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놀았던 부인 혹은 여자친구의 과거, 당신은 용서 할 수 있는가?’
다소 생뚱맞고 이상한 이 질문에서부터 영화는 출발합니다. 조신하다고 믿었던 부인의 과거를 우연히 알게 된 남편. 그리고 그 과거를 쫓는 남편의 오해와 집착. 이런 조금은 신선하고 위험한 발상이 큰 흐름을 담당하고 하고 있는 영화 <밤의 여왕>입니다.
▲사진1 밤의 여왕 포스터
1. 불안한 자들을 위한 흥미로운 ‘발상’
▲사진2 밤의 여왕 스틸컷
부인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영수(천정명)가 반했던 청순하고 조신한 희주(김민정)는 온데간데없고 클럽에서 이름 좀 날렸던, 술 잘 마시고 신나게 놀았던 렉시(희주의 영어이름)만 있을 뿐이죠. 일단 승부수는 잘 띄운 듯합니다. 발상 자체만 놓고 본다면 한 번쯤 오, 하고 돌아볼만 하죠.
어찌 보면 누구나 끌어안고 있는 불안인지도 모릅니다. 흔히 ‘흑역사’라고 지칭되는 과거들. 그런 과거를 알게 됐을 때 ‘사랑의 힘’은 과연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영화는 그런 사람의 불안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름 그 질문을 해석하고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과거’ 그리고 ‘현재’를 교차해가며 지속적으로 묻습니다. 관객이 느끼는 사랑의 힘에 대해서 말이죠.
2. 조금은 뻔하고 따분한 ‘로맨틱 코미디 효과’
▲사진3 밤의 여왕 스틸컷
발상이 흥미로웠던 것에 비해서 풀어내는 방식 자체는 좀 낡았습니다.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된 남편의 이혼 요구, 그리고 다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는 서사는 전형적인 편이죠. 또 한편으론 억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마치 ‘희주’의 과거를 큰 흠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사실상 ‘이게 과연 큰 흠집인가?’ 하는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한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일단은 믿어보기로 합시다. 이렇게 보여준 영화는 결말로 향할수록 이것을 ‘남편이 낳은 불신의 산물’로 포장합니다. 갑자기 아내 편으로 노선을 틀어버린다고 할까요? 그리곤 마지막에 이것을 ‘사랑’으로 무슨 묶음 판매 떨이 처리하듯 넘겨버립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기본적 미덕인 ‘사랑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배신하게 되는 것이죠.
3. 영화가 그리는 2000년대 ‘과거로의 귀환’
▲사진4 밤의 여왕 스틸컷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나열되는 ‘과거’들이었습니다. ‘이효리’라는 신드롬적인 여가수를 등장시키며, 클럽에서 희주가 이효리 노래로 춤추는 장면과 군대에서 이효리가 싫다고 했다가 혼나는 영수를 그려내죠. 동시대를 느끼고 살았을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과거의 키워드가 ‘이효리’ 라니. 흥미롭지 않으세요?
그것 외에도 월드컵 응원 열풍과 당시대의 나이트 등 재밌는 과거 장면들이 많습니다. 영화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10년 전의 기억들을 살려줍니다. 디테일하진 않아도 조금은 신선하고 재밌는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치 10년 전의 과거를 굉장히 오래된 기억인양,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인양 살리니까요. 재밌는 시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이 기억이 향수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오래된 건지는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4. 안정적인 편집이 주는 ‘불완전한 완성도’
▲사진5 밤의 여왕 스틸컷
스토리가 진행되는 내내 카메라 워크도 구도도 안정적이었고, 편집도 어디 하나 지적할 부분 없이 좋았습니다. 근데 이런 안정감이 이 영화에 불완전한 느낌을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러닝타임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담아야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장르입니다. 이미 상영관에 올라간 영화를 갑작스럽게 연장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다보니 화면에 암시적인 요소들을 넣기도 하고, 카메라의 구도, 움직임 등 디테일한 요소에 상대적으로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디테일이 없었습니다. 영상적인 요소로 전해지는 감성이 적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밤의 여왕>은 장르적으로 드라마에 좀 더 가까운 영화 같네요.
5. 싱거운 로맨틱 코미디
▲사진 6 밤의 여왕 스틸컷
출발점이 흥미로웠던 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 그리고 그 과거를 누군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사랑이 만난다면? 물음표를 던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전반적으로 좀 아쉬웠습니다. 물론 희주와 영수란 캐릭터 자체는 사랑스러웠지만, 전개되는 스토리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전부 아쉬움만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사진출처
-사진1-6 <밤의 여왕>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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