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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상상곳간 ⑤ 훈민정음 해례본 파헤치기, 그리고 몰랐던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23.




 

“소이가 해례예요. 해례는 책이 아니라 사람이라구요.”

 

<뿌리깊은나무 21회 중> 

(캡쳐로 보니 무섭지만 극의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해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뿌리깊은나무’라는 SBS 드라마 방영 이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로 등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극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해례본이 스토리의 중심이 되었죠) ‘뿌리깊은나무’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 해례, 해례 하는데 그게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필자는 지난주 마지막회를 보며 아쉬움에 눈물이..T,T)


해례 : 한글의 창제 원리를 담고 있는 서적.

 


  <훈민정음 어제 서문(좌),  훈민정음 해례본(우) @ 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훈민정음이라 불린 한글과 창제의 원리를 담고 있는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쓰고 정인지 등 신하들에게 글자에 대한 설명을 적게 한 것입니다. 이 책이 처음 발견된 때는 1940대라고 하는데요. 책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의 원리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해례본에 있는 정인지의 서본입니다.
이처럼 한글은 배우기 쉬워 아무리 어리석은 자더라도 열흘이면 깨우칠 수 있는 매우 쉽고, 신비한 글자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뿌리깊은나무’ 드라마에서 해례가 존재하고 있는 서책이 아닌, 사람으로 설정한 것도 이런 맥락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드라마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한글 창제의 과정과 원리는 최근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성공 요인 중 하나도 바로 이 한글 창제 과정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전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광평대군의 존재, 세종의 다혈질 적인 성격, 한글 창제에 이바지 했던 집현전 학사의 역할과 다양한 캐릭터, 그에 반하는 음모세력(밀본)의 활동' 등

뿌리처럼 얽혀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특히, ‘해례’라는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극중 인물인 세종대왕과 광평대군, 소이의 가공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대한민국의 ‘한글’이라는 문자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것입니다.
 
 



‘뿌리깊은나무’에서는 한글 창제에 일조한 인물로서, 새로운 역사 속 인물인 광평대군

 
을 등장시킵니다. (생긴 것도 흔히 말하는 ‘엄친아’(엄마친구아들)로 등장한다는)
이처럼 사실, 한글 창제에 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일조했다는 가설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가설들을 나열해봤습니다.

 


이 중 100% 확실한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지만, 역사에 대한 상상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계속 설레게 하기 때문에 수많은 가설들이 생산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가설들을 살펴볼까요?

‘집현전 학사들은 한글 창제를 반대했다’?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한글에 일조한 인물들이 우리가 쉬이 알고 있는 집현전 학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세종대왕 자신과 그의 혈육인 왕자 5대 왕 문종,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이 한글 창제에 깊숙이 관여하여 비밀리에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주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던 광평대군보다 문종, 수양대군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 >

이렇게 비밀리에 만들어진 한글이 반포의 과정을 거치기엔 조정 대신들과 당시 정책결정에 영향력이 컸던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는 있었을 법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글을 아는 것에 대한 독점적 권한이 양반들에게만 있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권력을 평민/천민과 함께 나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양반의 핵심인 집현전 학자들이 반발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한글 전파는 세조의 영향력이 컸다?’

한글 사용에 가장 공이 큰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세조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올랐지만 석보상절, 월인석보를 비롯하여 한글 사용에 이바지 했습니다.

 


<석보상절 @ 출처 : 중앙박물관>

석보상절은 한글로 번역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데요.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사망하자,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가의 전기를 엮게 하였는데, 《석가보(釋迦譜)》 《법화경(法華經)》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경(藥師經)》 등에서 뽑아 모은 글을 한글로 옮긴 것으로, 1447년(세종 29)에 완성한 것을 1449년(세종 31)에 간행되었습니다. [출처] 석보상절 [釋譜詳節 ] | 네이버 백과사전

이 석보상절에는 세조가 직접 쓴 한글이 실려 있습니다. 고려시대를 지배했던 불교문화로 인해 모든 백성에게 구전되었던 석가의 일대기를 한글로 정리/편찬한 것으로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잠시, 해례본과 월인석보 서체를 비교해 보자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글 서체가 고딕체에 가깝지만
월인석보의 한글 서체는 고딕체에서 볼 수 있는 딱딱함을 제거한 점에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월인석보체’ 같은 경우는, 날카롭고 강하게 시작하여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서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강하고 부드러움을 동시에 보여준, 한국인의 특성을 잘 반영한 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월인석보의 글자체를 폰트로 개발한 곳이 있습니다.



   <@ 출처: 디지털 폰트 http://font.culturecontent.com/KcrcMemberMain.jsp>

한글의 간결함과 섬세함을 잘 표현한 폰트로 보이는데요, 저는 책의 타이틀이나 서한문 등에 쓰면 너무나 좋을 글자체로 보입니다

 
한글 창제에는 정의공주가 있었다?’


“주상전하께서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음을 다 끝내지 못하여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셨다. 하지만 모두 풀어내지 못했다. 결국은 차녀 정의공주에게 부탁하자 그녀가 곧 풀어 바쳤다. 주상께서는 무릎을 치며 크게 기뻐하시고 칭찬하여 큰 상을 내리었다.”

<죽산안씨대동보>에 전해져 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산 안씨는 정의 공주의 시가이며,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훈민정음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정의공주의 한글 창제 기여도 또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상 불가능한 일이다’ 등 의견이 많지만, 이 또한 완벽한 창조물에 대한 오늘날 우리의 상상의 원천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듯 한글은 창제 이후 꾸준히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 한글 문헌의 간행이 활발해지고, 특히 여성과 일반백성들 사이에서 사용이 확대되며 생활 속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창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전파하는가도 가치가 존재하기 위한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보너스



<@ 정조가 어렸을 적 한글로 문안인사를 적은 편지 http://bomi1733.blog.me/10078635645>

“평안하오신지 문안 여쭙고자 합니다. 뵌지 오래오니 그립습니다.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다 하시니 기쁩니다


(해석이 불가..오늘날로 치면 초등학생 정도 되는 나이라고 하는데, 친근하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