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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앨범>

by KOCCA 2013. 8. 22.

 

 

 

세상에는 단순한 수치가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들리고,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것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앞선 리뷰에서는 앨범 판매량을 중심으로 8장의 앨범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런 수치와는 별개로 조금은 특별하게 주목할 만한 앨범들이 있습니다. 어떤 앨범은 뮤지션의 성장 동력으로서, 어떤 앨범은 그룹의 전략적 특징으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의미심장한(?) 앨범들을 좀 살펴볼까 합니다. 단순한 수치가 하지 못한 이야기.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 모두의 전략, 그리고 성공의 반증. 인피니트 H <Fly High>

 

흥행성 있는 아이돌과 음악성 있는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의 협업은 일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피니트 H <Fly High> 역시 그런 트렌드의 정석을 따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트렌드의 의미를 빼고 전략적으로 말해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올라간 보이그룹의 일종의 ‘이벤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음악적으로는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정받은 이들의 특징을 보여주고 팬들로 하여금 자신의 스타의 새로운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런 의도를 깔고 생각해보면 이번 <Fly High>는 인피니트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사진2 인피니트H <Fly High> 앨범 사진

▲영상1 인피니트H <니가 없을 때> 인기가요 무대

 

사실 이 앨범의 음악적 성과를 논하기는 좀 이른 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타이틀곡인 Special Girl의 경우 지루한 감이 이어지는 밋밋한 랩으로 힙합을 즐겨 들어온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5곡으로 이뤄진 앨범은 Victorious Way 한 곡을 제외하곤 국내에 트렌드에 밝고 실력으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운 힙합 뮤지션들의 참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본인들이 색깔을 정확하게 찾지 못한 인피니트 H의 멤버들의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심지어 ‘못해’의 경우 피처링으로 참여한 다이나믹듀오의 개코의 목소리가 노래의 포인트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생겨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두 가지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먼저 앞서 언급한 것만큼 ‘어떤 앨범도 성공한다’라는 인피니트의 보이그룹으로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앨범으로서 주목할 만합니다. 또 하나는 인피니트 H의 자세에 있습니다. 미니 앨범의 다섯 곡을 위해 국내 힙합 트렌드를 수도 없이 분석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뮤지션과 협업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보다 열정적으로 음악을 배우겠다는 자세가 도드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앨범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개봉할 본 영화는 예고편 이상으로 멋진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겠습니다.

 

 

◎ 꾸준한 성장, 드디어 결실을 보다. B1A4 <이게 무슨 일이야>

 

2011년, 그야말로 아이돌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그 시점. B1A4는 사실 특별할 것 없이 데뷔했습니다. 의외의 실력파로 잠시 시선을 끌긴 했지만 그저 그런 아이돌로 여겨지기 쉬웠던 다섯 소년은 보이그룹의 파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이돌의 과포화에 가려져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고수의 등장이라고 할까요? 꾸준히 앨범에 자신들의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며 느리지만 분명하게 성장하던 그들이 드디어 2년 만에 화려한 비상이었습니다. 정직하게 B1A4가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큰 기획사 소속도 아니고, 방송가에 자주 얼굴을 보이는 특급 프로듀서도 없었죠. 특별히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꾸준함이 이뤄낸 성공. 타이틀 ‘이게 무슨 일이야’는 B1A4에게 데뷔 이후 공중파 첫 1위를 가져다준 상징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죠.

 

▲영상2 B1A4 <이게 무슨 일이야> 안무 연습 영상

 

 

B1A4의 성공 요인으로 가장 먼저 논해지는 것은 역시 ‘음악의 주도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기획사, 혹은 프로듀서의 특징에 끌려가는 것에 반해 B1A4의 경우 멤버들의 참여로 꾸준하게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왔죠. 일반적인 아이돌들이 대중들의 귀에 맞춰 혹은 눈에 맞춘 음악을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동안 B1A4는 천천히 자신들의 색깔을 찾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꾸준한 노력의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난 것이 이번 앨범의 타이틀인 ‘이게 무슨 일이야’입니다.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비트와 위트 있는 가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다채로운 특징을 어지럽지 않게 배열한 센스는 그야말로 감동이었죠. 또한 리더 진영이 작곡, 작사하고 바로와 신우가 참여한 Good Love와 같은 경우 식어버린 사랑에 대한 애매한 감정선을 표현해 특유의 수려한 감각이 돋보였습니다.

 

음악적으로 세련된 감각과 특유의 해석력이 빛난 것은 사실이지만, 빠른 가사와 퍼포먼스로 장르적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한계로 하여금 수요층이 한정되는 느낌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계적인 음악에서 탈피, 자신들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죠. B1A4는 자신들의 음악이 단거리 경주가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라면, 그리고 그런 성과를 보여 온 그룹이라면 꾸준하게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장거리 경주는 역시 끝까지 지켜봐야 결과를 알 수 있으니까요.

 

 

◎ 변하지않는 공식, 고전의 가능성. 에이핑크 <Secret Garden>

 

▲사진3 에이핑크 <Secret Garden>컴백 티저 사진

 

이번에 만날 볼 앨범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고전은 영원하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걸그룹 틈에서 한 멤버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에이핑크가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것은 본인들의 것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고 때때의 트렌드와 절묘하게 섞어낸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걸그룹의 정석. S.E.S와 초창기 소녀시대의 루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소녀’들의 부활이었습니다. 아이돌에게 꾸준히 바라왔던 고전적인 캐릭터,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죠.

 

▲영상3 로이킴 정준영의 친한친구, 보이는 라디오 에이핑크 NoNoNo 라이브 영상

 

 

트렌디한 작곡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사동 호랭이가 작곡한 타이틀곡 <NONONO> 역시 그런 이미지에 크게 한 몫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느낌을 강조한 멜로디 라인과 딱 알맞은 곳에서 정량만큼 쓰인 중독성 있는 전자음들과 귀에 감기는 후렴구 등 매력적인 요소들이 대중의 마음을 잡았다고 볼 수 있죠.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을 보면 에이핑크의 음악적 성과나 멤버들의 성장에 특징을 두기보다는 요정돌이라는 컨셉이 앨범의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걸그룹들이 섹시와 청순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헤매는 사이 꾸준히 정석만을, 고전만을 고집해온 성과를 거둔 셈이죠.

 

사실 아이돌은 로망 즉 꿈의 산물입니다. 특히 걸그룹의 경우 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NE1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성공 이후 많은 걸그룹이 외치던 알파걸로 대표되는 나쁜 여자 컨셉이 그저 하나의 흐름이라면, 전 세대를 관통하는 로망은 역시 ‘청순’이죠. 모든 남자의 첫사랑들이 긴 생머리의 청순한 여성이듯, 역시 모든 시대를 관통한 고전적인 로망은 ‘소녀’로부터 출발하죠. 소녀시대가 노선을 변경한 이후로 ‘오빠’를 외치던 청순한 ‘소녀’의 부재로 목말라 있던 가요계에 등장한 ‘에이핑크’는 한우물 파기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에이핑크의 고집이 걸그룹의 다양한 이미지를 양산에도 분명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신인 아이돌은 대부분 다른 그룹의 성공을 답습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역시 고전은 영원한 것 같죠?

 

 

◎ Born to sing, 아이돌 보컬리스트의 혁신. 시아준수 <Incredible>

 

▲사진4 시아준수 앨범 아트

 

준수는 깔끔하게 표현해 노래를 잘합니다. 전, 현직 포함해 모든 아이돌 중에 표현 그대도 정말 노래를 잘하는 보컬리스트죠. 아직 서른도 안 된 그의 목소리에는 관록이 묻어나고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노래를 부르던 그 곡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부를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나이에 비춰볼 때 그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때로 아티스트 본인에게는 큰 고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장르를 찾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준수의 <Incredible>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지고 온 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4 시아준수 <Incredible> 뮤직비디오

 

 

유로 팝 느낌의 타이틀 곡 ‘Incredible’는 독특하면서도 청량한 멜로디와 동시에 탁한 준수 특유의 보이스로 감히 올여름 최고의 댄스곡이라 칭할만합니다. 역동적인 진행 구조는 물론 트렌디한 성격과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동시에 가진 곡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컬은 본인의 파워풀한 목소리를 정확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가졌죠.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서 좋은 곡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활용 능력 부분이 보컬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에 기여한다면,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준수의 보컬로서의 능력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앨범에 이렇다 할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 것 정도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솔로 활동 1년 만에 이 정도 성과라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꾸준히 해온 식상한 발라드 ‘미안’ 이나 ‘가지마’ ‘사랑하나 봐’ 같은 밋밋한 발라드를 포함해 팬들에게 화제가 됐던 ‘이 노래 웃기지’와 같은 트랙은 여전히 아이돌 보컬리스트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타이틀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앨범 완성도에서 조금 아쉽다고 할까요? 하지만 여전히 주어진 곡을 자신의 색깔로 뽑아내는 능력만은 크게 살만합니다. 그 능력의 향방이 기대되는 앨범이었습니다.

 

 

◎ 이질감으로 만들어낸 화려하고 확고한 아이덴티티. 에프엑스 <Pink Tape>

 

그야말로 우주에서 뚝 떨어진 소녀들이었습니다. 새로운 혈액형이라며 ‘NU ABO'로 표류하던 소녀들은 ’피노키오‘와 ’Hot Summer'로 신선한 유로 팝과 본인들의 색깔로 대중보다는 평단의 기대를 모았었죠.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정규 2집 <Pink Tape>의 경우 에프엑스가 헤매며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한국 가요계의 색깔은 사실상 멸종 됐고, 본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죠. 이전 곡들에 남아있던 작위적으로 만들었던 특이함의 대안으로 개별적 곡의 완성도를 높였고, 일정 수준의 장르적 특징도 잊지 않고 삽입했습니다.

 

특히 타이틀 곡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의 경우 전체 앨범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전 노래와는 달리 자신의 사랑을 ’사랑니‘에 비유해 전달하는 간결한 방법을 택한 가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또한 최소한의 사운드와 감각적으로 어둡고 잔잔한 느낌과 동시에 강렬한 감각의 멜로디로 이어지는 흐름은 에프엑스 특유의 감각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트 필름‘이라는 티저의 배경 음악으로 잠시 등장했던 ’미행‘ 역시 소녀들의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와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가사로 풀어내면서 달달한 음과는 달리 다소 집착적인 요소를 보이고 있기도 하죠.

 

▲영상5 에프엑스 <첫 사랑니> 인기가요 무대

 

 

소녀와 여자, 그 애매한 경계 선상의 에프엑스는 차분하지만 강렬하게 자신의 컨셉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록곡 또한 ‘소녀와 여자의 경계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에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는 어쿠스틱 계열의 ‘Goodbye summer’는 성장한 여자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재치 있는 가사로 에프엑스만의 감성을 톡톡 튀게 표현한 ‘여우같은 내 친구’의 경우는 10대 여고생의 감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전의 앨범들이 다소 실험적이고 알 수 없는 사춘기 소녀 같았다면, 이번 앨범은 그야말로 성장했지만 아직 여자라기엔 어색한 그녀들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프엑스의 <Pink Tape>의 경우 같은 소속사 가수인 샤이니의 <The Misconceptions Of us>로 묶이는 3집과 전반적인 맥락을 같이 이해하면 조금 더 쉬울 듯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에프엑스만의 감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는 샤이니의 앨범과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하면서도 대중들의 외면을 받지 않는 음악, 그것이 음악적으로 성공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2집을 보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뚜렷한 색을 보여주는 앨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사진출처

- 사진1,2,3,4  각 가수별 앨범 자켓

- 영상1-5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