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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

한국형 세계만화의 새로운 이름 ‘K-Comics’

by KOCCA 2012. 5. 31.

한국형 세계만화의 새로운 이름 ‘K-Comics’

 

  

 

박 석 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장)

 

  

 

‘한국형 세계만화론’의 등장 배경

 

지난해 6월 국회에서는 ‘한국형 디지털만화의 글로벌 유통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만화가 이현세(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는 한국만화의 3대 트랜드를 ‘만화원작산업 활성, 교양학습만화시장 확대, 디지털만화와 웹툰 붐’으로 정리하고 이들이 모두 해외 시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해외 만화계가 ‘자국의 문화적 특수성과 경쟁력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점령’한 것처럼 ‘한국의 만화 역시 우리만의 특수성을 재정비해서 한국형 세계만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는 대학교육과 새로운 창작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예비만화가들이 한국만화의 글로벌시대를 열고 세계만화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외작가와의 공동작업, 해외 만화제작 및 유통시스템과의 합작’을 제안했다.
이어 11월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디지털시대의 만화한류 전략 세미나-100년 사는 한류 콘텐츠 만화가 만들겠습니다’가 열렸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청강대학 교수)는 코믹솔로지 등의 만화어플리케이션 기술이 등장하면서 미국의 슈퍼히어로만화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왕에 진행되고 있는 한국만화의 세계진출 사례와 전 세계적 한류 열풍을 조합하면 한국만화의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화계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인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 국고 28억을 마련하여 3개항으로 구성된 ‘우수만화 글로벌 프로젝트 지원’ 사업을 신설했다. 이현세의 제안은 ‘글로벌 코믹 프로듀싱’ 사업이 됐고 박인하의 주장은 ‘한류만화 제작지원’ ‘글로벌 장편제작지원’ 사업이 됐다. 2011년 정부 만화정책의 대표 키워드가 ‘디지털’이었다면 2012년은 ‘글로벌’이 된 것이다.

 

 

한국만화의 해외진출 사례

 

한국만화 또는 한국인이 그린 만화가 해외에 소개된 것은 언제일까. 1909년 9월 15일 미국 교민들에 의해 센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에 두 편의 만화가 게재됐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일본인의 시각으로 그린 만화와 한국인의 시각으로 그린 만화가 비교 게재됐다. 교민들을 위해 한국어로 발행된 신문이었지만 미국 현지에서 인쇄되었으니 한국만화의 해외 진출 효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1)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에 게재된 이도영의 만화를 한국 최초의 만화로 평가하고 있으니 만화의 발명과 해외진출이 같은 해에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한국만화가의 해외시장 진출은 그 후로 반백년이 넘어서야 본격화 된다.

 

‘라이파이’ 시리즈로 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산호는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찰튼코믹스의 전속작가로 ‘샤이언키드’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직접 아이언호스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1) 재미있는 것은 두 작품 모두 ‘만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보는 현재적 의미의 만화적 표현물을 삽화(揷畵)라 명했고, 신한민보는 해화(諧畵)라 명했다. 이후로도 만화적인 표현물은 그림이야기, 철필사진, 다음엇지 등으로 불리다가 1920년 이후부터 일본식 한자조어인 ‘漫畵’라는 명칭으로 일반화 됐다. ‘漫畵’라 적고 한국은 만화, 일본은 망가, 중국은 만후아라고 읽고 있다.

 

당시 발표한 작품 중 ‘뱀파이렐라’의 경우는 17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전적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0여 년이 흐른 뒤 정통사극에 능했던 방학기의 ‘임꺽정’이 ‘이조수호전’이라는 제목으로 1985년 일본에 수출되고 이현세의 ‘활’ 등이 발표되면서 조금씩 구체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1991년 프랑스앙굴렘국제만화축제로 부터였다. 일본이 이 축제에 참가하면서부터 자국만화의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는 한편, 세계만화의 다양성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일본 고단샤 출판사는 1993년 모닝이라는 잡지를 통해 순정만화가 황미나의 ‘윤희’, 오세호의 ‘낚시’ 등을 연재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한국만화계는 주간만화잡지를 중심으로 나름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시장의 극대화를 위한 해외진출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즉 외국의 관심에 의해 선택받는 형식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와 관점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해갔다. 이로인해 현지 소비경향과는 무관하게 국내 인기를 기준으로 선택됐던 수출작품들이 제거되고 현지사정에 적합한 작품을 전략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수출형 작품군의 형식 분류가 이뤄졌다. 만화소비 시장이 큰 일본과 동아시아, 미국과 북남미, 프랑스와 유럽 순으로 시장이 나뉘었고 해당 시장이 좋아하는 작품 형식과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작가진들이 구분됐다.

 

 

일본, 미국, 유럽의 경우

 

가장 먼저 한국만화에 관심을 보였던 일본만화시장은 한국만화계에도 매력적인 개척지였다. 한국의 대명종 출판사는 2001년 일본에 타이거북스라는 현지법인을 설립하여 허영만의 ‘세일즈맨’, 김혜린의 ‘비천무’ 등을 발행됐다.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일본만화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단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사정에 적합한 형식과 내용으로 현지 편집진과의 사전 기획에 하에 새롭게 창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한국만화의 일본 진출은 넓고 깊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만화라기보다는 ‘한국의 만화작가가 일본만화를 그리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으나 윤인완 양경일의 ‘신암행어사’, 임달영 박성우의 ‘흑신’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박무직, 고진호, 박중기 등 다수의 만화가들이 일본시장에 안착했고 한국만화가들의 일본 진출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산호가 선도했던 미국만화시장 진출 역시 현지화 된 작품창작부터 단순 번역 수출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짐 리, 프랭크 조, 재 리 등 재미교포 출신 만화가들이 주류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단순 번역 수출된 작품들이 일본만화 또는 이를 중심으로 한 BW(흑백)만화로 이해되며 주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단, 산호와 같은 방식으로 무협만화로 유명했던 이재학이 오리엔털 액션히어로를 표방한 만화 ‘추더리퍼’를 미국 현지에서 미국만화와 같은 형식으로 발행한바 있고 1997년에는 ‘스폰’으로 유명한 이미지코믹스에서 장태산, 김재환, 김태형 등의 한국작가를 섭외해 미국만화를 연재하도록 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야설록의 야컴이 미국에 현지법인 파워하우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 이태행, 형민우, 강찬호 서승원 등의 작가가 미국 시장에 안착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시공사가 스튜디오아이스를 설립하여 미국 도쿄팝 출판사와 함께 공동출판을 시도하는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유형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동아시아만화의 전통을 공유하며 동반 성장해온 일본만화계와 달리 미국만화계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프랑스, 벨기에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문예성이 강하고 한국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만화가 있는 그대로 소비되고 있다. 해당 국가의 시장규모와 작품의 연관산업 파급력이 일본이나 미국처럼 크지 않기 때문에 단순 번역 외에 현지화 된 창작의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일본 외의 동아시아 국가 그리고 북미나 남미 시장 등 역시도 현재로서는 한국의 만화를 있는 그대로 소비하고 있는 작은 규모의 시장이다. 그러나 프랑스나 벨기에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수많은 유럽국가들의 다양한 만화를 상호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만화의 다양성이 일본이나 미국시장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만화의 ‘낯섦’을 다양성 또는 색다른 차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이두호, 김동화, 이희재, 박건웅 등의 한국 내에서도 높은 창작력과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작가주의만화’가 2003년 이후 꾸준하게 수출되고 있다.

 

 


왜 Manhwa가 아니라 K-Comics인가?

 

중견작가들의 선도적인 해외 진출, 젊은 작가들의 의미있는 도전과 성공사례가 이어지면서 한국만화는 현재 40개국 이상의 국가에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출되고 있다. 한국만화로만 구성된 만화잡지 ‘도깨비’가 프랑스에서 발행됐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출판사의 라이센스 잡지 개념을 띤 ‘Champ’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 웹툰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번역만화커뮤니티가 다수 생기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한국만화산업계의 다양한 구성 인원들이 쉬지 않고 해외 시장 진출에 도전한 까닭도 있지만 정부의 의욕적 투자의지가 실천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만화가 앙굴렘국제만화축제를 통해 세계진출전략을 수립했던 것처럼 한국 역시 정부 주도하에 2003년 프랑스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한국만화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나름의 세계화전략을 추진했다. 이때 영문으로 Manhwa라는 명칭을 브랜드화 시켜 홍보했는데 이것이 일본만화와 차별되게 한국만화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앙굴렘 한국만화특별전은 직접적인 마켓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으나 세계무대와 해외마켓에 한국만화의 존재와 다양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고 한국만화 수출규모 신장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런데 이 만화라는 용어는 만화적인 표현물 전체를 통칭하는 것으로 어떤 경향성이나 특징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외국의 전문가들 역시 Manhwa의 차별적 특징을 모르겠다고 하고 국내 전문가들의 답변 역시 궁색하다. 즉 차별되어야 한다는 선언에는 성공했으나 차별되는 내용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Manhwa는 한국만화 전체를 통칭하는 것이고 한국만화특별전은 한국만화의 다양성을 성실하게 보여주느라 한국에서 창작되고 소비되는 모든 형식의 만화를 제시했기 때문에 ‘이것이 한국만화이다’라고 한정하지 못했다-물론 이를 찾아내서 한국만화라는 독자적 전통을 수립하는 것도 큰 과제이다. 그러나 현재적 의미에서 한국의 만화는 독자적 정체성을 보여주며 발전하고 있다기 보다는 앞서 열거한 것과 같이 여러 국가의 만화창작과 소비경향이 혼재된 형태를 보이면서 발전하고 있다. 해당 국가의 입맛에 맞춰 ‘현지화’라는 목적성을 지니고 창작되기도 한다. 즉, Manhwa라는 브랜드는 만화라는 일반명사와도 동일한 개념이어서 한국에 산재해 있는 모든 만화를 뜻하고 전 세계 만화의 창작과 소비 경향의 축소판이 된 한국 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때문에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일반명사나 브랜드로서는 손색이 없을 수 있으나 새로운 수출신장 효과, 새로운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개념어로는 부족함이 있다.

 

 

일단락된 Manhwa 세계화, 2단계 전략 필요

 

이와 관련 이현세 이사장은 우수만화 글로벌 프로젝트 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K-Comics’라는 용어를 제안했고 ‘한국형 세계만화 K-Comics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K-pop의 세계적 붐과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문화와 콘텐츠를 세계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선언한 ‘K-Culture론’에 부합하는 것이다. Korea를 뜻하는 K가 해외를 지향하는 것이고 Comics는 만화일반을 뜻하는 영문 명칭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만화계가 세계진출을 위해 지금 집중해야할 특정한 형식을 지정한 것이다. 이현세 이사장은 지난 3월 최광식 장관과 만화계 간담회에 이어 4월 23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이미 일본과 유럽에 우리 작가들과 작품이 진출해 있는 상태다. 남은 게 미국 그래픽노블 시장인데 작가를 직접 보내 현지에서 공략하는 게 어떨까 싶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를 만들어 성공을 거둔다면 소녀시대나 빅뱅을 뛰어넘는 한류 만화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라며 Comics가 의미하는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해 일본만화계와 유럽만화계에는 해당 지역에 맞는 적절한 형식과 규모로 한국의 만화와 만화가의 진출이 이루어졌으나 미국만화계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식 그래픽노블과 히어로코믹스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쉽게 언급하지 못할 만화계 수장으로서 이현세의 고민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하고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화려한 작화력을 지니게 된 젊은 만화인재들이 만화창작에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일러스트분야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만화가 과거와 같이 출판시장 내에서 만화책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나 게임과 경쟁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그들과 동맹 관계를 이뤄야 한다는 점을 재인식한 결과이다. 허리우드가 미국식 슈퍼히어로만화를 추억상품에서 현존 가치로 재탄생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 미국만화계가 ‘경쟁과 동맹의 현재적 방법론’을 가장 잘 시스템화 시켜놓지 않았겠느냐는 기대감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지금 한국이 배우고, 한국이 만들어서 세계와 함께 소비할 만화는 Manhwa가 아니라 Manhwa중에서도 그래픽노블이고 슈퍼히어로코믹스 즉 K-Comics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간의 노력을 한국만화 세계화 전략의 1단계였다고 한다면 2단계 만화 세계화 전략은 부족한 특정 장르에 집중하고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서 수출시장을 신장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