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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스마트 시대의 스마트 콘텐츠

by KOCCA 2011. 3. 18.

10년 전 쯤 세간에 유행하던 유비쿼터스 담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최근에는 스마트 미디어나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기술혁신은 언제나 인류의 기대와 욕망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한 시대를 장식하는 담론들을 생산한다. 때론 시대를 앞서가는 창의적인 상상이 되기도 하지만 경계해야 할 고정관념이나 섣부른 통념이 되기도 한다.    

최근 3D나 전자책, 스마트 미디어 등 실로 현대 기술이 보여주는 향연은 화려하고, 때론 눈이 부실 정도로 현란하여 혹여 ‘맹목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최근에 상용화되기 시작한 기술들은 대부분 이미 1세기 이전부터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과 진화를 거쳐 온 현대문명의 결과물들이다. 텔레비전과 영화와 무선통신의 역사가 그러하고, 화상 전화에 대한 구상은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17세기에 상상했던 자동학습기계는 최근의 각종 시청각 교육 미디어나 에듀테인먼트의 원조격인 셈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동안 일종의 ‘사회적 선택’(social selection)이라는 기술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하고 유용한 것들은 살아남아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즉 기술적 가능성과 현실적 유용성과는 항상 괴리가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이름의 미디어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개인용 모바일 기기의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고, 지난 2월 스페인에서 개최되었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1)에서 ‘스마트 미디어’에 대한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면서 양방향 콘텐츠, 체감형 콘텐츠 또는 혼합현실(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등도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양방향성은 기존의 일방향 대중매체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모든 미디어에 양방향 서비스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과 TV가 결합된 스마트 TV가 당분간 각광을 받을 전망이지만, 장기적으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특성(몰입성)을 고려할 때 그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흥미진진한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면서, 시청에 방해가 되는 정보 검색이나 부가 서비스를 이용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3D 입체영상이나 4D 등 감각 효과를 가미한 체감형 콘텐츠의 경우에도, 미디어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가령, 우리가 최근 열광하고 있는 3D는 양안 시차를 이용한 유사 3D(정확한 표현은 스테레오스코픽 3D)이며, 현실과 동일한 3차원 지각은 시신경이나 뇌신경에 개입하는 기술이 아니고서는 원칙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시청각 기술은 비교적 발전되고 있지만, 그 외의 후각과 촉각 등의 감각 기술은 아직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한계로 인해, 가령 3D 음악공연 영상물의 경우에도 공연 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과 몰입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은 종이책과 전자책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며, 일상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문서들이 컴퓨터로 작성, 전달, 배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의 사용이 역설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들이나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도 ‘제2의 세계’ 창조라는 기술 유토피아의 실현을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현실세계를 보완하는 부가적인 정보서비스의 기능을 크게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며,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는 기존 콘텐츠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기능에 충실할 때 그 실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시대에 어울리는 스마트 콘텐츠는 결코 '똑똑한‘ 콘텐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 ’사회적 선택‘을 거쳐 우리와 친숙해지고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콘텐츠는 개인․집단 간의 소통과 관계의 관리, 개개인의 자유와 향유를 담보하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콘텐츠일 것이다. 기술공학에 거는 기대는 크지만, 모든 것을 기술에 맡기기에 문화와 예술은 너무 ’인간적‘이고, 그 가치는 너무나 소중하다. 스마트 시대에는 스마트한 사고와 스마트한 상상력이 더욱 절실해 질 것이다.


글 ⓒ 이기현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