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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KOCCA 행사

<문화원형을 찾아서>옛 백제를 추억하는 부여의 이야기를 듣다. 두 번째 이야기

by KOCCA 2013. 12. 10.



꽃처럼 쓰러져간 슬픈 바위 - 낙화암과 고란사

 

부여읍 쌍북리에 아담하게 솟은 부소산이 있습니다. 서쪽으로 백마강을 끼고 있는 부소산은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언덕이라고 할 만큼 낮은 산입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가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면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는 곳입니다. 일찍이 익산 출신의 문학인 이병기 선생은 1929년 발표한 <낙화암을 찾아가는 길에>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그 풍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천송이, 만송이, 꽃밭 속 같은 주위에 있는 여러 산들은 오로지 부소산 하나만을 위해 생긴 듯하고, 경주같이 주위 장산들에게 위압 받는 일도 없고, 한양같이 에워싼 산협도 아니고, 평양같이 헤벌어진 데도 없이…'


▲사진2 부소산성 입구

  

부소산은 백제의 처연한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지금은 따사로운 햇살과 초록으로 물들어 생동감이 가득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사비루, 영일루, 반월루, 백화정이 있습니다. 백화정 바로 밑으로는 삼천궁녀가 푸른 강물에 몸을 날린 낙화암이 있고, 강기슭 가까이에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고란사가 있습니다.


▲사진3 부소산성의 산책로

 

걷기 좋게 잘 정돈된 산길을 얼마간 오르다 보면 백제의 궁녀와 부녀자들이 꽃처럼 쓰러져간 슬픈 바위가 보입니다. 그 바위는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서글픈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낙화암입니다. 의자왕 20년(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사비도성을 함락하자 도성에 있던 궁녀와 부녀자들이 부소산성으로 피신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곳까지 적들이 밀려들고 적군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충절을 지키기 위해 꽃과 같이 뛰어내렸습니다.


“낙화암에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슬픈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는가. 얼마나 많은 붉은 충절을 흘렸는가.”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천년이 지나도 백마강이 흐르고 있는 이유는 이 여인들의 눈물이기 때문이며, 낙화암 밑의 절벽이 붉은 빛을 띠는 이유는 이 여인들의 충절을 기억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진4,5 낙화암과 백마강/ 사진6,7 고란사의 전경

 

낙화암 절벽 아래 강기슭에는 고요한 정적 속에 고란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꽃처럼 쓰러져간 넋을 돌보기 위한 곳입니다. 절의 벽면에는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지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잊지 않으려 벽화까지 그려 놓았지만 환곡의 세월은 고란사 아래로 흐르는 백마강을 따라 흘러가고 지금은 늙은 개 한 마리가 평온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절 뒤쪽 바위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다소곳한 고란초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고란정에서 나오는 약수는 한 사발 마실 때 마다 3년씩 젊어진다 하여 옛 백제의 왕들도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사진8,9 고란사 삼천궁녀 벽화, 고란정의 모습

 

저는 시원한 고란약수 한 사발을 급하게 들이키고 법당으로 들어가 이곳에 서려있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넋을 위해 삼배를 올렸습니다.

 


◎사진 출처

-사진1-9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