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의 협력
신뢰할 수 있는 캐릭터 브랜드를 구축하고 IP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소구력이 강한 캐릭터를 통해 소비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야 합니다. 이는 큰 틀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좋은 플랫폼을 활용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캐릭터산업에 영향을 미친 콘텐츠 기업과 플랫폼 기업의 제휴・협력과 인수합병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CJ ENM + 부즈(뿌까)
2018년 1월 CJ 그룹은 미디어 계열사인 CJ E&M과 홈쇼핑 제작 및 방송사인 CJ오쇼핑의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2018년 7월에는 새로운 합병 법인인 CJ ENM이 출범했습니다. ENM은 ‘Entertainment and Merchandising’의 약자입니다. 이를 통해 CJ ENM은 세계적인 융・복합 콘텐츠 커머스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월트디즈니를 벤치마킹해 하나의 콘텐츠 IP로 방송, 영화, 뮤지컬, 음악, 소비재, 테마파크 사업 등 다양한 라이선스 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CJ ENM은 다양한 국내 콘텐츠 기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주요 투자 부문 중 하나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나면서, 애니메이션은 가족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주요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상품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글로벌 진출이 용이할 뿐 아니라 OSMU 전략이 잘 활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IP 사업이기도 합니다.
CJ ENM은 2018년 뿌까의 저작권자인 부즈(VOOZ)와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을 전개하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뿌까는 한국 애니메이션・캐릭터 사상 가장 성공을 거둔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2000년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하여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구가하였고, 절정기였던 2008년에는 3,000억 원의 상품 매출 중 97%를 해외에서 벌어들였습니다. 해외 사업 파트너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한국시장에서 새로운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들이 인기를 얻게 됨에 따라 다소 주춤해졌지만, 2014・2015년 국내 캐릭터 인지도 조사에서 2년 연속 5위를 차지하고, 2017년 수행된 해외의 한국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외에서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였습니다.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작권자인 부즈와 해외 네트워크가 강한 CJ ENM은 협력을 통한 윈-윈 전략으로 고전 캐릭터 IP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뿌까>는 만 4~13세 타깃 점유율에서 동시간대 지상파 포함 채널 프로그램 1위를 기록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양 사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에 대해 공동 사업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협의를 통해 카테고리를 나누어 사업을 진행하며, 해외의 경우 전략적으로 권역을 나눠 유럽, 아시아, 북미는 CJ ENM이 남미, 중국 및 인도네시아는 부즈가 진행합니다.
뿌까 사례 외에도 CJ ENM은 내부적으로 <신비아파트>와 같은 자사 IP를 활용한 자체제작 애니메이션을 늘려가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에이랩(A:lab)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완구 기획 및 제작 전문회사 데이비드 토이에 투자하여 경영권을 확보하였으며, <라바>를 만든 투바엔의 주요 제작인력들이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밀리언볼트에 지분을 투자하여 신규 애니메이션에 대한 배급권과 사업권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향후에도 다양한 콘텐츠 기업 및 관련 서비스와 제휴를 맺고 인수합병을 시도하며 미디어산업과 캐릭터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입니다.
EBS미디어 + 베이비버스
EBS의 자회사이자 키즈채널을 운영하는 EBS미디어는 2019년 <베이비버스>의 미디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베이비버스>는 판다캐릭터 키키와 묘묘를 주인공으로 하는 중국의 유아 교육용 콘텐츠입니다. 160개 이상의 계열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이하 ‘앱’)과 1,500개가 넘는 동요 콘텐츠를 17개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서비스하고 있으며, 누적다운로드 횟수 100억 회, 동요/동영상 누적 재생횟수 160억 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BS미디어는 케이블, IPTV, VOD 등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배급과 뮤지컬 공연을 통해 <베이비버스>의 한국 내 사업을 진행합니다. 2019년 8월에는 EBS키즈 채널을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버스>의 TV방영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열과 뉴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시장에서 EBS를 통한 중국 콘텐츠의 방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사례는 중국과 한국 기업 간에 공동제작 이상의 다양한 협업 모델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콘텐츠 배급의 대상으로 주로 인식되었던 중국을 콘텐츠 생산자이자 기획자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웁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진출하는 것처럼, 한국의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전에 없었던 새로운 국가의 콘텐츠가 한국과 세계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캐릭터 산업의 향방
OTT 시장의 판도 변화가 캐릭터 산업에 미치는 영향
넷플릭스(Netflix)의 한국 진출은 변화의 서막이었습니다. 한국은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단일 언어시장으로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발전하기 좋은 여건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자사의 콘텐츠와 서비스를 테스트하기 좋은 시장으로 인식합니다. 해외 OTT와 토종 OTT의 시장 쟁탈전은 미디어 플랫폼 생태계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쟁사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합작하여 서비스를 통합하고 인수합병을 시도했습니다. 2019년 1월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 3사는 상호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글로벌 OTT 서비스 업체를 견제하기 위해 푹(POOQ)과 옥수수(oksusu)를 합친 새로운 통합 OTT 서비스 웨이브(wavve)를 출범시켰습니다. 거대 통신사와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인수합병 논의도 한창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캐릭터시장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새롭게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 플러스(Disney+)의 간판스타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 스타워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콘텐츠・캐릭터 IP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CJ ENM도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디즈니의 인수합병과 캐릭터 사업의 전개
여러 플랫폼을 통해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 방영이 늘어날수록 캐릭터를 활용한 라이선싱 사업의 기회는 더욱 늘어납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콘텐츠 제작자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작권을 확보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바탕으로 OTT 서비스 업체가 라이선싱 사업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맥락에서 디즈니는 가장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오랫동안 디즈니는 지속적인 인수합병과 제휴협력을 통해 콘텐츠를 확보하고 사업을 확장해 왔습니다. 1993년에는 영화배급사 미라맥스를 8,000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1995년에는 지상파방송 ABC를 190억 달러에 흡수 합병했습니다. 1996년에는 ABC가 지분 80%를 가지고 있던 스포츠 케이블 ESPN을 인수했습니다. ABC의 인수를 통해 디즈니는 미디어 네트워크 부서를 출범시켰습니다. 2006년에는 3D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Pixar)를 74억 달러에 인수하고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의 캐릭터 IP를 확보했습니다. 2007년에는 넷플릭스의 급성장에 자극받아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이후 관련 지분은 21st Century Fox Inc.로 이전), 컴캐스트(Comcast Corporation), 타임 워너(Time Warner: 이후 WarnerMedia)와의 공동투자로 OTT 서비 스 훌루(Hulu)를 만들었습니다.
2009년에는 수많은 히어로 캐릭터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를 40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디즈니, 마블, 픽사의 블록버스터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기 위해 2010년에는 미라맥스(Miramax)를 콜로니캐피탈(Colony Capital)에 6억 6,000만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이후 MCU는 <아이언맨>, <어벤져스> 등을 통해 기존의 디즈니가 끌어들이지 못했던 젊은 남성 소비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보유하고 있는 루카스필름(Lucasfilm)을 40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2014년에는 유튜브에 영상을 공급하는 메이커 스튜디오(Maker Studios)를 5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는 21세기 폭스를 총 713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이는 2018년 미디어・콘텐츠 산업에서 이루어진 가장 커다란 인수합병 건입니다. 이로써 디즈니는 <엑스맨>, <아바타> 등의 IP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또 21세기 폭스가 훌루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분을 흡수하고, 타임 워너의 지분도 사들이면서 훌루의 대주주로 올라섰습니다. 2024년에는 10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 같은 인수합병을 통해 디즈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 부문에서 이익과 가치 증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흔히 ‘디즈니’ 하면 떠올리는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스튜디오 사업과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이지만, 사실 디즈니는 크게 4가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은 ▲Media Networks 사업부(ABC, ESPN, 디즈니 채널, 하이페리온 출판사 등이 포함되어 있는 지상파케이블 방송 부문), ▲Parks & Resorts 사업부(디즈니랜드 등 테마파크/리조트), ▲Studio Entertainment 사업부(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마블 스튜디오, 픽사, 루카스 필름, 폭스 등 영화・애니메이션・음악・뮤지컬 사업 부문), ▲Consumer Products & Interactive Media 사업부(콘텐츠 상품 판매 및 라이선스 사업 부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디즈니는 2018년 매출 594억 3,400만 달러, 영업이익 157억 600만 달러를 달성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전년에 비해 매출은 8%, 영업이익은 6% 증가했습니다. 영화 개봉 일정과 흥행성적에 좌우되긴 하지만 Studio Entertainment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벤져스>, <토이스토리>, <겨울왕국>, <스타워즈>, <아바타> 등의 강력한 콘텐츠 IP를 바탕으로 2019년 3월 기준 전 세계 극장 수익 상위 100개 작 중 45%를 점유했습니다. 또 미디어・콘텐츠 업계 최대의 콘텐츠 기반 수익 창출 능력을 바탕으로 스튜디오 부문에서 거둔 수익을 다른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흥행한 콘텐츠의 일부는 후속작과 리메이크로 생명력이 지속되는 한편, TV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포맷이 다변화되고 세계관이 확장됩니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캐릭터 상품의 제작 및 판매도 활발합니다. 디즈니는 세계 최대의 라이선스 상품 판매 업체로서 2순위 업체와 2배 이상의 차이를 벌리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는 테마파크 사업에서도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캐릭터 라이선스 사업을 시작한 디즈니는 라이선스 사업의 표준을 세웠고, 다양한 저작권자들의 교과서와 같이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미디어와 커머스가 융합되어 가는 컨버전스 시대에 접어들어 다양한 콘텐츠의 활용 및 상품화 전략을 사업에 녹여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새롭게 출범하는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즈니의 상품화 전략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캐릭터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에 따라 OTT 서비스 업체들이 제작 스튜디오에게 영상물의 독점공급 및 오리지널콘텐츠만을 요구하던 것에서 라이선스 권한을 요구하는 것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OTT 서비스 업체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라이선스 활용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를 통해 나이키, H&M 등과 컬래베러이션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2019년 6월에는 홍익대학교 인근 매장에서 팝업존을 열고 관련 상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해외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CJ E&M과 CJ오쇼핑의 합병 사례는 미디어와 커머스가 서로 다른 뿌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OTT로 인해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 변화가 국내외 캐릭터・라이선싱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 캐릭터 산업백서'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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