여옥이 그 소리를 이웃의 여용(麗容)이라는 여인에게 전하니 이름을 공후인(箜篌引)이라 하였다.”


위의 글은 <고금주>에 의한 기록입니다.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 빠져 죽자 그의 아내는 ‘공무도하’ 노래를 부르고 그를 따라 빠져 죽는 이야기를 여옥이 다시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임과의 슬픔이 담긴 <공무도하가>. 과연 어떠한 장르와 내용의 콘텐츠로 탄생했을까요?


 

 사진1 음악극 <공무도하> 포스터



먼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지난 11월 30일에 막을 내린 음악극 <공무도하 - 님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가 있습니다. 이 공연은 실종된 한국 공연 예술사의 복원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고대 시 <공무도하가>를 모티브로 한 음악극입니다. ‘백수광부는 왜 강을 건너려고 했을까?’에 대한 극적 제시와 이에 따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아파트 동 호수를 잃어버린 사내의 이야기, 남남북녀의 사랑 이야기, 백수광부의 노래 등으로 구성된 음악극 <공무도하 - 님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는 악가무시사(樂歌舞詩辭)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총체극 양식입니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음악극은 국립국악원과 연출가 이윤택에 의해 우리 시대의 색다른 음악극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우리는 무너지고 좌절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현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며 죽음을 애도합니다. 어쩌면 <공무도하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음악극은 이러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 사진2 음악극 <공무도하> 공연모습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27일에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입니다. 


  

▲ 사진3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포스터



76년을 연애하듯 이어온 결혼생활, 이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수행하며 평생을 함께해온 백발 노부부는 20대 신혼부부와 버금가는 달콤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노부부는 마당에 굴러다니는 가시오가피 낙엽들을 쓸다 말고, 낙엽 더미로 서로 장난을 치는 것은 물론 샛노란 국화꽃을 서로의 머리 위에 꽂아줍니다. 남편은 소년처럼 장난기가 많아 수시로 부인에게 장난을 걸고 부인은 짐짓 삐치고 화난 척을 하지만, 어느새 귀여운 복수를 감행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밤중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섭다며 같이 가달라는 부인을 위해 남편은 동행은 물론, 화장실 앞에 지켜 서서 ‘정선아라리’를 목청껏 불러주는 로맨틱함을 발휘합니다. 영화는 이 노부부의 이야기를 잔잔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부부는 영화상에서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진심 어린 배려의 말을 합니다. 이는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사랑을 유지하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것을, 노부부는 아주 간단한 삶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사진4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하지만 사랑으로 넘치며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결혼생활에도 거스를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옵니다. 집 앞에 유유히 흐르는 강의 물줄기처럼 남편의 죽음이 불현듯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더는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느낀 부인은 남편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할아버지요, 먼저 가거든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두고 얼른 나를 데리러 와요. 나만 홀로 오래 남겨두지 말고… 우리 거기서 같이 삽시다” 


그녀는 이승 너머 저승에서의 삶에서도 남편과 함께 꿈꾸고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흔히들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지만,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무엇인지, 백발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진5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실제로 1년 4개월에 걸쳐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 부부의 집을 비롯해 집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노부부의 일상과 함께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소소한 아름다움과 짠한 이별의 슬픔 모두를 노래하는 이 영화 속에서 만나는 <공무도하가>는 아마 떠나는 님을 붙잡고 싶은, 아니 떠나는 님과 그 어디라도 함께 가고 싶은 애절한 순간을 포착한 노래가 아닐까요? 


올겨울에는 <공무도하가>로 진한 감동의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극 <공무도하>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모두는 저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공무도하가>를 해석하고 하나의 멋진 콘텐츠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여러분의 <공무도하가>는 어떤 순간에,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하네요.



▲ 사진6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이자 동시에 4구체 향가로 민요가 동요로 정착된 유일한 노래인 서동요.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뭘 안고 가다(夜矣 夗[卯]乙抱遣去如)

  

흔히 알고 있듯이, 서동이 선화공주를 연모하여 만든 <서동요>는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이 노래가 대궐 안에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고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공주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네 줄의 시는 총 56부작의 드라마 <서동요>로 탄생하였습니다.


 

▲ 사진7 드라마 <서동요> 속 한 장면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화려한 인생을 살아간 삼국시대 백제 왕국 30대 임금 무왕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서동요>. SBS 창사 15주년 대하드라마인 이 작품은 시가에 상상력의 옷을 입히며 탄탄한 스토리로 재탄생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서동 왕자와 선화 공주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서동요>는 아직도 한국 사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백제 무왕의 특이한 출생과 신분, 성장 과정, 그리고 치열했던 당시 백제의 왕위계승 투쟁에 대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은 뜨거운 사랑 이야기와 백제 신라 양국의 궁중 이면사를 흥미 있게 극화한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사극에서 왕이 되는 과정은 권력투쟁에서 승리과정으로만 보였지만, <서동요>에서는 권력투쟁의 승리자로서 왕이 아니라 최고 경영자로서 왕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다는 점이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로 꼽힙니다.


 

▲ 사진8 드라마 <서동요> 속 한 장면


 

짧은 시에도 하나의 이야기와 서사가 있음을 확인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인 드라마 <서동요>. 제2의 <서동요>가 될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부럽지 않은 특별한 공주가 있습니다. 바로 바리데기 공주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지는 바리데기 공주.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자신의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길을 떠나고 험한 여정 끝에 부모를 살리고, 원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오구신이 됩니다. 이러한 감동적인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무속 신앙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서사 무가로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뜨거운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우리의 특별한 공주 바리데기는 현대소설의 소재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장이라고 일컫는 소설가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한겨레에 연재되어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중국과 대양을 건너 런던에 정착한 탈북소녀 ‘바리’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반도와 전 세계에 닥쳐 있는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 ‘바리데기’ 신화를 바탕으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21세기 현실을 박진감 있게 녹여냅니다. 이 작품은 전쟁과 국경, 인종과 종교, 이승과 저승,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넘어섭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그늘을 해부하고, 분열되고 상처받은 인간과 영혼들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대서사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 사진9 소설 <바리데기> 표지



우리나라의 특별한 신화이자 캐릭터인 바리데기를 한국을 넘어서 세계의 무대에 세운 <바리데기>. 이는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많은 독자에게 상처와 치유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바리데기가 자신의 상처와 다른 이들의 상처를 끌어안았던 뜨거운 포용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바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고전 시가를 바탕으로 한 우리 콘텐츠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비유를 해보자면, 우리의 조상들이 남긴 비밀 쪽지를 풀어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마음으로 한 글자씩 읽어나가며,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가고 그것을 실제화 시켰을 때 원작의 감동을 다시금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고전작품들은 계속 전승되고 있고, 그 안에는 분명히 그럴만한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주는 감동의 힘, 그 끝을 잡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나야 할 때가 찾아왔습니다. 앞서 살펴 본 여러 콘텐츠가 그 시작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고전과 만나는 의미 있는 콘텐츠들을 통해 과거와 소통하고 내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 사진 출처

- 표지 아거스 필름

- 사진 1,2 국립국악원

- 사진 3~6 아거스 필름

- 사진 7,8 드라마 <서동요> 공식 홈페이지

- 사진 9 창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