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대만의 청춘드라마 <유성화원(流行花园)>에 열광하던 중국은 2010년대 들어서면서 동영상 플랫폼의 비약적 성장에 힘입어 자국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청춘드라마를 경쟁적으로 제작했습니다. 특히 2016년부터는 청춘드라마가 자살, 낙태, 불치병 등 어둡고 식상한 소재에서 탈피해 마음을 간지럽히는 달달한 소재로 바뀌었고 이는 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중국의 젊은 시청자들은 청춘드라마의 어떤 면을 좋아하고, 지금과 같은 청춘드라마 열풍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대표적인 두 청춘드라마의 사례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미미일소흔경성> 초현실적인 우연이 낭만으로 다가오다 '
<미미일소흔경성(微微一笑很傾城, 영문명 Love O2O, 이하 미미)>은 상하이 쥐쿠문화전파유한공사(上海剧酷文化传播有限公司)가 제작해 2016년 8월 장쑤TV와 둥팡TV, 유쿠(优酷视频)에서 방송한 30부작(편당 40분)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인기작가 구만(顾漫)이 2008~2009년간 인터넷에 연재한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구만은 이 소설로 2010년 “제3회 중국 온라인문학 최우수 작가상”을 수상하고 탄탄한 팬덤을 확보했습니다.
대학 퀸카인 베이웨이웨이(贝微微)는 게임 엔지니어가 꿈이며 루웨이웨이웨이(芦苇微微)라는 아이디로 온라인게임 ‘신 천녀유혼’을 즐겨합니다. 게임 속 미션으로 닉네임 진수무향(真水无香)과 가상결혼을 하지만 사진 업로드를 거절했다가 무참히 이혼당하고, 커플 게임에서 우승하기 위해 게임 세계 절대고수인 일소내하(一笑奈何)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을 합니다. 게임 세계에서 의기투합했던 두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 같은 대학 선후배임을 알게 되고, 캠퍼스 킹카인 남주인공 샤오나이(肖奈)는 우연히도 게임 개발 테스트 책임자여서 결국 두 사람은 허구와 현실 세계 모두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가다 결혼에 성공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드라마는 2016년 온라인 누적 조회 수 88억 뷰, 온라인 평점 9.9점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TV 시청률 역시장쑤TV에서 최고 1.042로 시장점유율 3.25%를 기록하면서 중국 지상파 방송에서 대박으로 간주하는 시청률 1%를 넘어섰고 이는 당해 중국 성(省)급 TV 방송국 골든타임 드라마 중 3위 시청률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같은 해 동명의 영화와 만화가 연달아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남녀 주인공의 우연한 만남이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극 초반 다소 황당한 장면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남녀 주인공의 매력이 큰 몫을 담당했습니다. 원작 소설이 이미 흥행작이었기 때문에 남녀 주인공 캐스팅은 매우 부담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누적 조회 수 11억 뷰로 유명한 웹툰 <치즈인더트랩>을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할 당시 캐스팅 과정에서 네티즌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과도 유사한 현상인데요. 결국 당시 <국민남편 길들이기(国民老公)>로 스타덤에 오른 양양(杨洋)과 떠오르는 신예 정솽(郑爽)을 캐스팅해 무명신인 등용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했습니다.
또한 인물 묘사에서도 기존 청춘물의 공식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기존 청춘물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치부되던 여주인공이 <미미>에서는 남주인공에 비해 손색이 없는 미모와 능력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면서 젊은 여성 시청자들의 변화한 위상을 대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여자친구에 대해 100% 순정과 신뢰를 보이는 직진남 샤오나이의 매력에 10대, 20대 여성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일례로 샤오나이를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서브여주 멍이란(孟逸然)은 웨이웨이에 대한 추문을 샤오나이에게 고자질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 합니다. 그러나 샤오나이는 그녀의 말을 단칼에 무시하고 “내 여자친구의 일은 그녀에게 직접 들을 거야”라고 잘라 말하며 여자친구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입니다. 또한 농구 경기장, 고고학 강의실, 식당 등에서 샤오나이가 등장하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남주인공의 매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드라마 분위기가 경쾌하고 발랄하며 전개가 전혀 답답하지 않다는 점도 흥행 요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성인이지만 함께 식사를 하거나 자습을 하고 당구를 치거나 게임을 하는 등 캠퍼스 커플의 소박한 데이트를 이어가며, 가장 친밀한 스킨십이라고 해도 포옹이나 손을 잡는 수준에 그쳐 아기자기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또한 <미미>에서는 과거 청춘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최대 걸림돌이 되었던 부모의 반대가 없습니다. 샤오나이의 부모는 대학교수이며 웨이웨이의 부모는 일반 회사원입니다. 이러한 신분의 차이를 들먹이며 교제를 반대할 수도 있으나, 샤오나이의 부모는 웨이웨이 소속 학과장의 칭찬을 듣고 첫 만남 때부터 웨이웨이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심지어 샤오나이가 회의 참석 때문에 출장을 가게 되자 아들을 대신해 직접 웨이웨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 <치아문단순적소미호> : 순수했던 고교시절을 추억하다 '
웹드라마 <치아문단순적소미호(致我们单纯的小美好, A love so beautiful, 이하 소미호)>는 2015년 출판된 자오첸첸(赵乾乾)의 인기 동명 소설을 각색해 화처미디어(华策影视)와 텐센트TV가 공동제작한 23부작(편당 45분) 작품입니다. 매사에 덜렁거리지만 명랑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녀 천샤오시(陈小希)와 잘생기고 과묵한 모범생 장천(江辰)이 고등학생 때부터 성년이 되기까지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힐링 드라마’입니다. <소미호>는 2017년 9월 텐센트TV에서 독점 방영된 후 2018년 3월 23일까지 누적 조회 수 34.4억 뷰를 기록했고 텐센트 TV 평점 8.9점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한 수많은 청춘물 중에서 <소미호>가 돋보인 것은 참신함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복잡한 인간관계를 지양하고 ‘단순’하고 순수한 관계를 묘사합니다. 남녀 주인공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고 내내 같은 학교, 같은 반인 데다 양가 부모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20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손을 잡는 순수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장천이 천샤오시를 업고 가는 장면에서 천샤오시가 장천의 등에 업혀 부끄러워하며 미소 짓는 모습에 줄거리를 모르는 시청자들까지도 천샤오시의 사춘기적인 달달함과 풋풋함에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장천이 천샤오시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하는 소심한 장난과 진심어린 말을 확인하면서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됩니다.
둘째, 현실을 기반으로 한 디테일에 강합니다. <소미호>에서는 선생님의 잔소리, 끝없는 숙제와 시험, 헐렁한 교복과 같은 학교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흔히 경험했을 일도 많이 등장합니다. 한 예로 여주인공 천샤오시의 엄마가 족발집을 개업하려 하지만 위생허가증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위생국에서 일하는 동창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설득하지만 남편이 이를 거절하면서 이혼 위기까지 갈 정도로 다툽니다. 또한 막장 드라마적 요소가 없는 대신 학창 시절에 누구라도 한번쯤 겪었을 고민과 문제들-부모와의 세대차이, 학업스트레스, 대학입시, 대학생의 취업문제 등을 다루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례로 장천의 어머니는 아들이 칭화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장천은 “수학은 아버지의 꿈이고, 칭화대학은 어머니의 꿈”이라며 자신은 저장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당당히 밝힌 후 자신의 의지대로 훌륭한 의사가 됩니다.
셋째, 모든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일반적으로 남녀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가 대부분인 것과 달리 <소미호>는 주변 인물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드라마의 생동감을 높였습니다. 주인공 천샤오시나 장천 뿐만 아니라 린징샤오(林静晓)나 우보쑹(吴柏松), 루양(陆杨), 리웨이(李薇)까지 현실에서 있을법한 친근한 인물이 대거 등장하면서 시청자들도 이 중 한 배역에 자신을 대입해 극에 몰입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화면과 경쾌한 음악도 인기몰이에 한몫을 했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잔디밭, 분위기 있는 가로등 불빛 등 배경에 풋풋한 주인공들이 매칭이 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에 “너의 눈, 속눈썹, 거만함을 좋아해. 너의 보조개, 입가, 미소를 좋아해. 내가 널 좋아하는 건 온 세상이 다 알아”와 같이 솔직담백한 가사와 달콤한 선율이 더해지면서 드라마의 매력을 배가시켰습니다.
' 중국의 청춘물 열풍은 지속될까? '
<미미>나 <소미호>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근 중국의 10대, 20대 시청자가 캠퍼스 청춘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기존의 막장 드라마에 대한 거부감, “첫사랑이 곧 끝사랑”이라는 공식이 주는 낭만, 한국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학창 시절에 대한 동경 또는 향수, 잘생긴 남주인공과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의 풋풋한 조합이 주는 매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청춘드라마가 주로 웹드라마 형태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검열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소재를 택할 수 있고, 지상파가 갖는 ‘일극양성(一剧两星, 한 드라마를 최대 두 개의 방송국에서만 동시 방영할 수 있게 제한하는 조치)’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짧은 분량, 빠른 전개, 웹소설이나 웹툰을 기반으로 한 제작,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유통 등 캠퍼스 청춘물에서 가속화된 중국 방송영상콘텐츠 시장 전반의 변화는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캠퍼스 선남선녀의 발랄한 사랑을 주제로 한 청춘드라마의 제작열풍은 중국의 10대, 20대의 취향을 저격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제작자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따라서 해당 수요가 있는 한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한 캠퍼스 청춘물 제작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실제로 2019년에도 여전히 유사한 주제와 포맷의 청춘물이 방영되었습니다. 취업준비생을 주인공으로 한 <치아문난난적소시광(致我们暖暖的小时光)>, 학창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아지희환니(我只喜欢你)>나 <등등아!아적청춘(等等啊!我的青春)>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패션, 음악에 유행이 있듯이 드라마에서도 특정 소재가 영구적으로 사랑받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캠퍼스 청춘물도 어느 순간 소비자의 눈에 다 비슷하게 비칠 것이며, 실제로 이미 시청자의 피로감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전화(振华)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춘소설 3부작의 드라마 흥행성적을 살펴볼까요? 2016년 1부로 제작된 <최호적아문(最好的我们)>은 평점사이트 도우반(豆瓣) 평점 8.9, 누적 조회 수 27억 뷰를 기록하며 2016년도 전체 중국 드라마 중 조회 수 2위를 차지하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7년 방송된 2부 <니호, 구시광(你好,旧时光)>도 평점 8.7에 조회 수 14억 뷰를 기록하며 당해 중국 웹드라마 부문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6월 방송된 3부 <암련·귤생회남(暗恋·橘生淮南)>은 2019년 10월 3일 기준 평점 6.7, 조회 수 1.2억 뷰의 성과에 그쳐 1, 2부의 흥행에 크게 뒤쳐졌습니다. 이처럼 비슷비슷한 설정의 캠퍼스 청춘물에 시청자가 식상해하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사랑 이야기에 스포츠나 교육 등을 접목한 청춘물이 등장하는 등 소재가 다양해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글 노수연(고려대학교 글로벌학부 교수)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기간행물 "방송트렌드&인사이트 20호"에 게재된 글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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