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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마블의 경제효과 1조원’에 담긴 콘텐츠 손익계산법

by KOCCA 2018. 2. 15.

 

한류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문화콘텐츠를 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보편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사드 배치 영향을 논할 때에도 콘텐츠산업의 피해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천만 관객 흥행을 이끈 영화가 탄생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수익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이제는 익숙합니다.

 

 

특히 콘텐츠 산업의 경우 본연의 수익 외에 부가가치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기계 의존율이 낮아 고용효과도 높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매체를 통한 수익도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고흐의 그림으로 구성된 영화 <러빙 빈센트>에 대해서도 영화의 스토리나 구성보다는 100여 명의 화가를 동원해 고용 창출 효과가 컸다는 이야기가 더 회자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국내 영화산업의 매출액은 약 2조 원 정도인데, 영화산업이 직간접적으로 올린 생산액과 부가가치는 총 6조 원이라는 발표도 이러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고용창출 능력이 제조업을 넘어선다는 이야기도 빠짐없이 등장하곤 합니다. 이러한 논의를 살펴보면 다른 산업에 대한 담론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 부가 이익이 생겨났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마블의 경제효과 1조 원이라는 이야기 안에 마블이 실제로 벌어들인 수익은 거의 포함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산업도 다른 분야에 미치는 효과에 이렇게 집중한 적이 없습니다. 특정 산업의 전방 효과, 후방 효과 등을 논하는 경우는 있지만, 본 산업 자체보다 주변 효과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됐는지 한 번 의문을 가져봄직 하지 않을까요?

 

() 고흐의 그림으로 구성된 영화 <러빙 빈센트>, () 마블의 <어벤저스>

 

 

이것은 다른 산업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문화 산업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들로부터 기인했습니다. 특히 영화 산업은 태생적으로 규모가 그다지 커질 수 없다는 점이 첫 번째 시발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영화 산업은 어느 나라에서든 대체로 산업의 규모가 작습니다. 전체 산업 규모도 작지만 기업들 규모도 작고 영세한 곳이 많습니다. 미국의 할리우드처럼 엄청난 규모로 산업이 성장한 나라도 있지만,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생산액’, ‘수출액’, 또는 생산 비중으로만 본다면 영화산업은 결코 많은 이들의 주목을 크게 끌만한 분야는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산업의 규모가 이렇게 작은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것이 이 산업 종사자들이 성실하지 못하거나, 혹은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조차도 이 산업의 특성 때문입니다. 문화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일컬어지는 보몰과 보웬은 이러한 특성에 대해 보몰의 비용 압박(Baumol’s Cost Disease)[각주:1]라고 정리했습니다.

보몰의 비용 압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보몰은 경제 전체가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로 나뉜다고 보았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대표 산업이 제조업이라면, 문화산업은 대표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산업입니다. 이런 경우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산업에서는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노동 비중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생산원가도 저렴해질 수 있습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원가가 떨어지니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고, 판매량도 크게 늘어나 시장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후자의 산업은 이와 다릅니다. 후자의 산업에서는 각종 비용은 상승하지만, 산출물 가격을 올리기 어려워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곤 합니다. 투입되는 노동력의 질에 따라 산출물 수준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무작정 노동 비중을 줄일 수도 없습니다. 노동 비중이 높다 보니 원가도 높게 유지돼 판매 가격도 높습니다. 생산 형태는 이탈리아 명품 가방을 만드는 구조와 유사하지만, 생산품을 명품 가방 가격으로 받을 수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에 따라 후자의 산업은 비용 압박에 직면해 성장 자체가 매우 둔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절한 노동력을 조달하는 것도, 진입하는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기도 어렵고, 이에 따라 시장도 커지기 어렵습니다. 집에 있는 자녀가 저 커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밥 굶는다, 접어라라고 말하는 상황이 개선되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용 압박 속에 근근이 연명해 나가던 산업이 시장 가격을 넘어서는[각주:2]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다른 활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상품은 단지 시장 가격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이 산업을 존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공공재란 외부효과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편익을 제공하지만, 시장 기능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분야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가 큰 성공을 얻게 되면 생산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편익들이 발생합니다. TV드라마라면 특별히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고아고 몇 편을 보는 대가로 사람들이 좋은 문화상품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편익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영화, 드라마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관광을 오기도 하고, 매체 안에 나온 의류나 식품, 화장품의 판매가 증가하기도 합니다. ‘한류라는 카테고리가 형성되면서 한류와 연결된 여러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영화를 만든 생산자는 적자를 보거나 도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우는 숱하게 많았습니다. , 영화상품은 생산자와는 무관한 여러 사람들이 가치를 즐기고 이를 활용할 기회도 얻는다는 점에서 공공재와 비슷하지만, 생산자는 비용 압박등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산업을 어찌해야 할까. 정부가 지원을 해서라도 공공재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이런 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런 논리 전개에서 필연인 것은 실제로 이 산업이 공공재로 여겨질 만큼 다양한 가치, 효과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명된다면 보몰과 보웬의 말처럼 정부는 지원도 해야 하고, 이 산업의 종사자들은 어려운 여건을 해소할 수 있는 젖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의욕적으로 도입된 것이 경제효과추정이었습니다. 사실 문화와 경제는 이질적인 면이 많은 분야입니다. 문화와 정치 혹은 문화와 사회와 비교할 때 문화와 경제는 훨씬 그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만약 문화산업이 이미 잘 알려진 정치적 사회적 가치 외에 경제적 가치까지 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공공재로 자리잡는 것은 수월해집니다. 가장 취약했던 면에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콘텐츠 산업의 경제 효과를 추정하는 것은 여러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작업이 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한류의 경우 작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한류의 수출 파급효과 중심으로 경제효과를 추정하는 것이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 근접성의 교역 증진 효과와 같은 교역이론들이 보완된 것도 중요했습니다. 한류를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즉 비슷한 문화상품을 많이 공유할수록 해당 국가와 문화적 근접성이 높아져 다른 소비재를 선택할 때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밝혀졌기 때문[각주:3]입니다.

이러한 접근들 덕에 한류 수출이 타 소비재 수출을 견인한다는 것이 경제학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 기반 하에 다양한 경제효과 추정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해외에서 호평 받은 국내 영화 <부산행>

 

 

이렇듯 영화의 성공과 함께 등장한 경제효과에 대한 높은 관심은 영화산업이 성장하고 정착하면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어떤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과 맞아 떨어져야 하듯, 우리의 콘텐츠 산업 발전 수준에서는 그런 접근이 매우 필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콘텐츠 산업의 기초를 보강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면, 다시 내부로 눈을 돌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했던 제조업 중심의 시대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한 융합의 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제조업에 비해 비용 압박이 높아 슬픈 산업이었지만, 이제는 그 우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콘텐츠의 외부 효과는 당연한 현상이니 어떻게 하면 내부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어벤저스> 영화가 관련 상품들을 얼마나 팔아들이고 있는지 보다는, 어떤 점 때문에 <어벤저스>가 성공했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산업의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콘텐츠의 경제효과에 대한 논의 틀도 이제 한 단계 높여야 할 때가 됐습니다.

 

 

. 김윤지(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1. Baumol, W. J. & Bowen, W. G.(1966), Performing Arts : The Economic Dilemma, New York : The Twentieth Century Fund [본문으로]
  2. ‘Beyond Price’(2008), Hutter, M, & Throsby, D(eds), Cambridge Univ. [본문으로]
  3. 이에 대해서는 ‘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 2016 어크로스)’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