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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

웹툰 작가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 이종범 작가가 말하는 건강 관리의 필요성

by KOCCA 2019. 12. 9.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

 

 

 

웹툰 작가로 산다는 것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문제일까요? 건초염, 습관성 탈골, 불면증... 웹툰 작가들은 '연재'와' 마감'을 반복하는 고된 작업이 끊임없는데요.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반면에 건강이라는 아주 중요한 구간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웹툰 작가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종범 작가'의 생각을 들어 보았는데요.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에 건강의 8할을 바치고 이미 망친 건강을 되찾고자 고군분투 중인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 이종범 작가는 대체 왜, 이 글을 쓰게 됐는가

 

웹툰 작가의 건강관리라는 주제로 글을 쓸 작가를 정하는 편집회의에서 제가 지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한 분이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이종범 작가 안 건강한데 많이 안 좋은데.” 저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열심히 건강을 지켜내는 작가로 자주 오해받는데요. 이러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운동 왕이었던 그는 왜, 건강을 되찾고 싶은가

 

시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하드웨어는 튼튼한 편이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든 것을 만화로 습득한 저는 자연스럽게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의 <슬램덩크>의 이끌림을 받아 농구 소년이 되었습니다해적판을 구해서 본 코야마 유우의 <스프린터>를 보고 달리기를 연습하다가 중학생 때는 육상부에서 200m 선수가 되었고만화와는 무관하지만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씨름부에 들어가서 용사급으로 모래판을 누비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이랬습니다.

 

 

 

퇴행성이 아닌 마찰성 관절염이
넓적다리 관절에서 심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운동을 오늘부터 금지하세요."

 

 

이후로 20년 동안 제 삶에서 운동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망한 부자의 3년처럼 저는 그 뒤 20년 가까이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체력과 근력으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씩 해야만 했던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도 밤샘해가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의 제 얼굴 옆에는 언제나 이때는 몰랐다내가 그렇게 되기라는 것을 같은 내레이션 박스가 붙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자면 저는 현재 심각한 허리디스크 질환과 초기 단계의 목 디스크 질환을 갖고 있습니다. 이마의 모근은 절벽에 매달린 악당의 손아귀 힘처럼 점점 약해지는 것인지 매일 단말마 속에서 조금씩 모발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이마가 이렇게 넓었나복부의 내장지방은 흡사 대항해시대의 영국이 식민지를 넓히던 기세로 위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도 절대 땅으로 떨구지 않고 배로 막아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이미지 출처 : <닥터 프로스트> OST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 벅스뮤직)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 2를 연재하던 당시의 일입니다. 작업실 건물의 샤워실에서 처음으로 디스크 질환에 의한 전신 마비가 왔습니다엄밀히 말하면 마비가 아니고 지독한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셈이지만그 자세 그대로 바로 옆 수면실에서 3일 동안 누워만 있었습니다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1년 뒤에는 원고를 그리던 자세 그대로 똑같은 증세가 덮쳐왔습니다. 이번엔 구급차가 와서 저를 싣고 갔습니다.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경각심을 느끼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되어줍니다.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두들기면서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건강해지는 건가, 이제 연재 중에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 없이 작품을 완결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열심히 하는 저를 좋게 봐주신 관장님이 프로 테스트를 목표로 해보자는 말을 건네자마자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어 관두게 되었습니다. 대략 여기까지가 3년 전까지의 제 상태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재무제표로 치자면 부도 직전나라로 치면 조만간 IMF가 찾아올 지경인 셈입니다그리고 현재 저는 마흔을 2년 앞두고 다시금 총체적인 건강 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한 달을 보낸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이 글의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의 저를 향한 일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합니다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입니다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납니다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수면 패턴입니다마감 직전의 철야는 마감 직후의 방종으로 이어지게 되고 수면 패턴의 붕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체중 증가모공 약화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운동 부족입니다주로 앉아서 작업하며 에너지의 대부분은 뇌에만 할당하는데요뇌가 근육이었다면 세계 최고의 뇌 근육을 자랑할 종족이 작가입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뇌는 배은망덕하게도 주는 족족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약화되는 건 온몸의 근골격계입니다허리와 어깨손목이 약화되기 시작합니다좋은 점은 이 외에 나빠질 부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이 부위들이 아주 처참하게 망가진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조언이라는 것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게 마련입니다선배 작가교수어른부모들이 하는 말들은 조언의 형식을 띠는 순간 거꾸로 든 컵의 물처럼 흩어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리는 조언의 대명사가 바로 운동하라라는 조언입니다흡사 불볕더위 속 아스팔트 위의 드라이아이스 같습니다. 저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대사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들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그 정도로 빨리 사라집니다.) 그 누구도 이 조언을 듣자마자 그래맞아운동할 거야당장 시작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앞서 말했듯 두려움과 고통은 최고의 동기부여 버튼이 되어주지만건강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보통 낡은 중고차의 제로백처럼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몸으로 체험한 고통이 동기를 유발한다면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삶을 위한 동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채워진다는 뜻입니다흔히들 웹툰 연재를 마라톤에 비유합니다그러나 절대로 연재 준비는 마라토너같이 하지는 않습니다그래서 보통 첫 연재 때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쟁여둔 체력을 전부 탕진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그 덕분에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그동안 클릭할 수 없도록 회색이 되어 있던 건강관리와 운동이라는 버튼이 활성화됩니다.

 

 

주위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자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운동이 필요하다고 기껏 이야기해 놓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필요 때문에 하는 행동은 지속 기간이 짧습니다반대로 가장 오래가는 행동은 쾌락에 의한 행동입니다즉, 자신이 어떤 종류의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모순이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즐거운 운동을 만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끝끝내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할까?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할까?"고민해본 적 있으신가요? 전자라면 당장 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동호회나 클럽에 가입하는 편이 좋습니다. " 나는 특정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할까?" 그렇다면 "그 스포츠는 몸을 소비하는 쪽의 스포츠일까 단련해주는 스포츠일까." 전자라면 새로운 종목을 찾아볼 일이고 후자라면 매진하면 됩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이 대부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제 경우 기나긴 여정 끝에 찾아낸 운동이 바로 탁구와 맨몸 근력운동니다. 전자는 운명적으로 만났고 후자는 필요 때문에 도전했다가 매력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운동이 어렵다면 한껏 기준을 낮춰보시기 바랍니다. 비밀을 한 가지 말하자면어렵지도 않고 효과는 엄청난 건강관리의 핵심이 있습니다투자 대비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좀 이상할 지경입니다그건 바로 이른 수면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귓가에서 광속으로 흩어지는 조언이 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체험에 기반을 둬서 말하자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밤 10시가량부터 활성화되는 특정 호르몬들에 의해 체중이 줄기 시작하고 이미 망가진 몸이 강해지는 효과까지는 없겠지만 만성적인 무력감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너무 뻔한 방법이지만, 뻔한 만큼 당연한 이유로 작가들은 이 방법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이른 수면과 주 5일의 운동을 시작한 지 6주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7㎏의 체중을 감량했고 요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던 이마와 머리선 사이의 비무장지대가 조금씩 녹지가 돼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글을 마치려니 비참한 고해성사로 시작해서 다단계 영업같이 끝나버리는 글이 된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작가들 대부분의 귓가에서는 활자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고 있지 않을지. 다 이해합니다. 저도 작가로 살고 있으니까요. 저처럼 건강을 잃은 뒤에야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줄 사람은 없고 그런다고 따라올 종족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한가지 기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낀 그 순간. 부디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길 바랍니다.

 

 

 이종범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정기 간행물 <지금, 만화 VOL.12>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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