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주인공은 광종입니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라는 제목은 보는 입장에 따라 빛날 광光일수도, 미칠 광狂일수도 있는 광종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데요. 이렇듯 드라마, 영화 등 여러 콘텐츠 속에는 입장에 따라, 혹은 사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왕들이 존재합니다. 콘텐츠 속에서 그들에 대해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함께 보도록 할까요?
조선에는 묘호를 받지 못한 두 명의 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광해군이지요. 15년이라는 그의 재위 기간은 반정으로 폐위되면서 끝납니다. 역사는 그를 실정을 일삼았던 폭군으로 기록합니다. 이런 기록의 바탕에는 어머니 격인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폐모살제(廢母殺弟)의 사실이 있습니다.
▲ 사진 1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광해군(조희봉 분)
드라마 <쾌도 홍길동>에 등장하는 광해군(조희봉 분)은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나서 색에 빠져 사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서자 출신이라는 피해의식이 그를 앞뒤 가리지 않고 술독에만 빠져 사는 폭군으로 만든 것인데요. 영화 <인목대비>의 광해군(허장강 분) 역시 폭군으로 묘사된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광해군을 부정적으로 그렸던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광해군에 관한 궁녀의 기록인 <계축일기> 등에서는 광해군을 불손하고 패륜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사진 2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광해군(이병헌 분)
하지만 광해군이라는 인물은 수많은 역사학자에 의해 재조명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여러 콘텐츠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하선(이병헌 분)은 광해군의 자리를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하며, 진정으로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대동법 시행 등 서민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정책을 여럿 폈던 광해의 모습에 주목한 것입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에 그의 인성은 폭군으로 남아 있지만, 실제로 광해군은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펴는 등 경제/외교에 매우 능통한 왕이었습니다. 허울뿐인 명분을 지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조선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기도 했고, 임란 이후 무너진 조선을 재건하고자 노력한 영민한 왕이었지요. 최근 방영한 드라마 <왕의 얼굴> 역시 그러한 광해군의 면모를 세자 시절의 모습을 통해 보여줍니다.
▲ 사진 3 드라마 <왕의 얼굴>의 광해군(서인국 분)
이렇듯 광해군은, 의리라는 이상과 실리라는 현실 사이에서 다르게 평가되었던 인물이었고 그것은 역사적
기록과 해석,
그리고 콘텐츠 속에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선조는 역사 상 가장 무능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도성인 한양을 버리고 피난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많은 콘텐츠 속에서 선조는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 사진 4 <불멸의 이순신>의 선조(최철호 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선조(최철호 분)는 대신들의 말에 휘둘리고 신하들을 의심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찌질하다’고마저 표현할 수 있는 선조의 우유부단함은 전쟁을 막지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왕의 타이틀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에 등장하는 선조(현석 분), <왕의 여자>의 선조(임동진 분)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에서 선조가 그러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앞의 작품에서 의심병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면, <허준>에서는 신하를 믿고 잘 후원해 주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기록의 어느 한 부분을 주목하고 확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제로 선조는 임란 당시 정치적 혼란 속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을 토사구팽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선조 때에 이항복, 유성룡, 권율 등 많은 인재를 등용하였고, 구암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하는 데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기도 한데요. 이렇듯 어떤 기록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악으로 분류될 수도, 선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사진 5 <징비록>의 선조(김태우 분)
그런데 최근, 선조는 또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속의 선조(김태우 분)는 찌질하거나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물도, 신하를 잘 믿는 선하기만 한 인물도 아닙니다. 타고난 안목으로 뒤에서 붕당과 대신들을 쥐락펴락하는 정치가로 존재합니다. 임진왜란 이전, 붕당을 교묘하게 이용해 왕권을 강화했던 그의 모습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세조만큼 누구의 입장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그려지는 인물이 있을까요? 정변으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지만, 그 이유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조선을 생각하는 진심과 개인의 야욕으로 나뉩니다.
▲ 사진 6 <왕과 비>의 세조(임동진 분)
드라마 <왕과 비>에 등장하는 세조(임동진 분)는 계유정난의 과정에서도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본 작품 속 세조와 그의 무리들은 왕권이 약해지고 신권이 강해져 가는 현실에서, 초기 조선의 기틀을 다지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정난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는 일이 필수적이기에 괴로워하는데요.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설중매>의 세조(남성우 분) 역시 조선을 위해 마지못해 계유정난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그려집니다. 이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선택을 하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세조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인데요. 단종 등의 입장보다는, 실록을 그대로 해석한 결과에 주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진 7 드라마 <공주의 남자> 속 수양대군(김영철 분)
그러나 같은 인물을 두고도, 작품에 따라 ‘세조’에게 보내는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속에 등장하는 세조(김영철 분)는 왕좌를 향한 탐욕에 동생과 조카를 죽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잔혹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긴장감이 도는 조정이라는 판 위에서,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권력을 탐하지요. 이러한 세조의 이미지에 무인적인 분위기를 더한 것이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이정재 분)입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강한 눈빛은 야심가적인 그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권좌에 앉아 사육신을 숙청하고, 핏줄에게까지 피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잔인한 세조의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관점에 따라, 혹은 그를 바라보는 집단의 입장에 따라 우리는 한 인물에게 여러 가지의 시선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악인과 완전한 선인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인물이 어떠한 방향으로 재평가된다고 해서 그 인물을 완전한 악인, 혹은 선인으로 착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관점에 따라 인물을 보는 전체적 시선과 평가를 바꾸되, 그 인물이 수행한 잘못된 일이나 옳은 일마저 흑백 논리에 기반을 둔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입장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역사 속 현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가치관으로 직접 그들을 판단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명확한 시각을 가지는 것, 그것이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그들을 마주하는 시청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요?
ⓒ 사진 출처
- 표지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사진 1 KBS <쾌도홍길동> 공식홈페이지
- 사진 2 <광해, 왕이 된 남자> 공식블로그
- 사진 3 KBS <왕의 얼굴> 공식홈페이지
- 사진 4 KBS <불멸의 이순신> 공식홈페이지
- 사진 5 KBS <징비록> 공식홈페이지
- 사진 6 KBS
- 사진 7 KBS <공주의 남자>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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