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좀 더 창의적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

by KOCCA 2012. 10. 18.

이 름 : 김 진 만

주요 경력
현재 Stopmotion Animation Studio(http://b01ani.com/) 대표 겸 감독
Noodle Fish [오목어, 2012] : 인디애니페스트2012 대상(인디의 별), 관객상(축제의 별) 등

다수 영화제 초청 및 수상
Indra’s Net [그 믈, 2009]
Soeyoun_The substance of Earth [소이연, 2007]
Bologee Story [볼록이 이야기, 2003]

 


전주국제영화제 단편부문 대상, 대구단편영화제 대상 등 국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으로 관심을 모아 온 김진만 감독. 그의 새로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오목어(Noodle Fish)>가 화제다. 이 작품은 지난 9월에 끝난 제8회 인디애니페스트(2012)에서도 ‘인디의 별(대상)’과 ‘축제의 별(관객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입증 받았다. 국수용 소면을 쌓아 놓고 한 장면씩 눌러서 만들었다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오목어> 제작 과정과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의 열정을 만나 보자.

 

조소과 학생이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다들 그렇듯이 저도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애니메이션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기 때문에 그냥 조각가로 살고 싶었죠. 하지만 정적인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진만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전공인 조소 외에 시각디자인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해 애니메이션을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술대학에서 디자인과 학생들은 매킨토시를 들고 다니는 등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지만 조소과 학생들은 석고를 주로 만지면서 손으로 하는 일이 많아서 컴퓨터를 잘하지 못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컴퓨터를 잘 쓰진 못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스톱모션(Stopmotion) 애니메이션이 자신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국수용 소면을 이용해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오목어>로

단편 애니메이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진만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업실.

 

조소를 전공했기 때문에 만드는 손재주는 있으니까 시나리오에 따라 이야기를 만들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클레이메이션 같은 경우도 뼈대가 있고 움직이는 기술이 복잡해서 혼자서 만들기에는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주로 연출과 관련된 내용을 배우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다양한 기법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한다. 그는 서점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에게 맞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러다 핀 스크린 기법이란 것을 발견하게 됐다.


“핀 스크린 기법이란 건 핀을 여러 겹으로 쌓아 놓고 움직여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법이었는데, 자세한 설명은 없고 방법만 간단하게 나와 있었어요. 그걸 보고 국수를 쌓아서 눌러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수를 이용해 튀어나오고 들어가는 효과를 주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는 누르면 오목해지고 반대쪽에서 누르면 볼록해지는 국수를 이용해 시각디자인과에서 복수 전공을 하는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완성된 왕따 이야기가 바로 볼록한 마을에 오목한 아이가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볼록이 이야기>였다. 이 작품으로 시각디자인과 영상제에서 연출상을 받고, SICAF에서 관객상과 신인감독상을 받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 Indra’s Net [그 믈, 2009]. 상처는 마음의 벽을 쌓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한다.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더 인간적일 수 없다. 시끄러운 세상도 때론 나를 따뜻하게 한다.

 

▲ Soeyoun_The substance of Earth [소이연, 2007]. 모든 생명 존재는 나름의 이유(소이연 所以然)를 가지고 있다. 자연의 개체 수 피라미드는 인구증가와 환경파괴로 인해 구조가 왜곡되어 간다. 먹이 피라미드의 역행을 통해 파괴된 자연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표현하고자 했다.

 

▲ Bologee Story [볼록이 이야기, 2003]. 오목별에 태어난 볼록이가 있었다(볼록이는 볼록한 아이를 의미한다). 그는 오목별 반대편에 있는 볼록별에 가고자 했다. 마침내 그는 그곳에 도착했으나 오목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갈림길에서
“첫 작품으로 이런 저런 상을 받았지만 애니메이션을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조소를 전공해서 개인 작업을 할 것인지,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갈 것인지 등 작품활동 외에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죠.”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시나리오가 계속 떠오르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갈증도 계속됐다. 그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대학원 시절에 만든 <소이연>이란 작품으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이 작품은 국수용 소면 대신 나무뿌리를 이용해 오브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죠. 쉽지는 않았지만 2D나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스톱모션은 사진을 찍어서 이어붙이는 것이 전부라서 제게 잘 맞았어요.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하는데다 새로운 컴퓨터 기법을 배우는 대신 조소를 배웠기 때문에 손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죠. 또, 혼자서 작업하는 스타일이 개인적으로도 잘 맞아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대학시절에 하고 싶은 것 하나는 해보자는 생각에서 만들었던 것이 <볼록이 이야기>였다면, <소이연>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김진만 감독의 작업스타일을 보면,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두고 하나의 샷을 찍을 때는 특별히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큰 흐름만 유지하고 순간순간 감정을 이입해서 찍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왔다. “개인적으로는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고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살리는 방법을 좋아하죠. 물론 큰 틀은 지켜야 되죠.”


한편, <소이연>의 뒤이어 만든 <그 믈>은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2년에 한 편 정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생각과 다양한 형태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생각을 실천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이 새롭게 준비한 <오목어> 제작은 총 1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다.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작업으로 애니메이션을 촬영하는 데만도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 2012 인디애니페스트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김진만 감독의 <오목어> 포스터

 

어른이 되려면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10년 동안 스톱모션을 만들다 보니 이제는 국수를 가지고 다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작업이 힘들게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소면을 눌러서 만드는 것이 힘들지 않았어요. 다만 국수를 이용해 스톱모션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모든 작업방식을 제 스스로 알아내고 찾아야 했죠.”


김 감독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작업방식을 고민했다고 한다. “내용에 큰 발전이 없거나 특별한 뭔가가 없으면 형식적인 면에서라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차별성을 주기 힘들지 않을까요?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스톱모션은 아이디어가 중요하고 참을성 있게 작업하는 것이 필요하죠. 국수를 평평하게 한다거나 조명을 설치하는 방법 등 애니메이션을 생각한데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기법들을 고민해야 하는 점이 쉽지 않았지만 생각한대로 찍어서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죠.”


그가 새로운 작품을 위해 만든 국수용 소면은 가로 2m에 높이는 50cm였다. 1천명에게 국수를 삶아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인 셈이다. 그는 삼각대로 고정한 카메라는 위아래로만 움직이고 쌓아 놓은 소면 틀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한 컷씩 사진을 찍었다. 특히 물고기가 헤엄치는 장면을 찍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어서 몇 달을 기다렸다가 노하우가 쌓이면 찍거나 정 어려우면 새로운 장면을 찍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이어 붙여나갔다.

 

▲ 1년 반 동안 한땀 한땀 국수용 소면을 눌러서 만든 9분 52초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오목어>의 제작과정 모습. 국수용 소면을 가로 180cm, 세로 50cm 크기로 쌓아 놓고 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움직이는 픽실레이션 및 누들-핀 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운명은 작가가 정해놓은 스토리보드 대로 움직인다는 생각과 그 스토리는 무한 반복된다는 가정아래 <오목어>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그는 국수로 만든 세상에서 그 운명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캐릭터는 우리 인간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무거울 수도 있는 철학적 주제를 국수라는 소재의 독특한 질감과 캐릭터들의 재치 있는 대사와 움직임으로 흥미 있게 풀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2 인디애니페스트 <오목어>로 대상과 관객상을 거머쥐었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유머 코드가 먹혔다고 말했다. “보통 대상 작품들은 진지한 내용들이 많아요. 사실 애니메이션으로 웃기는 것은 쉽지 않죠. 너무 웃기려고 작업하면 상업적으로 보여서 가벼워 보일 수 수 있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수를 움직이면서 찍었던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대상을 받을 것 같고, 웃기는 코믹요소를 넣었던 것이 관객상을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오목어>는 물 밖의 세상을 동경한 오목어의 좌충우돌 세상 밖을 향한 탈출기를 코믹하게 그려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새로운 작품을 향한 열정은 계속된다!
김 감독은 작품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고 한다. 이번 작품도 영화제에서 많이 상영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오목어>를 만들면서 그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애니메이션 마지막 부분에서 물고기가 점프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구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국수가 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습기로 주변을 습하게 해주기도 하고, 에어컨을 틀어서 건조하게 하는 등 습도에 변화를 주니까 국수의 모양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했어요. 또, 국수를 이어 붙여야 하는데, 국수용 본드라는 것은 없잖아요? 그래서 몇 가지 재료를 섞어서 국수를 붙이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죠.”


그는 카메라나 조명에 대한 공부는 물론 서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작품을 하려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이런 노력들이 나중에 작품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해보자는 생각을 굳힌 뒤에는 각종 영화제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영화제를 돌아보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는 것이죠. 특별한 노하우나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자기가 만드는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작품에 올인을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성실하게 작품을 만들다보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듯이 말이죠.”

 

▲ 시간과 운명을 주제로 퍼펫을 이용한 새로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김진만 감독

 

그는 앞으로 시간과 운명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 동안 인형을 움직여서 만드는 것은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개구리 인형을 소재로 퍼펫(PUPPET) 애니메이션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도 크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남는 시간은 모두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쓰고 있죠.”

그의 스튜디오 이름은 ‘B01’이다. 지하에서 작업실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가장 밑바닥에서 헝그리 정신을 잃지 않고 순수하게 작품을 시작했던 마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짓게 됐다고 한다. 새로운 작품을 향한 그의 열정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 글 _ 박경수 기자 twinkaka@naver.com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