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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행복하게 그린 그림은 보는 이도 행복하게 하죠!

by KOCCA 2012. 12. 7.

 

 

이 름 : 천소 (이정현)

주요 경력
2004년 ~ 현재 홍대 천소의 스터디[천소와 스터디] 및 천소네(http://chunso.net/) 운영.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인업체 ‘바이러스 헤드’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근무하며 다양한 일러스트, 캐릭터 디자인,

웹디자인, 플래시 애니메이션, CI, BI, 샵 디자인 등 그림과 관련된 폭넓은 작업을 진행함
주요 저서로는 [포토샵일러스트, 천소네 작업실], [천재소녀의 특별한 그리기 훈련법! 그리고

상상하다], [그림쟁이 천소네 작업실, 색을 훔치다], [누가 그려도 예쁜 천소의 일러스트 쉽게

배우기] 등 다수
만화/애니메이션 전공

 

 

그림으로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며 여가를 보낸다는 천소(이정현) 작가.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누구보다 많이 연습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지만 하지만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학원 10년을 다닌 사람보다 어린아이의 그림이 더 훌륭하다고 믿는 낭만 소녀(?) 천소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을 그리는 행복한 작가와 장난감가게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후 들면서 오락가락 하더니 저녁 무렵이 되자 땅거미가 빠르게 내려앉았고 홍대역 주변 거리는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노는 날이네요.” 금요일 저녁에 찾아간 천소네 장난감가게에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장난감들이 천소 작가처럼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2004년부터 홍대 [천소네 작업실]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천소와 스터디’를 무료로 진행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함께 교류하며 ‘더 새로운 그림’, ‘더 재미있는 그림’을 연구하는 한편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다.

 

▲ 행복하게 그린 그림은 보는 이도 행복하게 한다고 말하는 천소(이정현) 작가


 “월요일마다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화요일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죠. 수요일과 목요일은 같이 일하는 두 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직원들이 와서 일을 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1시부터 9시까지 가게를 열고 있어요.” 일요일에도 그림을 그린다는 천소 작가. 하지만 그녀는 1년 정도 혼자서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며 그림을 그리는 일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정말 많이 그렸죠. 벽에 하도 그려서 할머니께서 달력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벽에도 그림을 많이 그렸거든요.” 그녀는 1997년에 첫 동화책을 펴낸 뒤로 [10살, 생각을 시작하는 나이], [나의 행복이야기], [쉿, 엄마 주무셔], [괴물도 하는 민주주의] 등의 동화책을 비롯해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CS시리즈] 등의 일러스트 작업, 그 외에도 유아, 아동, 성인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 왔다.


“디자인 회사에서 7년 정도 일하면서 디자인 실장까지 올라가니까 나중에 들어온 저보다 나이 많은 후배들을 가르쳐야 해서 부담이 됐어요. 좀 더 배울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찾다가 이곳에 가게를 열면서 지금까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네요.” 하루 종일 혼자서 일하다 보니 너무 심심해서 사무실을 구해 놓고 일하면서 하나씩 모은 장난감들이 가게를 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모아졌다. 주변에서 지인들이 가게를 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평일에 잠깐 공개했다가 이제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열게 됐다고 그녀는 말한다.

 

 

▲ 천소 작가의 주요 저서 : [포토샵일러스트, 천소네 작업실], [천재소녀의 특별한 그리기 훈련법! 그리고 상상하다], [그림쟁이 천소네 작업실, 색을 훔치다], [누가 그려도 예쁜 천소의 일러스트 쉽게 배우기] 등이 다수의 작품이 있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연습벌레
그녀가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고 지낼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는 시간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녀는 엄청난 그림에 관한한 지금도 한 달에 연습장 한두 권은 빼곡하게 채울 만큼 연습벌레로 통하고 있었다. “그림이요? 그냥 그려요. 특별히 생각하고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주제를 정해 놓고 생각나는 것들을 이것저것 그리고 있어요. 최근에는 시리즈물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물고기를 소재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주로 컴퓨터로 작업을 하지만 수작업으로 그린 원화 그림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일 년 내내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떤 의뢰를 받고 새롭게 그리기 보다는 그려둔 그림을 소재로 다양한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요즘에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타이포 책을 쓰고 있어요. 가끔 책 표지의 글씨도 제가 직접 써주기도 하는데, 타이포와 관련된 책이 없어서 시작하게 됐죠.”


그녀의 닉네임은 천소(천재소녀)다. 인터넷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멋진 아이디어를 지어서 서로 부르고 했는데, 그때 회사 사장님이 청소도 잘하고 시안도 빨리 잘 만든다고 해서 천재소녀의 줄임말로 ‘천소’라고 부르면서 주변에서 그렇게 불러 닉네임이 되었다고 한다. “제겐 다함이 없다, 바닥이 없다는 뜻을 가진 ‘무진(無盡)’이라는 멋진 호[號]도 있어요. 낙관도 있어요. 나름 가챌(gachel)이란 멋진 아이디도 있었는데 거래처에서도 천소라고 부르게 돼서 이제는 바꾸고 싶어도 힘드네요.”


천소 작가는 틀에 박힌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잘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데, 나라마다 그림체가 있어서 그림을 많이 그리다 보면 어떤 색깔의 그림체를 그리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예술이라고 생각하죠. 가끔 제 그림을 보고 뭘 그렸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 나름대로 주제를 정해 놓고 그리고 있는데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 때도 있죠. 아무튼 늘 그리고 있어요.”


그녀는 요즘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느낌의 유치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어둡게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조금 더 밝은 느낌으로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하라고 주문하고 있어요. ‘작가’라는 단어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봤는데, 작가라면 자기만의 철학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취미로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있지만 그 사람을 작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 가치에 대한 착각(원화)

 

▲ 게으름에 숨은 이(원화)                       ▲ 꿈에 대한 착각(원화)

 


일러스트가 아닌 다른 길은 없었을까?
자기만의 철학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그림으로 뭔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작가라고 생각한다는 천소 작가는 좋은 그리만 봐서는 결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말 좋은 책도 사고 별로인 책도 사서 봅니다. 저는 좋은 그림이 있는 책도 사지만 딱 봐도 정말 별로인 그림책도 사서 봐요. 왜 그렇게 못 그렸는지 궁금해서요. 못 그린 그림을 보고 왜 못 그렸는지 설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안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이 항상 잘 그린 것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대학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있는 점이 궁금했다. 그녀는 같은 사람을 여러 번 그리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동화책에 나오는 일러스트도 가능하면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같은 사람을 그리더라도 정면 얼굴만 그리진 않아요. 하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똑같은 그림을 많이 그려야 하죠.”

다른 길은 생각해 보지 않았냐고 묻자 그녀는 게임도 좋아하지 않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잘 그린 그림을 그리려면 차라리 사진을 찍어서 리터칭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저는 마카와 색연필만을 사용해서 원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데다 그림에 지나치게 색을 많이 쓰지 않으려고 하죠.”


그녀는 색을 잘 쓰려면 먼저 컨셉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터디를 하면 정해진 컨셉에 따라 5가지나 6가지로 색깔을 정해 놓고 칠해 보는 연습을 시켜 봅니다. 색을 잘 못 쓰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색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색을 정해 놓고 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장은 빨간색 위주로 써보고 다음 장은 초록색이나 파란색만으로 칠해보는 식의 색을 쓰는 연습도 꼭 필요합니다.”

천소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기자도 사람의 얼굴을 칠할 때는 살색(?)만을 고집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들 중에는 사람은 살색으로, 고양이는 고양이 색으로 칠하곤 하죠. 컨셉을 로맨틱으로 정했다면 하늘도 핑크나 에메랄드 색으로 칠할 수 있어요. 보통 1~2년 정도 스터디를 해야 색을 아무렇게나 쓰는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습니다.”

 

 

▲ 아이디어(원화)                                           ▲ 설레임(원화)
 

▲ 피노키오(원화)


 

마감은 미루더라도 스터디는 꼭 하고 있어요!
천소 작가는 책을 낼 때가 좋아서 지금도 책과 관련된 작업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설득을 해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책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를 주로 그리고 있어서 출판기획팀과 디자인팀 사람들을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터디를 할 때는 그림만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나와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켜 봅니다. 말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일러스트 중에는 자기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고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면 잘 말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노하우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필요한 항목입니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천소네 스터디는 누구나 환영이다. 그녀가 8년 넘게 무료 스터디를 해오는 것은 자기 그림을 더 많이 그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원에서 그림을 가르치면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고 쓴 소리를 하기

쉽지 않아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시간도 많이 주어지지 않죠. 많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마감을 미루더라도 월요일에 하는 스터디는 꼭 열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재밌거든요. 같이 그림을 그리면 다른 사람의 그림도 볼 수 있는 점도 좋구요.”

 

▲ 천소(이정현) 작가의 작업실이 함께 있는 홍대역 부근의 천소네 장난감 가게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천소(이정현) 작가는 그때마다 계속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고 주문한다. “프리랜서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보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클라이언트)이 주문하는 것을 마음에 들도록 그릴 수도 있어야 하죠. 또, 자기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달리 대중을 설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그림을 자신이 좋아야할 수 있어야 하죠.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거든요.”


주말이 되어도 심심하다면 천소네 장난감가게에 들려보자. 수많은 장난감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천소네 스터디에도 문을 두드려 보자. 스파르타를 연상시키는 혹독한 연습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글 _ 박경수 기자 twinkak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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