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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리메이크, 또 한번 리메이크되다 -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의 리메이크 영화들

by KOCCA 2014. 8. 26.




작가이자 사상가인 롤랑 바르트는 오늘날 ‘저자의 죽음’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즉 순수한 상상력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이야기는 이미 창작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장 잘 증명하는 콘텐츠는 역시 영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 소설, 게임 등 1차 창작물의 리메이크는 이제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 콘텐츠에서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만 살펴보아도 <All You Need is the Kill>을 원작으로 하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나 동명의 만화 원작이 있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등이 있습니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영화 중에서는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그림1 1차 창작, 2차, 3차로 이어지는 리메이크 시장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리메이크 콘텐츠를 또 한 번 리메이크한 작품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녀는 괴로워>가 대표적인 예인데, 주로 1차 창작물보다 2차 창작물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이에 뮤지컬 등의 3차 창작물이 파생되는 경우입니다. 그중에서는 우리나라 내에서만 일차적으로 재창작되는 것을 넘어서, 해외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의 재창작 작업이 완성도 있게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리메이크 작품 중 특히 해외에서 주목한 작품을 살펴보는 데에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그중 대표적으로 만화를 재창작한 영상 콘텐츠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예인 영화 <올드보이>, 소설을 재구성하여 개봉하였고 최근 할리우드로 판권이 넘어간 <파이란>을 살펴보겠습니다. 




▲ 그림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 10주년 기념 재개봉 포스터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대종상영화제 5관왕'의 타이틀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중 가장 잘 알려진 영화, <올드보이>에 붙는 수식어입니다. 평단뿐 아니라 대중의 인기도 계속되어, 최근에는 몇몇 영화관에서 <올드보이> 10주년을 맞아 재개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화 <올드보이>가 일본의 동명 만화(츠치야 가론, 미네키시 노부아키 작)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런데 원작 만화 <올드보이>와 영화 <올드보이>의 줄거리가 사뭇 다르다는 점은 알고 계셨나요?

 



▲ 그림3 만화 <올드보이> 표지                                        그림4 영화 <올드보이> 스틸컷

 


두 콘텐츠는 서사의 중심이 되는 '감금'과 '복수'라는 소재에서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많은 분이 <올드보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실 15년간의 독방 생활은 만화에서 10년이라는 기간으로 나타납니다. 군만두나 7.5층, 최면 등의 키워드가 이야기의 화두가 된다는 점 역시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이외에 감금의 원인이나 오대수(최민식 분)와 이우진(유지태 분)의 관계, 영화의 결말 등은 두 콘텐츠가 별개의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다릅니다. 그 때문에 영화 <올드보이>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반전이 있는 결말을 앞세워 홍보하였으며, 심지어 영화에 출연한 최민식 배우도 연기를 준비하며 원작을 읽었지만, 중간에 읽기를 그만두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처럼 빼놓을 수 없는 반전적 결말은 만화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묘사됩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자신을 가둔 자에게 복수하는 과정들이 사실 이우진에 의해 계산된 또 다른 복수라는 아이러니한 플롯을 따른다면, 만화 <올드보이>는 이보다 섬세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만화에서 주인공 고토가 감금된 이유는 가둔 자인 도지마의 어린 시절 노래에 연민하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라는, 어찌 보면 기괴한 사연으로 설명됩니다. 도지마는 어렸을 때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그런 가둔 자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자기 위로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창시험에서 고토가 도지마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러한 그의 믿음이 깨져버리고, 도지마는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복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두 콘텐츠 모두 감상자의 허를 찌르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만화와 영화라는 각 분야의 특성을 살린 결말이라는 점에서 각자의 특징을 가집니다. 지면과 칸 수를 할애하여 인물의 세세한 감정과 한 인간의 가치관을 그려낼 수 있는 만화와 달리 2시간 이내에 관객의 오감을 자극해야 하는 영화, 특히 이 영화가 리메이크 과정에서 스릴러라는 장르로 노선을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감정 중심적 결말이 아닌 플롯 중심적 결말을 채택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 그림5, 6 한국과 미국의 동명영화 <올드보이>의 포스터

 


한편 작년에는 영화 <올드보이>를 미국에서 각색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가 미 현지에서 개봉했습니다. 만화에서는 10년이었던 주인공의 감금 기간이 한국의 영화에서는 15년, 이번 미국판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20년으로 늘어나 다음 리메이크에서는 주인공이 너무 나이가 든 나머지 복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는데요. 3차 창작물에 해당하는 미국판 <올드보이>는 원전인 만화보다는 한국의 영화 <올드보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몇몇 장면에서는 이전 영화의 오마주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요, 주인공이 문어로 대체된 산낙지를 먹거나 장도리를 휘두르는 액션을 보여주는 것 등등이 그 예입니다.

 


▲ 그림7, 8 한·미 <올드보이>에서 등장하는 장도리 씬.

 


미국판 <올드보이>는 한국의 <올드보이>를 뛰어넘는 반전적 결말을 내세웠지만, 관객들은 이미 한번 영화의 플롯을 접했던 탓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이번 리메이크가 한국의 <올드보이>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으나 관객들에게는 단지 연출만 달라진 같은 영화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리메이크된 영화 <올드보이>는 한미 양국에서 모두 화제가 되었으나 기대 이상의 흥행이나 평가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 그림9 영화 <파이란>의 포스터



평단과 관객에게 호응을 받으며 꾸준히 기억되는 영화 <올드보이>와 달리, <파이란>은 개봉 당시 흥행에서는 그렇게 좋은 성적을 거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콘텐츠로서 갖는 의의는 관객 수로만 따질 것이 아닙니다.

 

영화의 원작은 일본의 유명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 <러브레터>입니다. 영화와 소설은 기본적으로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강재(소설의 경우 고로)는 중국에서 친척을 찾기 위해 한국에 불법이주한 파이란과 위장결혼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결혼에서 둘은 서로의 얼굴조차 본 적 없으나, 파이란은 자신과 결혼해준 강재에게 감사와 사랑의 편지를 계속 보냅니다. 죽은 파이란의 편지는 친구의 죄를 대신하여 선뜻 감옥에 갈 정도로 자기 인생을 포기한 밑바닥 인생 강재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여성을 사랑하는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 그림 10, 11 영화 <파이란>의 스틸컷

 


단순한 신파극이 될 수 있었던 스토리는 원작의 감정선을 살린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새로이 거듭났습니다. <파이란>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해곤 작가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원작 소설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일본에 가서 생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송해성 감독은 파이란의 순수한 마음을 나타내는 전원적인 분위기나 바다, 비디오 등의 모티브를 삽입하여 관객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이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위장결혼을 통한 체류자가 많은 실제 우리나라의 현실도 공감대를 이끌어낸 하나의 요인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더불어,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파이란>에서는 파이란 역에 중국의 유명 여배우 장백지를 캐스팅하였습니다. 즉, 일본의 원작 + 한국의 감독 + 중국의 배우라는, 한·중·일 합작영화가 된 셈입니다. 이것은 <파이란>이 세 나라 모두의 감성을 충족할 만한 멜로영화로 완성되는 데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소들 덕택에 <파이란>은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제' 등 국내 유명 영화제는 물론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관객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2007년 이 영화의 힘을 알아본 할리우드에서 <파이란>의 판권을 산 이후 제작이 계속 지연되다가, 최근 다시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개작되는 <파이란>은 알렉산드르 무어스 감독, 호세 리베라 각색으로 새로이 연출된다고 하는데요. 영화가 제작되는 문화권의 차이에 맞추어 배경은 한국에서 영국으로, 위장 결혼한 중국 여인 파이란은 폭력 단원에 의해 인신매매로 잡혀 온 러시아 여성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미국판 <올드보이>에서 우리는 디테일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효과적인 리메이크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만화 <올드보이>와 <러브레터>를 통해서 리메이크를 위해서는 원작에 대한 치밀한 탐구와 영상 콘텐츠의 특성에 대한 파악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콘텐츠의 판권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로 거래됨에 따라, 단순히 흥행성적이나 평가뿐 아니라 콘텐츠가 만들어진 문화적 환경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도 빠뜨려서는 안 될 사항입니다. 


최근 마블(Marvel) 만화나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추세에서, 앞에서 다룬 두 콘텐츠는 원 콘텐츠의 리메이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시사하는 좋은 선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제작에 들어간 할리우드판 <파이란>을 비롯하여 최근 리메이크 판권이 팔린 <끝까지 간다>, <수상한 그녀> 등의 한국영화가 어떤 식으로 리메이크될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 사진 출처

-표지 쇼이스트

-그림1 직접제작

-그림2 쇼이스트

-그림3 대원씨아이

-그림4 쇼이스트

-그림5 쇼이스트

-그림6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그림7 쇼이스트

-그림8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그림9,10,11 튜브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