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의, 유튜브에 의한, 유튜브를 위한’ 책들의 전성시대! 엄청난 영향력의 유튜브가 출판시장까지 관여하며 유튜버셀러가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유튜버셀러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겠습니다.
‘흔한남매’는 공중파 유명 개그 프로그램 출신 크리에이터 장다운과 한으뜸이 만든 ‘병맛’ 유튜브 코미디 콘텐츠를 어린이들이 열광할 만화책으로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입니다. 아이돌 가수가 꿈인 초등 5학년 동생과 동생을 놀리는 재미로 사는 오빠가 등장하는 ‘흔한남매’는 한때 주요 온라인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만화는 145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에 조회 수가 100만이 넘는 영상이 즐비한 유튜브 채널을 만화로 만든 것으로 유튜브와 책을 결합한 ‘유튜버셀러’로 주목받았는데요. 유튜버셀러는 유튜브가 만든 베스트셀러를 의미합니다.
유튜버셀러는 초기에 학습용이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코미디 콘텐츠가 청소년용 책으로 만들어져 큰 파장을 몰고 오면서 유튜버셀러의 가능성을 크게 키우고 있습니다. ‘흔한 남매’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들이 초기에 책 구입을 선도했지만 책을 구입한 독자들이 다시 유튜브 채널에 가입하면서 유튜브와 책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시너지 효과가 만만치 않아 파장이 오래 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 선출판 후여과
소셜미디어(SNS)와 책을 결합한 출발점은 ‘블룩(blook)’입니다. 블로그(blog)와 책(book)의 합성어인 블룩은 2002년에 웹사이트 ‘버즈머신’을 운영하던 미국 언론인 제프 자비스(Jeff Jarvis)가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책으로 내면서 처음 알려졌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려서 충성고객을 확보한 뒤 아날로그 책으로 펴내는 블룩은 SNS에서 지명도만 확실하게 확보하면 메이저리그 스타처럼 뜰 수 있는 1인 전문가 시대 출판시스템의 출발이었습니다.
2006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네 권 중 한 권이 블룩일 정도였습니다. 블룩이 주목을 받자 출판기획자들은 온라인마케팅과 저자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알파블로거를 찾는 데 혈안이 됐습니다. 이후 등장한 트위터와 페이스북, 팟캐스트, 브런치, 유튜브 등은 모두 출판 콘텐츠의 생산기지가 되었습니다. SNS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장벽을 없애버렸습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영상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 또한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든, 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1인 크리에이터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생산자(쓰기)와 소비자(읽기)가 연동된 시스템을 부활시킨 SNS는 출판마저 하나의 구조에 연결시켰습니다. 지금은 초연결시대가 아닌가. 누구나 글을 써서 전 세계 사람과 즉각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과거에는 글을 쓴 사람이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면 편집자가 책으로 될 만한 원고를 골라 책으로 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SNS에 쓴 글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출판행위’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출판’된 것 중에서 독자 반응이 기대되는 원고를 편집해 책으로 펴내기 시작했습니다. ‘선여과 후출판’ 시스템이 ‘선출판 후여과’ 시스템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제 편집자들은 SNS에서 책이 될 만한 사례를 찾으려 혈안이 돼 있습니다. 편집자 출신으로 미디어학을 전공한 학자인 하세가와 하지메(長谷川一)는 이런 형태의 출판을 기존 출판 (Publishing)과 구별하기 위해 퍼블리킹(PUBLICing)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 유튜브는 책의 적인가, 친구인가?
지금 세계는 ‘모든 일이 유튜브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이던 유튜브가 중장년 세대로까지 확산됐는데요. 모든 세대에서 유튜브 사용시간이 급증하면서 영향력 또한 커졌고, 이제는 출판시장에서 유튜버셀러가 대세가 됐습니다. 북칼럼니스트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지난 10월 25일 한국출판학회가 주최한 제18차 출판정책 라운드테이블 ‘유튜버셀러 현상을 진단한다’에서 ‘유튜브는 책의 적인가, 친구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유튜버셀러를 1인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 등 인기 유튜버의 콘텐츠, 북튜버(책을 소개하는 유튜버)에 의해 소개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 그리고 유튜브 성공 스토리나 유튜브 제작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들이 인기를 얻는 경우 등 셋으로 구분했습니다. 그야말로 ‘유튜브의, 유튜브에 의한, 유튜브를 위한’ 책들의 전성시대인 것입니다. 그의 기준에 따라 최근 유행하는 유튜버셀러 현황을 살펴볼까요?
먼저 1인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 인기 유튜버의 콘텐츠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사례입니다. 블룩도 초기 단계에서는 김용환의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 배두나의 ‘두나’s 런던 놀이’, 황혜경의 ‘반나절이면 집이 확 바뀌는 레테의 5만원 인테리어’ 등을 비롯한 요리ㆍ육아ㆍ화장ㆍ여행 등 실용ㆍ취미 분야의 실용서가 대세를 이뤘습니다. 유튜버셀러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먹방, 쿡방, 게임, 뷰티, 키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책들이 인기를 주도하면서 개인방송의 영향력이 바로 책의 인기로 이어졌습니다.
1인 크리에이터들의 롤모델로 불리는 대도서관이 “나는 유튜브로 1년에 17억 번다”며 자신의 노하우를 알린 ‘유튜브의 신’은 유튜버셀러의 초기 장세에 불을 지폈습니다. 책이 나오면서 그는 수많은 강연과 방송에 불려 다녔는데요. 나이 71세 박막례와 오로지 할머니의 행복을 외치는 손녀 김유라 PD의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구독자 수 100만 명 돌파 기념으로 땡큐 에디션까지 선보였습니다. ‘올리버쌤의 영어 꿀팁’,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유튜브 이야기’ 등은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은 1인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가 저자로 변신한 대표 사례입니다. 이제 유튜버에는 나이와 직업, 관심 분야의 장벽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가장 강력한 출판 마케팅 방법
다음으로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인 북튜버(Book+Youtu-ber) 덕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례입니다. ‘겨울서점’의 김겨울 점장은 1세대 북튜버였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은 물론, 포장된 책을 개봉하는 ‘언박싱’이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올렸습니다. 구독자 수가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몇 년 만에 책방에 왔다’는 댓글이 달리면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북튜버의 주가를 한껏 키운 이는 인기강사 김미경입니다. 유튜브 채널 김미경TV의 ‘북드라마’에서 소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한꺼번에 진입하며 화제가 됐습니다.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말센스’ 등 올해 상반기 100위권에 오른 책 중 6권이 김미경TV가 소개한 책입니다. 김미경TV는 거의 잊혀져가던 책을 되살리기도 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은 2014년 12월 말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미경TV가 소개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출판사들은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유튜브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김미경TV에 책 한 권을 소개하는 데 500만 원 이상으로 광고비가 치솟았는데도 출판사가 줄을 섰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가장 강력한 출판 마케팅 툴이 유명 북튜버를 섭외하는 일로 바뀌었습니다. 김겨울과 김미경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들도 자체 유튜버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튜버가 아닌 구독자 다수를 보유한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도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튜버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한 책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구독자에게 도서 구매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유튜버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튜브 성공 스토리나 유튜브 제작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누구나 유튜버라는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지만 유튜버도 나름의 노하우를 필요로 합니다. 유튜브 영상 촬영과 제작 방법, 구독자수 늘리기 같이 노하우를 알려주는 실용서 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이야기’, ‘유튜브 젊은 부자들’, ‘나의 첫 유튜브 프로젝트’, ‘유튜브 구독자 100만 만들기’ 등 유튜브 실용서가 온라인서점 ‘크리에이터/1인미디어’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대부분 점령해 버렸습니다.
■ 영상시대에 책이란
유튜버셀러의 득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인가. 그렇다. 사회적 명망가와 인플루언서의 유튜브 개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책을 소개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지금은 문자와 영상이 상보적으로 결합하지 않으면 대중의 주목을 끌기가 어려운 영상시대입니다. 독자는 ‘읽는 사람’(reader)에서 ‘사용자(user)’로 바뀌었다가 다시 수집가(collector)가 됐습니다. 수집가는 닭이 모이를 쪼아 먹듯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골라서 소비하고 바로 건너뛰는 습관이 있습니다. 유튜브 콘텐츠는 텍스트, 동영상, 음악 같은 다양한 미디어를 결합한 멀티미디어 상품이어서 클릭 한 번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유통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상품을 대량복제하거나 유통하려면 엄청난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영상 기기를 활용해 콘텐츠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다. 1인 크리에이터가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기술에 ‘양날의 검’이 존재하듯 유튜버셀러에도 명암이 공존합니다. 책은 그 자체의 본성에 충실했을 때 생명력이 긴 법입니다. 유튜버셀러 또한 책이라는 점에서 새로움이나 신선함 이상으로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책이 꾸준하게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마다 잠시 화제를 끌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다가 감동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유튜버셀러도 책입니다. 엄연히 책인 이상 책의 속성부터 갖춰야만 합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문자 중심으로 소통되고, 영상은 보조수단일 뿐입니다. 유튜브는 영상이 중심이면서 문자가 자막으로 처리됩니다. 상보적으로 잘 결합돼야 합니다.
■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그러나 이걸 책으로 만들려면 책의 문법에 맞아야 합니다. 책은 어디까지나 문자가 중심이고 표나 그래프, 사진 같은 이미지와 영상은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문자는 가장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한,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입니다. 유튜버셀러도 짧은 글에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문장을 잘 다듬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유튜버셀러의 인기도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를 책의 홍보매체로만 한정한다면 이런 지적은 기우일 수 있습니다. 유튜버셀러에도 부정성이 벌써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책을 출간하면서 바로 자신들의 유튜브에 직접 홍보를 한 다음 자신이 멘토링을 하는 ‘멘티 군단’이 의무적으로 서평을 쓰도록 해 SNS에 노출시키는 ‘공식’을 사용해서 인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경우인데요. 이들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은 곧 모두에게 알려질 것이고, 이런 일이 일반화되면 신뢰할 수 없는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출판사들이 유튜버들의 책 소개를 순수한 추천이 아닌 홍보성 광고로 활용하려 드는 것도 이미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시네셀러’나 ‘텔레셀러’ 사례처럼 책을 영화나 드라마의 ‘파생상품’처럼 여기면서 과도한 비용을 들여가며 유튜버셀러 만들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멘토와 멘티를 표방한 특정 그룹들이 댓글부대로 활동하면서 단기간 내에 책에 대한 주목도를 상승시키고, 독서모임을 표방한 구매 집단은 일시적으로 책을 구입해 순위를 끌어올리는 행위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일부 유명 유튜버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출판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시장이 진정으로 활성화되려면 책을 본원적 상품으로 만들려는 정성을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야만 합니다.
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N콘텐츠 14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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