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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음악 패션 공연

[노래를 읽다] 두 번째 이야기 – 가을방학 <인기 있는 남자애>

by KOCCA 2013. 4. 22.

 

[노래를 읽다] 두 번째 이야기

–가을방학 <인기 있는 남자애>
 

 
이 기사는 ‘노래를 읽다’라는 큰제목으로 가요나 팝송 중 가사에 서사가 있거나 서사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노래를 뽑아 그 가사를 곱씹어 보는 형식으로 작성됩니다. 지속적으로 연재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잠시 눈을 감고 초등학교 시절로 여행을 떠나봅시다. 줄 맞춰 서있는 책상과 의자들이 보입니다. 교실의 앞 쪽에는 청색 칠판이 걸려있습니다. 칠판걸이에는 색색의 분필과 칠판지우개가 보입니다. 교실 안은 웅성웅성 반 아이들이 떠들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인 모양입니다. 장난 끼 가득한 얼굴의 남자 아이들은 교실이 운동장인양 뛰어다니고 있고, 여자아이들은 얌전히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창문으로 비춰지는 햇살은 따사롭습니다.

 


 

 국내 초등학교 교실 풍경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언제나 아련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기억의 농도는 연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해갑니다. 여기 우리의 학창시절 기억을 자극하는 노래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가을방학의 <인기 있는 남자애>입니다. 가을방학의 1집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가사에 나타나는 서사구조가 매우 뚜렷합니다. 게다가 그 스토리 또한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럼 먼저 가사를 살펴봅시다.
 

 인기 있는 남자애 - 가을방학
 
 
 
어렸을 때 넌 재미있고 시끄러운 아이였고,
남자애들 사이에선 꽤 인기가 있었지.
하지만 한 번도 반장은 해본 적이 없었어.
여자애들이 널 찍어 주지 않았으니까.
 
하루는 녀석들이랑 뛰어다니고 놀다가,
실수로 네 가방을 ‘퍽!’ 하고 밟아 버렸지.
꽉 찬 가방 속엔 교과서, 공책 등과 함께,
뜯지 않은 우유팩 하나가 들어 있었지.
 
넌 오직 남자애들한테만 인기 있는 남자애였고,
우유팩이 터졌을 때 걔들은 그저 멍청히 보고만 있었지.
재빨리 책들부터 꺼내서 털고 닦고 가방까지 씻어다 준 건,
그 전엔 단 한 마디도 너랑 해본 적 없었던 한 여자애였어.
 
그 앤 작고 조용하고 안경을 낀 아이였지,
걔가 널 왜 도와줬는지 넌 잘 모르겠지.
혹시 널 짝사랑한 걸까? 그건 아닐 거야 넌,
남자애들한테만 인기 있었으니까.
 
넌 오직 남자애들한테만 인기 있는 남자애였고,
우유팩이 터졌을 때 걔들은 죄다 멍청히 보고만 있었지.
어찌할 줄 모르던 널 도와준 그 애한테 고맙단 인사도 못한 너.
그 아이의 이름도 잊어버렸다며 넌 지금 뭐가 좋아서 웃고 있니.

 

  
 
  일단 <인기 있는 남자애>라는 제목만 본다면 아마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애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가사의 첫 구절에서 이 남자애는 남자애들에게만 인기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여자애들이 찍어주지 않아서 한 번도 반장을 해본적도 없을 정도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남자애들이 교실에서 뛰어다니고 놀다가 그 남자애 가방을 밟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방 안에는 뜯지 않은 우유팩이 들어 있었고, 그 남자애의 가방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들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을 때 반에서 안경을 끼고, 조용한 한 여자애가 뜬금없이 그 남자애의 가방을 털고, 닦고, 씻어줍니다.

 

 
 

 <인기 있는 남자애>가 수록된 가을방학 1집 앨범표지
 
 

  그 여자애는 이 남자애를 좋아했던 것일까요? 가사 속에서는 아닐 거라고 말하면서 말도 안 되는 재미있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이유인 즉, 그 남자애는 남자애들 사이에서만 인기 있는 남자애였기 때문에 그 여자애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자가 바로 그 가방을 털고, 닦고, 씻어준 여자애입니다. 그 아이는 남모르게 장난꾸러기였던 남자애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어릴 적 풋사랑이 그렇듯 표현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유팩 사건이 터지자 결국은 그 좋아했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 남자애를 도와주고 맙니다.

 

 

 

 왼쪽부터 가을방학의 계피(보컬), 정바비(작사, 작곡)

 

  가사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그 아이의 이름도 잊어버렸다며, 넌 지금 뭐가 좋아서 웃고 있니.”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통해서 노래가사의 구조가 액자구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지만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여자애가 어른이 되고 나간 동창회 자리에서 그 남자애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동창회 자리에서 남자애는 우유팩사건을 말하면서 그때 자신의 가방을 씻어줬던 여자애가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웃는 모습을 보며, 여자애는 속으로 야속하기도 하지만, 아마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살짝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요?

 

사진출처
사진1 네이버카페 눈사람클럽
사진2 스포츠동아 기사 사진
사진3 스포츠월드 기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