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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현장취재

<무한도전>의 성장기, 그 속에서 노하우를 찾다 -콘텐츠 인사이트 11월 김태호 PD

by KOCCA 2015. 11. 19.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 5년이나마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남아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이는 예능 콘텐츠 시장 속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해진 채널, 더 다양해진 소재로 쉼 없이 쏟아지는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서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인기를 얻는 프로그램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랬다고 한들 그 인기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죠.


▲ 사진 1 2015년 마지막 콘텐츠 인사이트의 주인공인 김태호 PD


하지만 10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능이 있습니다. 바로 MBC의 <무한도전>입니다. 오랜 시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온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예능의 역사를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지난 11월 16일 콘텐츠 코리아 랩에서는 2015년 마지막 콘텐츠 인사이트를 맞아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의 강연과 토크 콘서트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무한도전의 지난 행보를 통해 기획, 제작 노하우를 엿볼 수 있었던 김태호 PD의 강연 내용을 상상발전소에서 전해드립니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이 하나의 유기체 같다는 이야기로 입을 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기획에 따라 프로그램이 성장했다면 지금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유기체처럼 혼자 움직이는 경우도, 혹은 제작진이 끌려가는 경우도 있는 만만치 않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무한도전>의 PD라는 자리가 마치 10년간 오래된 브랜드를 관리하는 자리처럼 느껴진다고 전했습니다. 최근 멤버 정형돈의 건강악화로 <무한도전>이 다시 위기설에 휩싸인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위기가 반갑다는 담담한 면모를 보였는데요. 지난 10년 동안 더 큰 위기도 많았을뿐더러 프로그램 자체에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이 곧 프로그램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 사진 2 김태호 PD의 강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김태호 PD : 사실 무한도전이 박수칠 때 떠날 좋은 기회는 놓쳤어요. 그 좋은 기회를 놓쳐서 중박 정도 치고 떠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중박의 기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죠. 최근 ‘가을기획전’에서 정준하 씨가 냈던 아이디어 중 <토요일 토요일은 드라마다(이하 토토드)>라는 것이 있었거든요. <토토드> 때문에 만났던 김혜자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전원일기> 1회가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가, 1088회에 ‘박수칠 때 떠나려 했어도’라는 제목으로 끝났다고 해요. 1000회가 넘도록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전원일기 제작진과 출연자의 고뇌에 관해 저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캐스팅만 잘하면 알아서 캐릭터가 성장하기 때문에 제작진이 손쓸 게 없어요. 하지만 반대로 캐릭터가 인기를 잃어갈 때 역시 제작진이 손 쓸 방법이 없어요. <무한도전>도 캐릭터로만 굴러가던 건 2008년까지였고요. 그다음부터는 저희 멤버들과 제작진에게도 힘든 시간이 찾아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 지금은 오히려 예능의 맏형으로서 어떻게 하면 다른 예능에서 하지 못한 것을 먼저 나서서 겪어볼까 할 때도 있어요.


한편 김태호 PD는 제작 시간과 플랫폼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했는데요. 매주 80분이라는 분량을 묵묵히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 예능 제작자에 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기존에 추구하고자 했던 작가주의 예능이나 매주 다른 형식의 아이템을 보여드리는 점이 힘든 현실에 대해 아쉬워했습니다. 


김태호 PD : <무한도전>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가 ‘다음 주는 뭐할까?’였는데 요즘은 이 고민이 사치가 될 때가 있어요. 물론 그동안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많이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예능끼리 출연자나 아이템이 겹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여기에 3%를 바꾸기 위해 매일 회의를 하는데 가끔 그 3%가 안 나올 때도 있죠. 그렇지만 이게 쌓이다 보면 큰 차이를 낳는다 생각하고 매일같이 해왔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누구나 그렇게 해야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게다가 채널도 다양해졌고, 제가 봐도 무척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무한도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 사진 3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이 매주 새로운 상황 속에서 펼치는 좌충우돌 도전기’인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이 2005년도에 ‘태어나지 못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가 태어난 프로그램’이라고 말합니다. 2005년 유재석이 3년 만에 <무한도전>으로 MBC 주말 예능에 돌아왔을 당시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무한도전> 시청률은 여전히 ‘애국가 시청률’인 4%대였죠. 오직 원했던 건 유재석의 연락처였던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에 무작정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까지 <무한도전>의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태호 PD : 처음 <무한도전>을 맡을 때 부담은 없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나갔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이렇게 재밌는데 왜 시청자들이 안 볼까’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안방에서 보시는 시청자분들께 우리가 전달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찾아가고자 했던 게 지금의 무한도전을 만든 것 같습니다. 들하고 약속했던 건 딴따라라고 손가락질하던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분들께 예능도 노력하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어요. 결국,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멤버들에게는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무한도전>이 가장 먼저 바꾸고자 했던 것은 ‘카메라 시스템’이었습니다. 당시 두 대뿐이던 카메라를 여덟 대로 늘린 것이 그 시작이었죠. 당시의 예능 촬영은 카메라 두 대로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암묵적인 ‘룰’이었는데요. 김태호 PD는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기존의 방송 헌법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자연스럽다 여겼습니다.


김태호 PD : 무한도전 첫 회를 보면 50초 되는 영상 동안 유재석 씨 혼자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 같으면 50초 동안 여러 상황이 생겼겠지만, 이때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이때는 모두가 현장에 오자마자 듣는 이야기가 오디오 겹치지 말라는 것이었거든요. 멘트 도중 누군가 끼어들게 되면 카메라 감독님이 이걸 찍어야 하나 판단하기가 모호해지니까요. 그러다 보니 현장의 재미있는 상황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아예 개별적으로 담당 카메라를 두게 되었는데, 이게 지금의 캐릭터를 낳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 사진 4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또한,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CG와 자막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는데요. 특히 <무한도전>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자막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김태호 PD : 무한도전 자막 중 가장 특징 있었던 게 궁서 자막인데요. 예능 편성 시간대 자체가 사실 집중력이 높은 시간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애써 만든 이 웃음을 좀 더 집중해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시청자의 심정에서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싶어 자막을 넣었어요. 한 명이라도 브라운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반응을 얻으면서 점차 무한도전의 새로운 개성 포인트가 되었죠. 



카메라나 CG, 자막 같은 시스템 변화는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졌다고 하는데요. 김태호 PD는 이런 시스템 변화에 안주하지 않고 뒤이어 ‘내용의 변화’를 추구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예능은 기존의 정해진 방식과 화법으로 흘러가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에 대해 반문하면서 <무한도전>이 먼저 시도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장기 프로젝트’였다고 합니다.


김태호 PD :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화법으로 도전 결과보다 도전 과정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형식인데요. 장기 프로젝트의 장점은 작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와 최근 MBC 추석특집으로 방영된 <어게인>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90년대 가수들이 컴백 무대를 가졌지만 <토토가>에 사람들이 열광하던 것은 그들이 들려줬던 이야기와 재결성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감동적으로 다가왔거든요. 하지만 <어게인> 같은 경우는 특집이기에 과정이 생략되어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습니다. 처음 장기 프로젝트를 할 때는 멤버들과 논쟁도 있었죠. 그렇지만 논의를 거쳐 점차 아이템이 스포츠 댄스, 에어로빅 등으로 다양하게 커졌고요. 도전 과정을 통해 멤버 간에 일어나는 감정적 문제, 노력으로 결과가 달라지는 모습 등 여러 가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 사진 5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년마다 개최되고 있는 <무한도전> 가요제


한편 <무한도전>의 상징과도 같은 추격전 특집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김태호 PD는 추격전 특집에 관해 멤버들도 ‘<무한도전>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입장’에 있을 수 있다고 전했는데요. 추격전 특집에서는 자신의 움직임 하나가 곧 무한도전의 내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재미있을지 멤버들이 각자의 판단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갈등들이 재미있는 요소를 만들어내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를 시작으로 <여드름 브레이크>, <꼬리 잡기>, <TV 전쟁>, <스피드> 특집 등 여러 소재의 추격전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특집을 시도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창의적인 소재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김태호 PD : 사실 저희가 가장 망했다고 평가하는 <28년 후> 특집도 매년 같은 방식으로 하는 납량특집을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특집이에요. 저희도 항상 새로운 소재로 새로운 특집을 시도하지만, 항상 그게 흥행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시청자분들이 재미있게 보시려면 낯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냥 낯설어 보이면 답이 없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익숙하면서도 새로워야 시청자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될 것 같습니다.


▲ 사진 6 강연에 이어 진행된 토크콘서트


대한민국 예능의 틀을 깬 최초의 시도가 모여 만들어진 지금의 <무한도전>. 이번 콘텐츠 인사이트에서는 그런 <무한도전>을 이끌어온 김태호 PD와 <무한도전> 제작진, 출연진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그중 김태호 PD의 다년간 경험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이번 강연은 미래의 콘텐츠 창작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진 토크 콘서트와 질의·응답 역시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강연 후 내용 역시 상상발전소에서 이어집니다!


ⓒ 사진 출처

표지 무한도전 공식 트위터

사진 1,2,4,6 직접 촬영

사진 3,5 무한도전 공식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