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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방송 영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컨셉 디자이너의 세계 (Steve Jung 강연)

by KOCCA 2011. 9. 29.

 

 




9월 27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헐리우드의 한국인 컨셉 아티스트인 'Jung Park(한국명 박정호)'과 'Steve Jung(한국명 정우민)'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컨셉 아티스트는 영화, 게임, TV드라마, 쇼 프로그램, 광고 등의 모든 시각적인 부분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최근 미국에서 각광받는 직업이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직업이에요. 두 컨셉 아티스트는 본인들이 하는 일과 일의 진행 방식 등에 대해 자세히 강연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로 강연을 시작한 Steve Jung은 영화 'TRON', '토르: 천둥의 신', '트랜스포머 2' 등 헐리우드의 굵직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컨셉 디자이너를 담당했습니다. Jung Park과 함께 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RedEngine의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Steve Jung은 컨셉 디자이너가 실제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어떻게 참여하게 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는데요. 지금부터는 그의 말을 빌어 컨셉 디자이너의 세계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컨셉아티스트는 한마디로 시각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영화나 TV쇼, 광고 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이나 의상 디자인, 놀이동산 등의 디자인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컨셉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셉 디자이너들은 풍부한 상상력이 제일 필요하고요. 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감독이나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800명이나 되는 스텝에게 아무리 말로 설명해봐야 이해시킬 수 없죠. 영화가 갈 방향에 대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컨셉 디자이너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의 컨셉아트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벽에 붙여서 스텝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합니다. 이걸 보면 영화의 색감이나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죠. 그럼 컨셉 디자이너가 영화에 참여하는 과정을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감독이나 작가가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기면 영화사에 이를 제안하기 위해 저희를 고용합니다. 저희는 영화의 시놉시스만을 보고 그 영화를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8~10장 정도 그리죠. 컨셉 디자인 없이는 영화가 시작될 수 없습니다. 감독들이 그 그림을 가지고 가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계약을 성사시키는 겁니다.

 

이때는 디자인보다는 다이나믹한 일러스트가 더 중요합니다. 영화에 나올 캐릭터들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하죠. 포스터가 나오면 이런 느낌이겠군, 이런 캐릭터가 나오겠군 하는 걸 생각하도록 해줍니다. 이걸 보고 시놉시스를 읽게 되면 영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제작이 시작되면 대본을 받아 읽기 시작합니다. 읽으면서 어떤 세트가 필요한지, 어떤 소품이 필요한지 파악합니다. 감독과 작가와 함께 얘기를 많이 나눈 후 본격적인 디자인에 들어가는 데 이 단계에서 자료도 많이 찾고 연구도 많이 합니다.

 

사실적이고 믿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하려면 많이 참고를 해야 합니다.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가짜같으면 나쁜 디자인이죠. 외계인도 있을 법한 디자인이어야 하고 기계적으로도 이해가 돼야 하죠. 로케이션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뉴욕 신을 뉴욕에서 찍지 않고 다른 도시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트를 뉴욕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뉴욕의 사진을 많이 찍어오면 참고에 도움이 됩니다.

 

▲ 영화 트론의 컨셉 아트

 

▲ 영화 트론의 한 장면

 

영화의 장면을 정하는 컨셉 디자인을 하면서 세트 디자이너와 세트를 담당하는 아트 디렉터, 모델러들과도 많은 얘기를 합니다. 위의 사진은 영화 '트론'을 위해 만든 저의 컨셉 디자인이고 아래 사진이 실제 영화에 사용된 장면입니다. 컨셉 디자인은 영화와 거의 비슷하게 나옵니다. '이런 느낌의 세트다'라고 제안하면 영화에서 그렇게 나오게 되는 거죠. 세트를 보면서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걸 빼야할지를 결정하고, 배우들의 움직임을 컨셉 디자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컨셉 디자인의 캐릭터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가 누가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수염이나 흉터, 총, 옷 등의 디테일을 통해 캐릭터의 느낌을 미리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림 한 장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착한지, 나쁜지, 쿨한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캐릭터 디자인을 보고 감독이 떠오르는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스케치만으로 대략적인 느낌을 빠르게 보여줍니다. 디자인은 빨리 해야 좋습니다. 감독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줘야 하기 때문이죠. 감독이 보고 원하는 걸 고르면 그 다음 단계로 가서 일러스트를 만듭니다. 이것으로 전체적인 움직임이나 느낌을 결정하게 됩니다.

 

 

 

실제 영화 작업에서 컨셉 디자이너가 하는 역할을 자세히 알려준 그의 강연을 들어보니 컨셉 디자이너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작업에 관여하며, 감독과 작가의 생각을 대신 보여주는 손과 발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헐리우드 영화는 이처럼 철저한 사전 작업이 있기에 통일감 있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컨셉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대부분 감독의 생각이나 시나리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계적인 제작 환경과 높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전문적인 컨셉 아티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