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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한국 드라마의 공통분모, 사랑학개론?

by KOCCA 2011. 5. 27.


사랑, 사랑, 사랑. 국문학도의 입장에서 보기에, '사랑'이라는 말은 꽤나 어감이 좋은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런 음운론적 설명은 제쳐두고, 사랑이라는 존재 자체만 바라봅시다. 대체 사랑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되새길수록 그 존재의 본질이 모호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정의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드라마에서는 마치 '사랑학개론'이라는 전공 수업을 들려주듯이,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드라마의 공통분모, 사랑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들이 존재했을까요?





    기이한 스토리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왼쪽 상단부터 차례대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바람의 화원> <제중원> <하늘이시여>
<구미호외전> <성균관스캔들> <황진이> <동이> <선덕여왕>



먼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일어나기 힘들 법한 기이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위에 나열된 아홉 작품들은 흡사 고전소설의 하위유형인 '전기소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이하고 묘한 이야기를 그렸다는 공통점이 존재하죠. 또한 우리의 전기소설이 그랬듯, 사랑이야기입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구미호외전>의 경우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이시여>에서는 '출생의 비밀'과 얽힌 가슴아픈 사랑이 등장합니다. 나머지 작품들의 경우, 시간적 배경이 현대가 아닌 때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이 작품들 모두 기기묘묘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현대를 배경으로 하지도 않고, 구미호라는 새로운 종이 등장해야 현실에서 나타날 법한 이런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을까요? 여기서 앞서 잠시 언급되었던 전기소설을 다시 끌어와 봅시다. 전기소설의 주요 담당층은 6두품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최치원으로 대표되는 6두품들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6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때문에 현실과 불화했던 계층입니다. 이 바탕에서 나오게 된 것이 전기소설이죠. 현실에서 한계를 느낀 6두품들의 현실도피, 그 도피처가 전기소설이었던 것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어떠한 판타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이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요? 시청자들은 기이한 스토리 속 주인공들에 자신을 대입해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전문직 드라마에도 사랑은 있다?

왼쪽 상단부터 차례대로, <떼루아> <시티홀> <싸인> <외과의사 봉달희> <제빵왕 김탁구>
<드림하이> <파스타> <베토벤 바이러스> <뉴하트>



와인을 다루는 소믈리에, 시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관, 외과의사, 제빵사, 연예인, 셰프, 마에스트로의
세계에서도 사랑은 존재합니다. 물론 사람사는 동네에 사랑 없는 동네가 있겠느냐만은, 2000년대 이전에는 이런전문직 종사자들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가 흔치 않았기에 특기할만 합니다.
 이 작품들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남자 주인공이 참 무뚝뚝한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파스타>의 최현욱 셰프,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싸인>의 윤지훈과 같은 남자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일에는 참 철저한 사람들이지만, 사랑은 거 참 '멋대가리 없게' 합니다. 그래도 이런 냉혈한 같던 남자주인공들의 대쪽같은 성격이 드라마의 말미에 와서는 여자주인공들에 의해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리니, 이 맛에 이런 작품들을 즐기게 되는 거겠죠?





    불륜도 사랑일까?


왼쪽 상단부터 차례대로, <두 아내> <아내의 유혹> <조강지처 클럽>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천사의 유혹> <밥 줘>

 

 간통죄의 폐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불륜은 분명 머리로는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사실 저는 머리로도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자극적인 음식에 더 구미가 당기듯, 보다 자극적인 소재에 끌리는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불륜이라는 꽤나 가슴아픈 소재는 "식상하다"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륜 드라마들에 대해 아쉬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상대방의 불륜을 알게 된 반려자는 처절한 복수를 계획하고, 무서울 정도로 확실하게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시청할수록, '내가 대체 왜 이런 행동을 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그리고 또 하나, 남편이 바람을 핀 경우 복수를 하던 아내가 결국 남편을 용서하고, 마지막에 '급' 해피엔딩으로 종결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아직 미혼이라서일까요?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죽일 듯 행동하다가, 울면서 용서하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내인 여주인공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 시청했을 때는 화가 나기도 하지요.

앞으로 불륜 소재 드라마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녀는 신데렐라!

왼쪽부터 차례대로,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꽃보다 남자>



불륜과 함께 그 오랜 명맥을 지켜온 소재가 바로 '신데렐라 스토리'입니다. 기본적으로 '돈이 아주 많은' 남자 주인공과 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간혹, 반대로 여자주인공이 부자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와 시청률에서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절대로 먹혀 들어가지 않는 드라마입니다.
"이런 건 절대 현실에서 있을 수 없어!" 라고 외치면서도 어느새 방송시간이 되면 TV앞에 앉아 있게 되고, 재방송도 모자라 몇 번이고 돌려보는 것을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의 인기는 가히 대단합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다'라고 설정된 여주인공들은 분명 굉장히 예쁘고, 매력적이니 저를 비롯한 여성 시청자분들은 이제 꿈에서 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 가족의 사랑법

왼쪽 상단부터 차례대로, <소문난 칠공주> <솔약국집 아들들> <수상한 삼형제> <조강지처 클럽>



이 유형의 드라마들은 형제, 자매, 남매를 위시한 대가족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모 밑에서 나와서 한 집에서 자란 자식들이라고 해도, 그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저만 해도 제 남동생 둘과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들은 형제, 자매 간의 다양한 사랑 방식을 보여주는 데 묘미가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구박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가족, 그들은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검은 손들도 막을 수 없는 것, 사랑

왼쪽 상단부터 차례대로, <아테나:전쟁의 여신> <자이언트> <쩐의 전쟁>
<도망자 플랜B> <아이리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마지막으로 무언가 검은 세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드라마들을 살펴볼까요? 앞서 등장한 작품들과는 다르게,이 드라마 속에서 사랑을 하는 주인공들은 사별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각자가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한 세력 다툼 속에서 분명 누군가는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아련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이 작품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 중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사람 제각각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사랑도 제각각입니다. 드라마는 우리시대의 사랑상을 투영해주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사랑학개론'이라는 전공수업을 여러 교수님들이 팀티칭해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험의 답안지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요? 시청자라는 명찰을 달고 TV앞에 앉은 학생들의 답안 또한 제각각일 것입니다.물론 무언가 공부하기 위해 드라마를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업 후에 강의평가가 있듯 드라마 시청 후 건강한 피드백이 오고간다면 한국 드라마 시장은 더욱 성장하지 않을까요? :-)



글 ⓒ 한국콘텐츠진흥원 블로그기자단 / 배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