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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발전소/칼럼 인터뷰

한국 전자책 시장의 문제점

by KOCCA 2012. 11. 26.

 

 

한국 전자책 시장의 문제점
 

임원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전자책 시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기대를 모아왔다. 그런데 그 거위는 10년이 훨씬 넘도록 알을 낳지 않고 있다. 이 거위는 죽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황금알을 낳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과연 이 거위가 황금알을 낳기는 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마저 생긴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자책 시장이 비전이 있기는 한 건가. 이 글에서는 우선 전자책 시장의 문제점을 고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에서 전자책 시장의 성장을 위한 조건을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10년째 태동기인 시장
 국내에서 ‘전자책’이라는 말은 주로 콘텐츠를 지칭했다. 그런데 시장 통계 등을 작성할 때는 콘텐츠에 단말기 판매를 더해서 ‘전자책 시장’이라고 해 왔다. 그만큼 전자책이라는 콘텐츠 시장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전자책 시장에 대한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 2000년대 초반부터 전자책 시장에 대한 전망치는 많이 나왔지만 내용은 항상 ‘올해 500억원, 5년뒤 5000억원’ 식의 추상적이고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최근들어 전자책 콘텐츠와 단말기를 구별해서 시장전망치가 제시되고 있지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초라한 수준이다. 한화증권이 추정한 전망치에 따르면 2010년 콘텐츠 시장 규모는 299억원. 작년에 863억원이었고 올해 1726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 1위인 교보문고의 올해 전자책 매출액은 100억원(추정), 온라인 서점 1위인 예스24의 올 전자책 매출액은 40억원 수준. 국내의 대표적인 두 회사의 매출을 합해 140억원에 불과한데, 전체 시장 규모는 1700억원대라면 두 회사의 매출 합이 전체 시장의 10%도 안된다는 뜻이다. 모바일 시장이나 전자책 전문업체들의 매출이 꽤 있겠지만 비교적 냉정하게 추산했을 것이라 예상되는 증권사들의 전자책 시장 전망치도 상당한 낙관론에 근거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올해 들어 비약적으로 시장이 성장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정도 규모면 이 시장은 10년째 태동기에 있는, 아주 초기 단계인 시장이다.
 
 
 

◆콘텐츠도, 단말기도 없다
10년째 시장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전자책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콘텐츠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전자책의 형태로 찾아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서비스는 국내 어디에도 없다. 최근 다양한 전자책이 모바일 버전으로 출판되면서 콘텐츠 부족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고 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 무협지, 성인지, 일부 고전 문학작품 등에 국한돼 있다.


똑똑한 단말기가 없다는 것도 전자책 시장을 어렵게 한다. 스토리K 비스킷 B-612 등 대형 서점이나 전문업체들이 만든 단말기가 출시됐지만 최근 3년여간 팔린 총량이 10만대 안팎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밖에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시리즈 등 태블릿PC들이 있지만 전자책 보다는 엔터테인먼트나 업무용으로 활용되는 태블릿PC의 특성상 전자책 단말기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자책 단말기를 사도 제대로 된 콘텐츠가 없고, 이것저것 다 해 보려고 아이패드 등을 사면 책과 다른 재미와 쓸모가 많아 결국 책을 접하지 않게 된다.
 
 
 

◆대표주자와 플랫폼의 문제
하지만 이런 문제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아마존이 초창기 이런 역할을 했다. 물론 기업의 전략적인 판단에 의해서다. 하지만 아무리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수년 동안 손해를 감수하고 일관되게 전자책의 안착을 추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의 경우 전자책 관련 업체들이 난립해 있지만 뚜렷한 주도 세력을 찾기는 어렵다. 단말기 업체, 종이책 출판사들, 전자책 전문업체들, 여기에 대형 서점들까지 가세해 있지만 저마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이트를 구축하고 유통망을 만들고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할 뿐 큰 그림을 그리고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자책 파일 포맷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이퍼브가 주축을 이루고는 있지만 이미지 파일이나 PDF 파일을 기본으로 전자책을 만드는 업체들도 있다. 이미지 파일을 기본으로 새로 만들어진 시스템 중 일부는 만화나 그림이 많은 책의 전자책화에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어떤 파일 포맷이 전자책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직 한국 시장에서는 결론이 나질 않은 것이다.
 
 
 

◆그런데, 고객의 눈높이는 대단히 높다
부족한 콘텐츠, 뒤죽박죽인 파일 포맷, 뚜렷한 대표주자의 부재 등 다양한 약점을 갖고 있는 공급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고객의 눈높이가 대단히 높다는 것. 한국인들이 유난히 책을 잘 안 읽는다는 것까지 더해지면 예상 고객의 눈높이는 더욱 올라간다.
 

초기 콘텐츠를 포함해 아직도 전자책 시장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자책 콘텐츠들은 기존 오프라인 책을 그대로 디지털화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대로’ 디지털화가 뜻대로 잘 안된다는 점이다. 전자책을 써 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종종 종이책보다도 전자책이 못하다는 것인데, 이는 국내 종이책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대다수의 종이책들은 대단히 고급스럽다. 문고판을 제외하면(문고판은 어차피 국내에서 별 시장도 없지만) 어린이용 책부터 수험 서적, 교양서적, 심지어 영어단어 사전까지 촉감 좋은 종이와 화려한 그래픽, 멋진 디자인을 뽐낸다. 이런 디자인과 화려함에 익숙해져 있는 일반 독자들이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 전자책에 만족할 리가 없는 것이다. 본래 이퍼브 포맷은 페이퍼백 수준의 책에도 충분히 만족하는 미국 문화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포맷이다. 국내 소비자들 눈에 차질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자책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아직도 전자책 중 일부는 읽다가 상당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파일 일부가 깨지거나 그림 일부가 나타나지 않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종이책은 파본이 생기면 서점으로 뛰어가기라도 할 수 있지만 전자책은 방법을 찾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래저래 소비자들 눈에는 전자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리고 질과 양 모두에서 수요자의 수준에 못 미치는 현재 국내 전자책의 문제점들이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이라는 전자책의 본질적인 강력한 장점이 발휘되지 못하게 막았다. 이것이 10년째 초기 시장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는 국내 전자책 시장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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