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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콘텐츠이슈&인사이트

된장열무와 만들면 된다 테크숍

by KOCCA 2016. 6. 30.

▲ 창업대국 미국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테크숍.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곳을 방문했다. 자료:테크숍)

 

색깔이 왜 이래?”


그러니까 이놈의 팔랑귀가 문젭니다. 무더위는 찾아오고, 먹을 것은 마땅찮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야채가게 사장님이 열무 한단에 800을 외칩니다. 한눈에 봐도 참 좋은 열무가 고작 800원이라니. 어린 시절 엄마의 열무김치말이 국수를 먹어본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죠. 푸르기 그지없는 열무 앞에서 서성이는 손님에게 사장님이 결정타를 날립니다. “열무 석단에 2,000!” 열무 김치가 세상에서 가장 쉽다는 사장님 말씀을 듣다 보니 열무김치 세트가 들어있는 파란 봉투가 어느덧 손에 들려있더군요. -사장님 수완이 좋아 정작 열무는 두단을 샀습니다. 세트는 열무 두단에 얼갈이배추 한단, 쪽파 한단에 마늘, 생강, 홍고추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 이미 늦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죠. 수없이 많은 황금 레시피가 뜹니다. 이 블로그, 저 블로그를 전전하며 눈어림으로 열무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죠. 겁 없이 도전한 열무김치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어느 블로거가 양파를 갈아넣었더니 맛이 좋았다길래 양파를 찾아보니 없지 않겠습니까.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보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중, 남편을 위해 냉장고에 쟁여뒀던 양파즙이 떠올랐죠. 1초의 머뭇거림 없이 양파즙을 대거 투하하고 보니, 열무김치 색이 된장빛인 겁니다. 아뿔싸. 세상의 수많은 황금 레시피를 올린 블로거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김치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괜찮은 김치향이 올라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 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남편 식탁에 된장빛 국물이 있는 열무김치를 올렸습니다. “이런 건 나밖에 못 만드는 거란 수식어도 잊지 않았고요. -사족입니다만, 된장 열무의 결과는 묻지 말아주시길 부탁합니다.

 


▲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테크숍. 재료를 구입(왼쪽)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서설이 상당히 길었습니다만, 뭐든 겁 없이 해보자며 뛰어드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천국의 공간 이야기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곰손이어도, 만드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을 위한 그런 곳 말입니다. 바로 테크숍입니다. 고백하자면 이곳을 방문한 건 무려 석달 전의 일입니다. 3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게임개발자대회(GDC) 취재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중심가에 있는 테크숍은 좀 질려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현 정부의 창조경제센터의 아이디어를 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방한한 테크숍의 짐 뉴턴 창업주에 따르면 모바일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인 스퀘어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 오토바이가 테크숍을 거쳐 탄생했다고 합니다. 짐 뉴턴의 강연을 보도한 매체에 따르면 테크숍을 통해 일어난 경제파급 효과는 우리 돈으로 14조원에 달한다고도 하고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006101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문을 연 테크숍은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에도 진출했다.

 


테크숍 간판아래 이곳에서 꿈을 만들라(Build Your Dreams Here)'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첫인상은 문화센터같단 것이었습니다. 마침 방문했을 때가 오후 2시를 지난 시간이라 한산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목공실, 3D프린트가 가능한 인쇄실, 패턴을 뜨고 봉제작업을 할 수 있는 미싱실, 쇠를 자르고 연마할 수 있는 금속세공실까지 다양한 공장을 옮겨온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색적인 것은 이런 다양한 공간에서 나이 불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멤버십으로 운영되는데 월단위로 멤버십을 유지합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테크숍에 등록한 회원은 3월 기준 약 700명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디자인부터 용접, 페인팅까지 무언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한 덕에 이용자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직원이 설명해주었습니다.

  

▲ 테크숍 작업실 전경

 

단문의 메시지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던 트위터의 잭 도시 창업주가 이곳을 통해 결제시스템인 스퀘어를 만들었단 이야기도 빼놓질 않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사업을 위한 시제품을 만들러 온 사람들 외에도 저처럼 일단 만들어보자고 찾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감상하기에도 꽤 즐거운 것들이었습니다.

 

▲ 크숍에 전시된 작품들. 금속 조형물과 모터 바이크, 미니어처 크기의 작품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이곳은 멤버십으로 운영된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할 수 있도록 해놨더군요. 수업 2개에 200달러니 저렴과는 거리가 멀지만 직접 뭔가 만들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꽤 괜찮은 상품으로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홈페이지를 찾아가보니 이번엔 대문에 여름캠프 공지가 떠있었습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를 공략한 것이었는데 8살에서 17살 사이의 아이들이라면 아이디어만 갖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 볼 수 있단 것이었죠.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사업 모델을 구축한 데 이어 이번엔 아이들까지 눈높이를 낮춰 공략에 나선 겁니다. 어떻습니까. 요즘은 대세인 코딩을 배워야 한다며 초등 코딩 교실을 여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 않습니까?

 

영화 특수효과 회사엔 공대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지만, 픽사에서 경비원을 하다가 입사한 사람들도 있다. 미국이란 곳의 특징이 이것이다. 일단 하고 싶은 걸 찾으면 무섭게 덤벼든다. 어느 하나를 못해서 취업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을 안 한다. 하나만 잘해도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선 하나만 잘해도 된다. 나이, 학교를 안보는 문화가 있고, 그 위에 도전하는 정신이 있다. 이게 실리콘밸리에서 되는스타트업들이 나오는 이유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세운 특수효과 회사 출신 이승훈 감독의 말입니다. 애플, 구글, 아마존처럼 왜 유독 되는 기업은 미국에서 나오느냔 질문에 대한 답이자, 창업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도 한국판 테크숍이 문을 열었습니다. 온라인 예약(http://www.digital-blacksmithshop.com) 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요, 스퀘어 같은 성공사례가 이곳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요.


레고의 이야기로 이번 글을 마치려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관심을 가졌다던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데이비드 로버트슨,빌 브린 지음, 해냄)는 책에서 본 이야깁니다. 애덤 리드 터커란 건축가가 고속성장 뒤 성장의 늪에 빠진 레고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부분이었는데요, 이 건축가가 떠올린 건 실제로 있는 건물을 레고로 축소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대박을 쳤죠. 건축가는 있는 돈을 털어 레고 블록을 사들였고, 차고에서 샘플을 만들었습니다. 안팔리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유통업자에게 호언장담까지 할 정도로 모험을 했죠. 레고 본사 사람들마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이 상품은 탑이나 유명 건축물을 만드는 레고 아키텍쳐상품으로 재탄생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레고를 되살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영어도 한 마디 못하는데 루카스 감독의 회사로 들어가겠단 꿈을 키웠고 한국인으로선 손에 꼽는 VFX 전문가 자리에 오른 이승훈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연필로 시를 쓴다고 해서 다 같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명시는 경험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무엇이든 도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