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종종 뮤지션을 인터뷰하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고민하는 것은 공통 질문, 즉 뮤지션 소개에 관한 질문인데요. 장르에 대한 질문을 넣자니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장르를 아예 묻지 않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아무래도 장르를 먼저 이야기하면, 음악색을 상상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지니까요. 그러나 요즘은 음악 장르를 묻는 질문에, 많은 뮤지션들이 '우리의 음악을 한 가지 장르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고 답합니다.
한 가지 음악 안에도 여러 장르의 특색이 공존하고, 세부 장르의 경계는 사실상 허물어졌죠. 그런데, 케이팝과 인디음악 중 어떤 장르에 속하냐고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뮤지션은 망설임 없이 하나의 장르만을 택할 겁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질문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아이돌 위주의 케이팝, 그리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인디음악은 이처럼 자신만의 영역이 명확합니다. 한국의 대중음악이라는 공통분모에서 나왔지만, 케이팝과 인디음악은 별도의 장르로 간주하고, 따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굳건해 보였던 이 경계마저, 최근에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인디밴드와 아이돌 가수의 콜라보레이션이 흔하게 이루어지고,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는 인디밴드도 조금씩 늘어났어요. 또한, '아이돌의 명가'라고 불리던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 역시 기존의 플랫폼과는 다른 서브 레이블을 설립하여, 다양한 장르 음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과 기름으로 여겨지던 케이팝과 인디음악, 이들의 아찔한 동행은 가능한 일일까요?
지난, 6월 22일 수요일 오후,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는 음악산업에서 주목할만한 움직임을 논하는 <제1차 K-뮤직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K-뮤직포럼의 주제는 "케이팝과 인디음악의 만남"이었는데요. 여러 실무자들이 패널로 참석한 가운데, 1세션은 "서브 레이블을 장착한 메이저 기획사"에 대하여, 그리고 2세션은 "글로벌 페스티벌을 빛내는 인디뮤지션"에 대하여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음악산업계의 핫이슈를 다루는 만큼, 궂은 날씨에도 장내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제1차 뮤직포럼>에서 오갔던 이야기, 함께 보시죠!
▲ 사진 1.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신인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 "K-루키즈"에 선정되었던 뮤지션 "신현희와 김루트" 최근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인디레이블 (주)문화인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정규앨범 <신루트의 이상한 나라>를 발매했다.
이달 초,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인디레이블 "(주)문화인"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실, 유수의 메이저 기획사는 이미 많은 수의 서브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인디'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레이블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죠. 대자본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전제로 하는 '인디' 문화가, 자본력을 갖춘 메이저 기획사에서 만들어지는 현상.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들릴 겁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갸우뚱하면서 격려의 목소리와 우려의 시선을 함께 전하고는 했는데요. 이번에 전해진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인디레이블 설립 소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파급력을 이끌어냈습니다.
로엔엔터테인먼트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음원 서비스 "멜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수년째 유료 사용자 수 1위를 자랑하는 음원사이트 멜론은 약 60%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기에, 로엔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유통 및 배급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악 산업의 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예측이 이어지면서, 음악 산업 관계자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요. "인디 음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대자본의 문어발식 산업 확장", "대자본의 개입은 결국 인디 음악의 자율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반면에, "다양성과 실험성을 갖춘 인디음악이 잘 갖추어진 플랫폼에서 유통될 때의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음악 산업의 뜨거운 감자, 메이저 기획사의 인디레이블 런칭 현상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요?
▲ 사진 2. 1세션 토론 모습
(왼쪽부터) 임진모 음악평론가, 김윤하 음악평론가,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
홍정택 YG엔터테인먼트 사업개발팀장, 장규수 연예산업연구소장
1차 뮤직포럼에 참여했던 음악산업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당연한 현상, 더 나아가 음악 산업이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 합니다. 타블로 씨를 중심으로 혁오, 검정치마 등이 소속되어 있는 YG 산하레이블, "하이그라운드"의 예를 들어볼까요? YG엔터테인먼트 사업개발팀의 홍정택 팀장님에 따르면, 레이블 "하이그라운드"를 처음 런칭할 때, 메이저 레이블과 인디 레이블을 구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대중음악을 메이저와 인디,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따라서 "하이그라운드"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인디레이블'이 아니라, "YG 스타일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창구"라고 해요.
음악색 외에도, YG와 하이그라운드에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는데요. 하이그라운드 소속 뮤지션들은 이미 프로듀싱 실력을 갖추고 있고,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가 뚜렷하기에, 회사가 프로덕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회사는 음악을 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음악 유통과 관련된 이슈 등을 담당하는 것이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뮤지션은 오롯이 자신의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각 뮤지션의 음악적 개성과 자율성 역시 극대화될 수 있겠죠.
▲ 영상 1. 검정치마의 <기다린만큼, 더> 뮤직비디오
하이그라운드 소속 아티스트 "검정치마"는 인기 드라마 <또 오해영>의 일곱 번째 OST를 담당했다.
음악평론가 김윤하 씨는 로엔엔터테인먼트의 행보가 그간 다른 메이저 기획사와는 다르다는 점을 짚어주셨습니다. 그동안 메이저 기획사들은 서브레이블을 설립할 때, 뮤지션만을 영입해서 자사의 인프라를 제공하고는 했는데요.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서브레이블 "문화인"은 경영에서부터 인디음악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인사들이 참여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문화인"은 메이저 기획사와 인디레이블의 합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문화인"이 성공적으로 자리잡는다면, 음악 산업 전반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것 같은데요. 기존의 서브레이블과 같은 듯 다른, 새로운 레이블 "문화인"은 음악 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지, 미래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사진 3. 1세션 토론에 참가한 김윤하 음악평론가
김윤하 평론가는 더 나아가, 메이저 기획사가 런칭하는 '인디레이블'은 그 단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인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상, 대자본 개입에 대한 찬반 논의와 그에 따른 인디 음악의 정체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메이저 기획사가 설립하는 레이블은 그 음악색과 상관없이, '서브 레이블' 또는 '산하 레이블'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MPMG의 이종현 대표님 역시 이에 동의하셨는데요. 대한민국에서 메이저와 인디의 경계는 자본력이 아닌 '방송 출연 유무'라면서, 한국의 인디 뮤지션은 '방송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뮤지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지칭하는 적절한 단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하셨고요. 그리고 이종현 대표님은 방송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뮤지션들이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ACE 모델을 공개하면서, 패널과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는데요. 어떤 방법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전 세계를 투어하고, 해외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고요? 가장 먼저, 실력 있는 에이전트를 만나야 합니다. 유능한 에이전트는 현지 아티스트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태국 밴드 "Slot Machine"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음에도, 한국 최대의 여름 록 페스티벌 중 하나인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또한, 올해 아시아에서 열리는 여러 록 페스티벌 라인업에서도 "Slot Machine"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것이 바로, 에이전트의 힘입니다.
▲ 사진 4. 2016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 5차 라인업 포스터
두 번째는 현지에서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이용하는 방법인데요. 현지 아티스트가 인터뷰에서 특정 뮤지션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거나, 또는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경우 그 뮤지션의 인지도는 급격히 올라간다고 합니다. 단시간에 인지도를 효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죠. 마지막은 한국에서의 인지도 역시 중요하다는, 조금 의외의 팁이었는데요. SNS가 발달하고, 유튜브 등 다양한 영상 채널을 통해 전 세계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현재,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결국 해외에서의 인지도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국내 음악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한국의 미디어에 자주 출연하고, SNS에서도 활발하게 언급되려는 노력. 꼭 필요하겠죠?
▲ 사진 5. 2세션 토론 모습
(왼쪽부터) 임진모 음악평론가, 박은석 음악평론가, 안성민 해외쇼케이스 전문 감독, 이종현 MPMG 대표,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
강력한 에이전트(Agent)와의 만남, 현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진행, 그리고 미디어 노출(Exposure)까지, 일명 ACE 모델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수 년 동안 K-POP NIGHT OUT 무대를 담당해온 안성민 감독님 또한 ACE 모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고요.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한국 최대의 비즈니스 뮤직마켓 <뮤콘(MU:CON)>의 문제점을 언급하셨는데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너무 적은 것, 다시 말해서 해외 바이어들이 너무 적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실력 있는 해외 에이전트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뮤지션 역시 쇼케이스 뿐만 아니라 여러 루트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감독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사진 6. 미니콘서트를 선보이는 뮤지션 선우정아
이날 뮤직포럼에서 <봄처녀>, <뱁새>, <그러려니>를 청중들에게 들려주었던 뮤지션 선우정아 씨는, "메이저와 인디의 경계에서 자신의 음악을 자유롭게 실험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는데요. 메이저와 인디 중 소속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다는, 오로지 음악으로만 자신을 정의하려는 모습이었어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음악을 추구하는 선우정아 씨의 모습이, 뮤직포럼의 지향점과 잘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최근 음악산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메이저 기획사의 서브 레이블 창립 이슈에 이어 해외 진출을 꿈꾸는 뮤지션을 위한 팁까지, <제1차 K-뮤직포럼>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이날 참석했던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영철 부원장님은 뮤직포럼을 통해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정책 결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음악산업 정책의 기반이 될 열띤 토론을 듣고 나니, 가장 날 것의 재료들을 접한 것 같아 기분이 설렜습니다. 다양한 관계자분들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기도 했고요. 이날 토론 내용이 바탕이 되어 정책이 수립된다면, 그 정책 또한 친근하게 다가오겠죠? 한국의 대중음악을 인디와 메이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접근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하고, 쇼케이스 외에도 ACE 모델을 고려해서 해외 진출 전략을 지혜롭게 수립해야 한다는 <제1차 K-뮤직포럼>의 결론. 이날 도출된 결론이 어떤 정책으로 구체화될지, 개인적으로도 참 많이 궁금합니다.
ⓒ 사진 및 영상 출처
사진 1. 네이버뮤직
표지사진, 사진 3, 6. 상상발전소 이승훈 기자
사진 4. 페이스북 펠리록페스티벌 페이지
영상 1. YouTube 채널 CJENMMUSIC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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